꽃들은 죽을힘을 다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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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죽을힘을 다해 피어난다
  • 조용호
  • 승인 2020.05.2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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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 - 살며 사랑하며 1

산수유가 피었다가 지는 중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그 노란 별꽃 무리를 연전에는 그녀와 함께 보았다. 화사한 봄빛 속에서 산수유 가지를 젖히며 그녀는 웃으려고 애쓰며 걸었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인데, 그날 사진과 동영상을 다시 들춰보니 그녀는 태생이 별꽃처럼 맑은 사람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도 아픈 사람 같지 않던, 아니 정확하게는 전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녀는 그해 가을 빼빼 마른 채 가벼운 작별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올봄도 산수유는 어김없이 피었다가 지고 목련이 뒤를 잇더니, 벚꽃이 만개하고 진달래 철쭉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중이다. 꽃은 다시 피는데, 사람만 보이지 않는다. 떠나간 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윤회를 받아들인다면 더이상 말할 것도 없지만, 사바세계 어리석은 중생의 시각으로 본다면 대기의 물질로 사라지는 것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어서 허무 그 자체이기도 하다. 어디에서 그리움을 삭힐까.

매년 봄이 시작될 무렵이면 꽃을 찾아 남하하곤 했다. 올해는 아직 차가운 1월, 그동안 벼르기만 하던 수선화를 영접하기 위해 제주로 내려갔다. 한림공원 수선화밭에서 청초하게 바람에 하늘거리는 그녀들을 만났다. 흰 꽃잎 위에 노란 병아리 부리 같은 꽃이 가운데 피어나는 모양, 멀리서 보면 흰 나비들이 춤추는 것 같다. 수선화 곁에는 이미 매화도 피어나고 있었다. 수선화는 한겨울부터 피지만 매화도 이른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다. 황량한 겨울에 이 꽃들이 벌들을 유혹하는 수단은 특유의 향이다. 수선화 향은 진하지만 서늘하고 맑다. 매화 역시 진하긴 마찬가지지만 향이 알싸하다. 밤이면 암향은 더 멀리 퍼져나간다. 황량한 대지에 먼저 피어나는 꽃들은 저마다 무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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