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몰아쳐도 조이면 OK! 내 삶의 단단한 안전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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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몰아쳐도 조이면 OK! 내 삶의 단단한 안전벨트
  • 일광 스님
  • 승인 2020.05.2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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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방향을 바꿀 때 도는 각도를 터닝서클이라고 한다. 무언가 인생의 돌파구를 찾고는 있었지만, 쉽사리 출가할 마음이 나지가 않았다. 세속적인 애착이나 집착이 있었다기보다 어릴 적 인연과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스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출가에 간절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부처님과 인연이 몸과 마음처럼 너무 가까이 있으니 소중한 줄도 모르고 애써 찾으려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 집 떠나는 즐거움

“절에 가면 부처님께 이쁘게 절하고 스님께도 요렇게 인사드려야 한다.”

비녀 꽂은 머리 위로 양손을 쓸어 올리며 할머니는 손녀에게 고두례 절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할머니가 법당에서 기도하고 있으면 나는 탑전에서 혼자 놀곤 했는데, 어떤 보살이 다가와 “너는 부처님 제자가 되면 좋겠구나”라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할머니가 다가와 그것이 무슨 뜻인가 물었는데, “아이가 명(命)이 짧은 듯하니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집에 돌아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부모님께 일러바치듯 말했다.

“나는 절에서 살아야 한대요!”

다섯 살 난 자식이 단명한다는 말보다 절박한 소리가 있겠는가? 다음날 부모님은 절에 올라가 상의했고 스님은 내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 문종이에 싸서 부처님께 올리는 의식을 하며 기도해 주셨다. ‘너는 오늘부터 내 유발상좌니라.’ 다섯 살이던 나에게 스님의 목소리는 어떤 선언(宣言)처럼 들렸는데 부처님 가문에 들어와 보호를 받는 것처럼 느껴져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스님의 유발(有髮)상좌가 되었고, 초등학교 내내 방학이면 어김없이 절에 가 천수경과 약찬게를 외웠고 예불을 올리다가 개학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절에 가는 것은 외갓집 가는 일보다 더 자연스러웠고, 부모님도 당연하게 여기셨다.

은사스님은 어린 상좌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줄곧 설 명절이 되면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셨다. 그리고 시장에 데리고 가 설빔으로 스웨터나 점퍼를 골라 주셨다. 어린 마음에 꽃 색깔 옷을 입고 싶어 걸려있는 방향을 마냥 바라봤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은사스님은 어린 상좌에게 회색 무늬 옷을 척 골라 입히고는 ‘참 곱다’며 좋아하셨다. 아쉽고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스님이 사 주신 옷’이라며 얼마나 자랑하고 다녔는지 모른다. 은사스님은 내가 출가할 때까지 ‘너 출가하거라’라는 말씀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시절인연에 맡기고 스스로 발심(發心)하기를 기다려주신 듯하다. 재촉하지 아니하고 유발상좌의 선택을 존중하고 기다려주신 스님이 30년이 된 지금에도 참 감사하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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