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거스르는 세계 화두는 오직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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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거스르는 세계 화두는 오직 생존
  • 정여울
  • 승인 2020.05.27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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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그대가 주인공입니다 ▶ 나 혼자 산다

“우주를 혼자 표류하는 기분, 어땠어?” “정말 무서웠어요.” 샌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는데,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깨달았다. 부모님의 집을 벗어나 처음으로 독립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 그것이 바로 ‘우주를 혼자 표류하는 기분’이었다는 것을. 물론 <그래비티>의 주인공처럼 완전히 우주 공간에 외따로 표류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의 두려움은 그에 못지않았다. 중력도 없이 우주를 혼자 표류하는 기분, 바로 그것이었다.

 

| 독립한다는 것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간섭이 귀찮기는 했지만 삶을 어느 한 점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이 있었다. 그 어느 한 점이 ‘부모의 감시’라는 사실이 자유를 가로막기도 했지만. 나는 자유라는 이름의 산소가 필요해 독립을 꿈꾸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의 보살핌이라는 중력에 의지하고 있었다. 버팀목에 의지하고 있을 때는 그 버팀목의 소중함을 모른다. 그것이 버팀목인지도 모른 채, 증오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나는 독립하고 나서야 부모라는 버팀목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나를 항상 걱정하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라는 것 자체가 존재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 내 삶이라는 토양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막상 독립을 시작하니 삶의 모든 요소가 뿌리째 흔들렸다. ‘와, 독립이다!’ ‘이제 드디어 혼자다!’라는 해방감은 딱 사흘간 지속했다. 독립한 지 일주일 만에 잇몸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고, 온몸이 아팠다. 영혼의 성장통이기도 했고, 스스로 나의 몸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뼈저린 대가이기도 했다. 언제나 가족들의 복닥복닥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온 나는 처음으로 ‘소리가 사라진 세계’에 맞닥뜨렸다. ‘밥 먹어라!’는 엄마의 부름도, ‘일찍 들어오라!’는 아빠의 잔소리도, ‘언니, 내 얘기 좀 들어봐!’라는 동생들의 수다도 없는 그 무소음의 세계는 한없이 낯설었다.

아주 조용한 세계의 한없는 자유로움을 꿈꾸었기에 독립을 했는데, 막상 독립을 쟁취하니 그 시끄러운 세계가 미치게 그리웠다. ‘인간은 왜 이토록 모순적인 존재인가’ 하는 깨달음도 사무치게 다가왔다. 당시에는 가장 절실한 소원이 바로 독립이었는데, 막상 독립하고 나니 뼛속을 스며드는 외로움이 마음을 초토화한 것이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고 해서 결코 자동으로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님을 그때 깨달았다.

혼자 산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신나고 재미있는 것은 딱 사흘. 그 사흘의 해방감이 사라지고 나자, 바로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기쁨’은 사라지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기분,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듯한 단절감이 찾아왔다. 우주를 혼자 표류하는 듯한 기분을 떨쳐내고 ‘꿋꿋하게 혼자 살기’와 ‘타인과 공존하기’를 동시에 배울 때 비로소 내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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