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연기가 되고, 연기가 삶이 되다. 우는 남자, 배우 이재용
상태바
삶이 연기가 되고, 연기가 삶이 되다. 우는 남자, 배우 이재용
  • 남형권
  • 승인 2020.03.31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광초대석

 

젊은 연극배우는 자주 굶주렸다. 끼니는 부실했고, 연기에 대한 고뇌는 치열했다. 죽을 것 같다가도 막이 내리고 무대 위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면 홀린 듯 또 무대에 섰다. 스스로 선택한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살아냈다. 이제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우리 곁에서 생생하게 숨 쉬고 있는 배우 이재용을 만났다. 

어느덧 연기 경력 38년 차, 그동안 수많은 배역을 거쳤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태양은 가득히>. 호수처럼 깊고 파란 눈으로 저음의 불어 대사를 날리던 배우 알랭 드롱은 시골 소년에게 강렬했다.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뜻도 모르는 대사를 흉내 냈다. 중학생 때는 경남대 연극반 형들이 하는 공연을 봤는데 무대 위 하얀 배경에 푸른 조명이 비치는 모습에 반했다. 부산대 철학과에 입학했고 교내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모르고 몸부림치던 새내기는 무대 위 삶에 중독되어 갔다.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 없던 배우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에게 물들고 있었다. 

|    장군의 아들 괴롭히던 미와 경부의 눈물

작품이 끝나도 인상 깊은 연기는 사람들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표독스럽게 김두한을 괴롭히던 일본 경찰 미와 경부, 또 드라마 <피아노>에서 집요하리만큼 악랄한 조폭 독사는 배우 이재용을 떠올렸을 때 특히 잊기 어려운 캐릭터다. 강하고 거친 악역에 가려져 있던 그가 사실은 자신이 울보임을 고백한다. 음악을 듣다가, 노을이 아름다워서, 그림을 보다가, 눈이 내려서, 울컥, 자주 눈물을 흘린다고 토로한다. 인터뷰에 오기 직전에 본 TV 강연에서 “아픈 거 담아두지 말고 자기를 사랑하라, 옆에 있는 사람 안아주라”는 말을 듣고 또 훌쩍이다가 왔다며 웃는다.

눈물은 감수성이 낳는다. 다양한 배역에 푹 빠져 지내다가도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배우가 짊어진 숙명이지만 늘 힘겹다. 그는 매번 다른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지독하게 자신을 파고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첫사랑과의 실연에서 느꼈던 오래된 아픔도 수십 년 동안 마음 한 칸에 생생하게 보관해놔야 한다는 것. 

“인간이 인간의 삶을 인간 앞에서 펼쳐 보이는 게 연기입니다. 연기를 기술로 익히고, 속성으로 배운다는 건 망상이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해요. 남을 보는 건 동시에 나를 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서로 한 잔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할 때도 내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상대를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방도 반응하는 게 달라집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 덩어리, 그게 어떻게 사라지고 생겨나는지 작동법을 알고 난 다음에 무대와 카메라 등을 이해해야 연기를 풀어낼 수 있는 거죠.”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수행과도 상당히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그는 연기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경전과도 같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저서 『배우수업』에서도 이완과 호흡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배역 안으로 들어가는 초입 단계가 참선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배우 박신양 씨 스승으로도 유명한 스타니슬랍스키 계열의 러시아 슈킨 연극대학 교수 유리 미하일로비치 알사로프를 만났을 때 제가 이런 얘기를 하자 스타니슬랍스키 시대 유럽에서 일본 ‘젠’이 유행이었기에 연관성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