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의 조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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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의 조언대로
  • 정지향
  • 승인 2020.03.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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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한 물건
옷장에서 3년 만에 다시 꺼낸 오래된 재킷
옷장에서 3년 만에 다시 꺼낸 오래된 재킷

혼자 사는 사람들이 종종 그러듯, 밥을 먹을 때면 볼거리를 찾아 틀어 두곤 한다. 나는 주로 넷플릭스를 이용한다. 한 끼를 떼우 듯 갖는 짧은 식사 시간, 호흡이 긴 영화나 드라마는 피하고 짧은 다큐멘터리 혹은 쇼 프로그램을 고른다. 최근 흥미를 느낀 프로그램은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미니멀리즘 열풍과 함께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었지만, 미국에서는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둔 듯하다. 저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은 미국에서만 6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소유에 지친 많은 사람이 곤도가 제안하는 삶의 양식에 빠르게 매료되었다. 곤도에 의해 소위 개종 된 사람을 지칭하는 콘버트(konvert)라는 단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이사를 할 때마다 골칫거리가 되는 책들과 혼자 쓰기엔 너무 많은 커피잔이 놓인 선반을 둘러보자면 나는 아무래도 미니멀리스트는 못 된다. 그렇지만 적절한 소유와 그에 따른 간소한 삶의 양식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내 흥미를 끈다. 스무 살에 시작해 여태 이어져 온 배낭여행의 경험이 내게 그런 질문을 새긴 듯하다. 낯선 곳에서는 배낭이 무거울수록 소극적으로 된다. 필요한 물건이라 여겨 챙겨왔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더 많이 걸으면서 나는 해방감을 즐기곤 했다. 긴 여행 끝에 집에 돌아와서는 5kg 남짓한 짐으로 생활이 이루어진 때를 그리워하며 집 안의 수많은 물건을 지긋지긋하게 여겼다.

한때는 여행지에서 새 옷을 사 입고 다니다 싸 들고 돌아오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국에서 사 온 옷을 입으면 잠깐이나마 그곳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끝내는 태국과 인도와 이집트 여행자 거리에 걸린 패턴 원피스가 모두 베트남의 한 공장에서 찍혀 나온 제품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말았다. 작년 여름에는 두 달간 서유럽을 여행했다. 런던과 파리와 마드리드와 로마 시내에는 H&M과 무인양품과 나이키와 오이쇼 등 다국적 기업의 매장이 있었다. 여름 내내 모든 도시에 똑같이 걸려있던 옷들은, 가을이 시작될 무렵 귀국했을 때 한국 매장에서 30% 세일 태그를 달고 다시 나를 맞았다. 그 무렵 나는 분명하게 뭔가를 새로 가지는 일에 시들해졌고, 많은 것을(특히 옷을)처분하고, 기증하고, 중고거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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