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 살며 사랑하며 2
한 달 전이었다. 어젯밤의 비와 거센 바람은 온데간데없이 날씨가 맑았다. 바람이 차가워 나는 몸을 움츠렸다.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버려진 종이상자 두 개가 젖은 채 아파트 담벼락에 기대있는 것을 보았다. 검은 우산도 아파트 담벼락에 꽂혀있었다. 큰 상자는 가로로 작은 상자는 세로로 기대어 놓여있었다. 젖은 종이상자 위의 검은 우산은 비 맞지 않게 보호하려는 누군가로 보였다. 젖은 종이상자는 마치 사람처럼 서로 맞붙어있었다. 젖은 상자는 기억 속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15년 전, 나는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퇴근하면 늘 시간이 없기에 그날은 마음먹고 종각역으로 향했다. 책을 한 권 사고 싶어서 밥도 먹지 않고 서둘러 전철을 탔다. 내린 곳은 종각역. 12월이라 춥고 배가 고팠다. 뭐라도 먹고 영풍문고에 들러야지 생각하면서 서점 입구로 막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였다. 배 안에서는 천둥소리가 우르릉거리며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식집까지 열 발짝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멈춰야만 했다. 나는 왜 하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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