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막걸리, 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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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막걸리, 안다는 것
  • 이경택
  • 승인 2020.03.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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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 - 살며 사랑하며 1

“막걸리 한잔해야지요, 그냥 가면 어떡해요?” 

15년 전 신림동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다. 약주 좋아하신다니 그냥 인사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신문사에서 ‘미술 담당’ 기자가 돼 화단(畫壇) 분들을 만나면서 들은 얘기는 가히 놀랄만한 것이었다. 

“연세가 구순을 넘기셨는데 아직도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 2~3통은 드신다네.”

조각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전뢰진 선생님 이야기다. 최근 조각계 지인들과 함께 인터뷰를 위해 다시 신림동 작업실을 찾았다. 아마도 ‘전설’이라는 단어에는 요즘도 여전히 망치와 정을 잡는 ‘현역 조각가’라는 사실 외에 술잔도 놓지 않는 ‘현역 애주가’라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짜리 단독 주택 반지하 어둠침침한 작업실에는 흩어진 돌조각들과 정과 망치, 그라인더 등의 장비에 무쇠 난로 등이 산만하게 펼쳐져 있고, 돌가루가 뿌옇게 떠다녔다. 신문에 지면으로 소개할 인터뷰 자리인 만큼 의례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20세부터 조각을 했다고 치면 무려 70년. 엄청난 ‘내공’이 느껴질 답변들이 나올 것으로 당연히 기대했다. 인터뷰에 앞서 원로조각가인 고정수 선생님이 들려준 일화도 있었다. 

“선생님에게 언젠가 소장자들로부터 작품을 임대해 회고전을 크게 해보시면 어떻겠냐고 했죠. 그러니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잘들 있는데 왜 귀찮게 해’. 노르웨이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을 떠올리게 하는 대답이었죠. 현지 대학교수가 비겔란에게 ‘로댕처럼 유명해지려면 해외전시가 필요하고 그래서 유럽 순회 전시를 해야 한다’고 하자 비겔란이 이랬다고 합니다. ‘옛날 희랍 신전이 굴러다니는 것 보았냐’고. 참 대단들 하시죠.”

돌가루 냄새에 차츰 익숙해질 무렵 선생님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미술에 여러 장르가 있는데 왜 조각, 그것도 힘든 돌조각을 하셨나요?”

“내 이름 가운데 자인 ‘뢰’ 자가 ‘바위 뢰(礌)’가 아니라 원래 돌이 세 개인 ‘돌무더기 뢰(磊)’야. 이름부터 돌 만질 팔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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