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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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2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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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

 

사성제
저작·역자 일묵 정가 25,000원
출간일 2020-03-24 분야 불교
책정보

판형 신국판(152×225mm)|두께 40mm 552쪽|양장본|ISBN 978-89-7479-790-4 (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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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이 추구하는 바른 삶에 대한 가르침이

모두 들어 있는 사성제(四聖諦),

일묵 스님이 25년 수행과 공부를 집약해 밝혀낸 사성제의 모든 것!

25년 전 서울대 재학생, 졸업생 출신의 10여 명이 동시에 출가해 화제를 모은 일이 있다. 그 화제의 중심에 서 있던 일묵 스님. 이 책은 당시 서울대 수학과 박사 과정 중에 출가한 스님이 7년 만에 펴낸 신간이다.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가르침을 펼쳐온 스님은 새의 양 날개처럼 교학과 실천이 균형을 이루는 완벽한 수행법을 ‘사성제(四聖諦)’에서 찾으며 연구에 매달려 왔다.

‘사성제’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이 책은 붓다의 수행과 깨달음의 핵심 내용인 사성제를 단독 주제로 한 대중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초기불교 경전 니까야를 중심으로 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정리는 사성제가 단순한 ‘이론 체계’, ‘사상’이 아닌 삶과 수행의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실천적 가르침’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교리적 설명은 최소화하고 사성제가 우리의 삶과 일상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집중해, 사성제가 반드시 알아야 할 바른 견해이자 바른 수행법이며, 깨달아야 할 진리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문자에 갇힌 불법(佛法)이 아닌, 내 삶과 수행의 기준으로 삼는 생생한 불교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불교 교과서’가 되어 준다.

저자소개 

 일묵

해인사 백련암에서 원택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범어사 강원을 졸업했고 봉암사, 미얀마 파욱국제명상센터, 영국 아마라와띠, 프랑스 플럼빌리지 등 국내와 세계 불교 수행처에서 수행하였다. 2009년 서울에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제따와나선원을 개원하였고, 2018년 강원도 춘천에 수행 도량을 마련하여 이전하였다. 현재 춘천 제따와나선원의 선원장으로 머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 『이해하고 내려놓기』, 『일묵 스님이 들려주는 초기불교 윤회 이야기』 등이 있다.

저자의 말

“지혜로운 사람은 가능한 일은 가능한 일로,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한 일로 꿰뚫어 알고 불가능한 일은 포기하고 가능한 일에 노력을 집중하므로 괴로움을 소멸할 수 있다. 따라서 수행자가 할 일은 존재 자체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임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매 순간 유익한 법을 실천하고 해로운 법을 버리는 노력을 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붓다께서 설한 가르침이다.”

 

목차 위로

서문

들어가며 _ 붓다의 수행 여정과 깨달음

1장. 괴로움과 행복

1. 세속의 괴로움과 행복

1) 세속의 괴로움과 행복은 느낌이다

2) 괴로운 느낌이 괴로움이다

3) 행복한 느낌이 행복이다

2. 붓다의 괴로움과 행복

1) 붓다의 괴로움과 행복은 느낌이 아니라 특성이다

2) 괴로운 느낌은 괴로움이다

3) 행복한 느낌도 괴로움이다

4) 느낌은 괴로움이고, 느낌의 소멸이 행복이다

3. 괴로움과 행복에 대한 견해의 전환

1) 그릇된 견해와 바른 견해

2) 괴로움과 행복에 대한 진리의 가르침이 사성제이다

2장. 법이란 무엇인가?

1. 법이란 무엇인가?

1) 현상과 개념은 함께한다

2) 법은 붓다의 견해로 현상을 본 것이다

3) 존재의 실상은 물질과 정신의 법이다

4) 법을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의 구조로 정리한 것이 사성제이다

2. 법에 대한 바른 이해

1) 법을 통해 법을 볼 수 있다

2) 법은 현상과 개념을 함께 나타낸다

3) 법은 현상보다 통찰이 중요하다

4) 개념에만 빠지지 말고 현상을 관찰해야 한다

5)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다

3. 법을 알고 보면 괴로움이 소멸한다

1) 붓다의 견해는 사성제의 견해이다

2) 사성제의 견해를 통해 법을 본다

3) 법을 보면 사성제를 알 수 있다

4) 법을 알고 보면 괴로움이 소멸한다

3장. 연기

1. 연기

1) 연기

2) 연기된 법

3) 십이연기

2. 십이연기의 해설

1) 늙음・죽음은 태어남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2) 태어남은 존재를 조건으로 일어난다

3) 존재는 취착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4) 취착은 갈애를 조건으로 일어난다

5) 갈애는 느낌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6) 느낌은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7) 접촉은 여섯 감각 장소를 조건으로 일어난다

8) 여섯 감각 장소는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9) 정신・물질은 의식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10) 의식은 의도적 행위를 조건으로 일어난다

11) 의도적 행위는 무명을 조건으로 일어난다

12) 십이연기의 일어남과 소멸

3. 십이연기의 의미

1) 십이연기의 구조

2) 존재란 무엇인가?

3) 존재는 어떻게 태어났으며, 존재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4. 연기는 중간의 가르침이다

1) 상견과 단견

2) 연기는 중간의 가르침이다

3) 연기와 사성제

4장. 사성제

1. 불교는 사성제이다

1) 불교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가르침이다

2) 사성제는 진리의 가르침이다

2. 고성제: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1) 존재의 실상은 다섯 무더기이다

2) 다섯 무더기는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이다

3) 고성제: 다섯 무더기 자체가 괴로움이다

4) 고성제는 철저히 알아야 할 진리이다

3. 집성제: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

1)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다

2) 집성제: 갈애를 조건으로 괴로움이 일어난다

3) 해로운 법을 조건으로 괴로움이 일어난다

4) 집성제는 버려야 할 진리이다

4. 멸성제: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

1) 멸성제: 갈애가 소멸하면 괴로움이 소멸한다

2) 해로운 법이 소멸하면 괴로움이 소멸한다

3) 열반과 단견의 차이

4) 아라한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5) 멸성제는 실현해야 할 진리이다

5. 도성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진리

1) 도성제: 팔정도는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한다

① 바른 견해

② 바른 사유

③ 바른 말

④ 바른 행위

⑤ 바른 생계

⑥ 바른 정진

⑦ 바른 기억

⑧ 바른 삼매

2) 유익한 법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한다

3) 도성제는 계발해야 할 진리이다

5장. 사성제에 대한 기억 확립

1. 불교의 수행은 중도 수행이다

1) 팔정도의 시작과 중간과 끝은 바른 견해이다

2) 팔정도는 계를 기반으로 정과 혜를 닦는 수행이다

3) 팔정도는 지관쌍수이다

4) 팔정도는 중도이다

5) 불교의 수행은 중도 수행이다

2. 중도 수행을 통해 사성제에 대한 기억이 확립된다

1) 중도 수행을 통해 사성제에 대한 기억이 확립된다

2) 사성제에 대한 기억 확립의 과정

3) 사성제에 대한 기억 확립이 깨달음이다

4) 아라한의 마음

나가며 _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

참고문헌

상세소개 위로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고, 어떻게 가르쳤을까?”

『사성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려는 이들을 위한

초기경전 수행 가이드

우리는 지금껏 사성제를 잘 모르고 있었다

‘사성제(四聖諦).’ ‘고(苦), 집(集), 멸(滅), 도(道).’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성제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 붓다가 깨달음에 이른 뒤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행한 설법이다. 이 책에서는 사성제를 붓다의 ‘근본 가르침’이라 말한다. 사성제가 오늘날 많은 불교 전통, 이를테면 남방 상좌부불교, 북방 대승불교, 선불교, 티베트 불교 등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불교사를 연구하는 여러 학자들도 불교가 오랫동안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고 변화해 왔지만 사성제가 붓다의 근본 가르침이자 핵심이란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토록 중요한 가르침을 우리는 왜 단순한 개념 정도로만 암기하고 있을까? 네 글자, 한 줄 정도로 요약된 개념을 외우기만 하면 사성제를 터득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붓다의 가르침의 기본은 ‘괴로움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된다

사성제란 무엇인가? 바로 ‘이 세계는 괴로움[苦]이며, 괴로움의 원인[集]은 욕망이고, 괴로움을 소멸[滅]하기 위한 길[道]’에 대한 가르침이다. 압축하면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라 할 수 있다. 이 가르침이 불교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지금까지 전승되어 오는 붓다의 수행 여정을 살펴보자. 붓다는 생로병사의 근원적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출가한 이후 줄곧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관점을 견지했다. ‘나는 이전도 지금도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천명할 뿐이다.’(「아누다라 경」) 붓다의 이 말 속에는 제자들에게 설한 다양한 가르침이 실은 사성제를 다양하게 변주하여 설한 것임을 뜻한다. 상수 제자 사리뿟다는 ‘불교의 유익한 법들은 모두 사성제에 내포된다.’(「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 경」)라고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괴로움의 소멸(행복)’이다. 그것은 붓다가 우리에게 법을 전한 이유이며, 붓다가 전한 가르침의 전부이자 궁극이다. 즉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 사성제에 대한 바른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성제를 통한 삶의 괴로움에 대한 통찰이 바로 진정한 수행의 시작이며, 괴로움에 대한 바른 통찰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성제의 심오한 가르침, 불교를 이해하는 핵심 중의 핵심

그러나 사성제는 매우 심오한 가르침이기에 사성제를 혼자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불교 경전은 그 양과 내용이 방대하다. 자칫 가르침의 핵심을 짚어 줄 스승이나 지침서 없이 경전을 읽게 되면, 그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방황하다가 길을 잃고 만다. 부처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논서인 아비담마를 통해서 사성제를 이해하는 데도 다소 문제가 있다. 아비담마는 부파불교시대에 각 부파가 자신들이 주장하는 불법(佛法)에 대한 해석의 정당성과 우월함을 주장하기 위해 만든 논서이므로 실제 수행의 지침서라기보다 논리적인 완결성을 추구하는 현학적인 이론 체계에 가깝다. 그래서 아비담마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추상적인 관념에 빠져 현실에서 멀어지게 되고 오히려 실제 괴로움의 소멸을 위한 수행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사성제는 단순한 이론 체계나 사상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붓다가 몸소 체득한 진리를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로서 불교 수행의 올바른 방향성뿐 아니라 구체적인 수행 방법까지 드러내는 심오한 가르침으로 봐야 한다.

지금까지 사성제는 불교 교리의 차원을 넘어 수행의 관점으로 접근한 논의를 찾기 어려웠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했다. 사성제의 뜻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 현학적인 언어를 배제,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사성제의 뜻을 정리했으며, 읽는 순간 내 삶과 수행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데 진력했다. 바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자 목적이며, 가장 중요한 집필 기준이다.

불교는 믿음이 아니라 이해와 실천의 종교,

사성제는 ‘실천적 가르침’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많은 이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교리와 수행을 분리하는 데 있다. 사성제를 개념 정도로 외우는 데 그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불법의 지혜를 쌓아도 사성제와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당연히 사성제가 가리키는 올바른 방향을 자신의 삶과 수행에 연결하지 못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고, 집, 멸, 도의 단순한 뜻풀이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실천적 가르침’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붓다는 사성제를 깨달으며 번뇌를 버리고 괴로움의 소멸을 실현했다. 붓다는 평생 이 가르침을 전하며 ‘너희도 나처럼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붓다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사성제를 통해 괴로움을 통찰하고 번뇌를 소멸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붓다가 가르쳐 주고자 한 깨달음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사성제의 가르침을 듣고 배운 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데 있다. 삶의 모든 것을 사성제에 따라 이해하고,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계를 이어 가고, 정진하고, 기억하고, 삼매를 계발함으로써 번뇌를 버리고 괴로움을 소멸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을 접하는 모든 독자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실천했으면 하는 저자 일묵 스님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번잡함 가운데 책 한 페이지 읽기도 만만치 않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 탁한 세상에도 깨달음을 위한 길이 있다면 이 한 권의 책을 공부하는 게 어렵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불법을 자기 삶과 수행의 기준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불교 교과서’가 되어 줄 것이다.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는 버려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실현해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진리는 닦아야 한다.

- 「철저히 알아야 함 경」

책속으로 위로

이 책은 먼저 사성제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반으로서 괴로움과 행복에 대한 바른 견해가 무엇인지, 괴로움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소멸하는지 등에 대해 설명한다. 이어 사성제 각각의 진정한 의미와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 각각의 지점에서 꼭 알아 두어야 할 법(法), 나아가 사성제가 삶과 수행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에 준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나아간다.

사성제 단독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분량은 만만치 않다. 가장 분석적이라고 알려진 초기불교 경전을 중심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아우르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겁내지 마시라. 이 책은 그러한 고리의 핵심을 꿰뚫는 체계적인 구성과 대중적인 해설, 적절하고 풍부한 경전 인용으로 사성제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알기 쉬운 내용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서론에서는 붓다의 수행 일대기 가운데 큰 전환점이 된 사건에 주목한다. 이는 붓다의 수행 방향과 견해의 전환점으로서 바른 수행의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1장은 괴로움과 행복에 대한 붓다의 견해를 ‘느낌[受]’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괴로움과 행복에 대한 붓다의 견해를 불교에서 ‘바른 견해’라고 한다. 이를 잘 이해하면 ‘나는 행복한데 왜 일체가 괴로움이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장은 세상의 현상들을 붓다의 견해로 보고 통찰해 안 것, 즉 ‘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본다. 특히 세상의 모든 현상을 ‘물질과 정신’, ‘다섯 무더기[五蘊]’ 등으로 분류한 붓다의 견해를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의 구조’로 정리한 것이 사성제임을 설명한다.

3장은 ‘조건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조건이 없으면 결과가 없다’라는 진리인 연기(緣起)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괴로움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소멸하는가’에 대해 알 수 있다. 나아가 연기를 통찰하는 것이 곧 사성제를 체득하는 것임을 설명한다.

4장은 이 책의 주제인 사성제, 즉 고, 집, 멸, 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담긴 붓다의 가르침을 상세히 살펴본다. 나아가 각각의 가르침에 비추어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바르게 알아야 하는 지혜, 예를 들어 해로운 법[不善法]과 유익한 법[善法]은 무엇인지, 열반(涅槃)과 단견(斷見)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불교 수행에 있어 바른 견해[正見]는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설명한다.

5장에선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기반으로 중도(中道) 수행과 사성제에 대한 기억 확립[sati- paṭṭhāna, 念處]에 대해 다룬다. 팔정도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닉과 고행이라는 양극단을 극복한 중도로서 처음 ‧ 중간 ‧ 끝이 좋은 수행이며, 지혜(위빠사나 수행)와 삼매(사마타 수행)를 함께 닦는 길(定慧雙修, 止觀雙修)임을 설명한다. 나아가 깨달음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중도 수행을 통해 사성제에 대한 기억이 확립되어 가는 과정도 살펴본다.

결론에서는 사성제를 이해하여 바른 견해를 갖춘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지 알아본다. 그런 사람은 해로운 법은 버리고 유익한 법은 열심히 닦는다. 무엇이 불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이 분명해진다. 이것이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사성제는 단순한 이론 체계나 사상이 아니다. 사성제는 붓다께서 몸소 체득한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로서 불교 수행의 올바른 방향성뿐 아니라 구체적인 수행 방법까지 드러낸다. 그래서 사성제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핵심이다. 붓다께서 깨달은 사성제에 대한 지혜를 계발하고 그것에 대한 바른 기억을 확립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불교 수행이기 때문이다. _ 6쪽

감각적 욕망의 행복은 그 자체로는 달콤하지만 수많은 정신적 괴로움의 씨앗이 되기 때문에 행복으로 포장된 괴로움일 뿐이다. … 감각적 욕망의 행복은 행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괴로움의 특성이 있다. _ 17~18쪽

삼매의 행복은 존재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일지라도 그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불완전하며 완전한 행복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보셨다. 다시 말해서 삼매의 행복조차도 괴로움의 특성이 있다고 통찰하신 것이다. _ 20쪽

과거와 현재의 어떤 수행자들도 흉내 내지 못할 가장 지독하고 극심한 고행을 하였지만, 붓다에게 깨달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붓다께서는 고행을 지속하는 것은 몸만 괴롭히고 정신의 괴로움만 늘어날 뿐 깨달음의 길이 아님을 분명히 통찰하셨다. _ 21쪽

붓다께서는 초선과 같은 선정을 기반으로 하는 수행은 감각적 욕망이나 고행의 극단에 빠지지 않으면서 처음도 행복하고, 중간도 행복하고, 끝도 행복한 중도(中道)이고, 중도가 깨달음의 길이라고 통찰하셨다. 그래서 ‘선정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 될 수 있다.’라고 확신하신 것이다. _ 22쪽

붓다께서는 전해 듣거나 추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수행을 통해 직접 체득한 지혜로써 존재의 실상을 직접 알고 보신 후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를 깨달아 번뇌를 버리고 괴로움의 소멸인 열반을 실현하셨다. 붓다와 마찬가지로 존재들이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사성제를 깨달아 번뇌를 소멸해야 한다. _ 27쪽

세속의 사람들은 세 가지 느낌을 경험할 때 괴로움이나 행복을 느낀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나는 괴롭다.’라고 생각하고, ‘행복한 느낌’이 일어나면 ‘나는 행복하다.’라고 생각하고, ‘평온한 느낌’이 일어나면 ‘나는 괴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평온한 느낌도 붓다께서 고요하고 뛰어난 즐거움이라고 설하셨으므로 세속적으로 보면 행복의 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_ 34쪽

붓다의 견해에서 행복은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하여 다시는 괴로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괴로움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들은 모두 괴로움의 특성이 있다고 간주하셨다. _ 48쪽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세속의 견해는 괴로움을 행복으로, 행복을 괴로움으로 거꾸로 아는 전도된 견해이다. 전도된 견해를 가진 사람은 괴로움은 계발하고 행복을 버리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므로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_ 67쪽

일상의 삶 바로 거기에서 세속의 견해를 따르더라도 붓다의 견해를 잊지 않도록 열심히 정진해야 한다. 이렇게 정진하면 일상생활에서 필요에 따라 세속의 견해를 따르더라도 붓다의 견해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가능해진다. 마치 연꽃이 진흙을 떠나지 않고 그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것처럼. _ 85쪽

불교에서 연기를 꿰뚫어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물질과 정신의 법들이 일어나는 조건 또는 연기를 꿰뚫어 알면 사성제 중에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의 세 가지 진리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_ 148쪽

‘연기를 꿰뚫어 알게 하는 수행 방법은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붓다께서는 팔정도,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기억, 바른 삼매를 닦으면 연기를 꿰뚫어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할 수 있다고 설하셨다. _ 156쪽

일부 사람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을 잘못 이해하여 결정론이나 숙명론과 혼동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a라는 업을 지으면 반드시 A라는 결과만 일어나고, b라는 업을 지으면 반드시 B라는 결과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업의 결과는 그 업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업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_ 179쪽

존재의 실상은 물질과 정신의 법들이고, 물질과 정신의 법들은 그것들에 대한 갈애를 조건으로 생겨난 연기된 법이다. 이때 연기된 법이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라는, 특히 괴로움이라는 진리가 고성제이다. 그리고 연기된 법은 갈애를 조건으로 일어난다는 진리가 집성제이다. 따라서 연기된 법에 관하여 꿰뚫어 알면 고성제와 집성제를 꿰뚫어 알 수 있다. 고성제와 집성제는 한마디로 ‘연기된 법은 괴로움이다.’라는 진리를 드러낸다. _ 254쪽

사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사성제는 관념적인 이론이나 사상 체계가 아니라 진리의 가르침이다. _ 264쪽

사마타는 바른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이고, 팔정도 중에 바른 정진, 바른 기억, 바른 삼매가 삼학 중에 ‘삼매[定]’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사마타 수행은 팔정도 중에 특히 바른 정진, 바른 기억과 바른 삼매를 닦음으로써 해로운 법들을 가라앉히고 청정하고 고요하고 집중된 마음인 바른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_ 455쪽

팔정도의 여덟 가지 구성 요소는 계(戒), 삼매[定], 지혜[慧]의 삼학(三學)으로 무리를 지어 나누어 볼 수 있다. 여덟 가지 구성 요소 중에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는 ‘지혜의 무더기’에 포함되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는 ‘계의 무더기’에 포함되고, 바른 정진, 바른 기억, 바른 삼매는 ‘삼매의 무더기’에 포함된다. 그래서 팔정도는 삼학에 포함되고, 팔정도를 닦는 것은 계를 기반으로 삼매와 지혜를 닦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_ 452쪽

위빠사나 수행과 팔정도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위빠사나는 지혜를 계발하는 수행이고, 팔정도 중에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가 삼학 중 ‘지혜[慧]’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은 바른 견해를 바탕으로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현상들의 실상을 통찰한 법을 보고, 법을 바른 사유를 통해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의 관점에서 숙고하고 조사함으로써 사성제에 대한 지혜, 즉 바른 견해를 계발하는 수행이다. _ 457쪽

위빠사나는 사성제에 대한 지혜뿐 아니라 그것을 언제나 망각하지 않는 바른 기억을 확립하는 수행이다. 이런 의미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기억 확립[念處] 수행이라고도 한다. _ 458쪽

불교에서는 중도 수행을 통해 사성제에 대한 지혜와 그것을 잊지 않는 바른 기억을 확립하여 해로운 법들을 소멸한 존재를 성자(聖者)라고 한다. 한마디로 성자는 사성제에 대한 기억을 확립하여 해로운 법들을 소멸한 존재를 말한다. 그런데 사성제에 대한 기억을 확립했다는 것은 ‘철저히 알아야 할 진리인 고성제, 버려야 할 진리인 집성제, 실현해야 할 진리인 멸성제, 닦아야 할 진리인 도성제’를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성자를 일컬어 깨달은 자라고도 한다. _ 503쪽

이렇게 사성제가 불교의 정수라면 사성제를 이해한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은 포기하고, 가능한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라고 정리할 수 있다. _ 533쪽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존재로 태어나게 하는 원인을 버리는 방향으로 바르게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도 존재로 태어남의 원인은 바깥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있고, 마음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가능한 것이다. _ 5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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