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림(Do Dream), 트렌드를 디자인하라] 역발상의 미학, 사찰 좇지 않고 나아감을 위한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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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Do Dream), 트렌드를 디자인하라] 역발상의 미학, 사찰 좇지 않고 나아감을 위한 멈춤
  • 남형권
  • 승인 2020.02.19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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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눈앞에 아스라이 넘실거리던 지리산 너른 품이 안아줄 태세로 점점 가까이 온다. 그 안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화엄사는 지나치게 웅장한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잘 정돈된 모습으로 그저 관대하게 맞이하는 인상이다. 쌀쌀한 아침 추위에도 매표소를 지키는 이름 모를 거사는 따뜻한 미소와 흔들림 없는 합장으로 먼 거리에서 찾아온 객(客)을 반겨준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을 만났다. 어느새 스님 방에 들어와 배를 깔고 여유롭게 누워있는 절 고양이 ‘삼전이’와는 달리 주지 소임 외에도 여러 가지 일로 바쁜 덕문 스님이 넉넉한 웃음으로 환대해 주신다.

덕문 스님은 화엄사 주지 선거 당시 스님들이 다른 걱정 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게끔 ‘출가 에서 열반까지’를 천명하며 교구 중심 승려복지 확립을 강조했고 이례적으로 종책 자료집을 발간해 주목받았다. 화엄사 주지로 선출된 후엔 불교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문화재청 문화재위 원을 맡았던 그간 경험을 토대로 취임식 대신 ‘화 엄사 문화재 보존과 활용’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 국가와 천은사, 지역민, 등산객과 관람객 사이에 30여 년간 묵혀온 분쟁을 해결 했다. 과거 군사정권이 천은사와 협의도 없이 사찰 땅에 군사작전도로를 놓아 생긴 문제였다. 국가와 싸울지언정 국민과는 싸울 수 없다는 게 스님 생각이었다. 천은사가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피치 못하게 받으며 생긴 갈등은 문화재 청이 약속한 문화재 보수 등을 골자로 한 입장료 폐지 협약을 맺으며 풀었다. 국외에서는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 우리나라 구호단체 ‘굿월드자 선은행’을 뿌리내리고 우리나라 공립 유치원에 해당하는 데이케어센터 설립과 교육 지원은 물론, 의료 봉사 등 다양한 도움을 주는 데 애쓰고 있다.

2020년을 맞아 화엄사에서 ‘화엄경 사경의 해’를 선포하고 사경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기존 국제영성 음악제인 ‘화 엄음악제’를 화엄 정신이 깃든 ‘화엄석경’을 바탕 으로 한 사경 문화와, 지리산 차 문화 등을 결합한 새로운 축제인 ‘석경축전’으로 발전시키고자 계획하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진취적인 활동들을 이어가는 덕문 스님에게 현시대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듣고자 했다. 과학 기술이 빠르게 끊임없이 발전하는 지금 사회에 불교는 어떻게 대응하고 변화해야 하는가, 또 불교가 동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그본래 가치를 제공하며 단단하게 미래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변화가 빚어내는 힘을 믿다

변화. 국어사전은 ‘사물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이라고 그 뜻을 풀이한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 달라지는지에 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변화가 결과적으로 내실이 없는가 하면 작고 소박해 보이는 세심한 변화들이 단단한 결과를 빚어내기도 한다. 덕문 스님은 후자에 가깝다. 누군가는 사찰 내 화려하고 큰 건물 불사하기를 자랑으로 여길 테지만 덕문 스님은 낙후된 화엄사 화장실 부터 고쳤다. 정작 이 사찰을 찾는 방문객이 불편하면 휘황찬란한 위용이 무슨 소용이랴. 사람들 눈이 당연하게 머무르는 곳만 찾아, 눈에 띄는 변화만 취하기보다 화엄사 정신과 보이지 않는 가치를 더 깊게,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했다. 쌀 뒤주를 엎어 놓고 35년 동안 쓰고 있었던 각황전 경탁 (經卓, 독경할 때 경전을 놓는 책상) , 얇은 판자에 비닐로 덮어 30년 모셨던 큰스님 영전 등은 그동안 방치됐지만 덕문 스님은 두고 보지 않았다. 또 건물 불사를 하려고 전부 철거하기보다 있는 것을 최대한 놔두고 썩은 부분만 도려내며 전통을 훼손 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더불어 문화재청 문화 재위원으로 활동하는 스님에겐 사찰 내 문화재 역시 단순히 보여주는 유형적 가치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내밀한 문화의 보고였다. 단순히 보수 하기보다 문화재가 가진 고유 정신을 잘 영위해 나가 지금 시대에 잘 접목해 콘텐츠화할 수 있는게 중요했다. 진정한 문화재 활용은 결국 관리자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스님 생각이 다. 이런 스님의 견해는 동국대가 문화재 관련 학과를 신설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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