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라] 제 자리를 찾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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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라] 제 자리를 찾는 기도
  • 남형권
  • 승인 2020.01.2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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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 기도처 2 경산 선본사 갓바위

오르막길,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가파른 계단, 선본사 갓바위로 가는 길은 먼 거리가 아님에도 겨울에 등에 땀이 밸 정도로 고되다. 기도하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은 중간에 바위에 걸터앉아 쉬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며 일행을 기다리기도 한다. 부처님이 계실 정상을 향해 묵묵히 시선을 던지는 사람, 잠시 주변 풍경을 훑어보며 동행자와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갓바위로 가기까지 행태는 제각각이지만 길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감내하여 다다랐을 때 누구나 갓바위 부처님을 뵙고 기도드릴 수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선본사 갓바위는 수많은 사람이 손에 꼽는 기도 도량 중 하나다. 상단에는 갓바위 부처님과 유리 광전이, 중단엔 선본사 대웅전과 만불대원탑이 있다. 하단엔 칠성과 산신, 용왕을 모신 삼성각이 자리 잡고 있다.

팔공산 관봉에 앉아 계신 상단 부처님 정식 명칭은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보물 제431호로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됐으며 머리 위에 마치 갓을 쓴 듯한 자연판석이 올려져 있어 갓바위 부처님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지만 불상 왼속바닥에 조그만 약합을 들고 있어 이 불상 존명을 약사여래좌상이라고 부른다. 약사불에게는 치병을 기원해야 하겠지만 모든 부처님이 그렇듯 중생들의 다양한 바람을 내치지 않을 터, 갓바위 부처님도 마찬가지다. 기도하는 사람의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전해지고 있다.

갓바위 부처님이 모셔진 상단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니 팔공산이 펼쳐 낸 너른 품에 이따금 흰 구름만 스쳐 간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부는 이곳에 기도하러 온 사람들은 얼핏 봐도 200여 명이 훌쩍 넘는다. 갓바위 부처님을 마주했다. 두툼한 얼굴, 큰 표정 변화나 미소 없이 묵묵한 시선과 입술. 인자함보다는 어쩐지 엄숙함이 느껴졌다. 꼭대기에서 시방세계를 응시하고 있었을 갓바위 부처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생로병사 앞에서 무엇이든 지금 눈앞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멀리, 넓게 보라고 말씀 건네시는 듯하다. 막상 기도드리려니 꽉 찼던 원이 오히려 그 장엄함 앞에 비워지는 느낌이다. 이날은 주말이어서인지 대부분 형형색색 등산복을 입고 함께 기도 온 일행이 많았다. 반면 맨 앞줄에 옷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누더기를 걸친 한 노인이 눈에 띄었다. 꾀죄죄한 피부,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수염이 그가 지닌 삶의 무게를 말해주는 듯했다. 문득 그의 눈빛과 마주쳤다. 남루한 행색과 달리 맑고 깊었고 또 온전히 간절했다. 무슨 사연으로 저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까. 차마 다가가 묻지 못했다. 기도를 드린 후 갓바위에 계신 경현 스님과 도유 스님을 만났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힘든 길을 올라와 기도하고 내려가는 사람만 무려 50여 명이라고 한다. 두 스님께 갓바위, 그리고 기도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 기도할 때 무언가를 자꾸 바라게 됩니다.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요?

경현 스님 전 출가 전부터 기도를 많이 했었어요. 보리암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삼천 배를 하곤 했습니다.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했어요.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할 정도였죠. 돌아보면 그냥 하는 기도였고 내 안이 비었다는 느낌을 받는 기도였습니다. 생각을 잊고 무심으로 기도하는 행위, 전 그 자체가 무언가 쌓이는 게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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