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라] 기도하는 마음에 삿됨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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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라] 기도하는 마음에 삿됨이란 없다
  • 양민호
  • 승인 2020.01.21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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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 기도처 1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기도 도량은 간절한 마음이 모여드는 곳이다.

한국불교 수행처 가운데 이름난 기도처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불자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바로 3대 관음성지. 강화도 보문사, 남해 보리암, 그리고 오늘 찾은 강원도 양양군 홍련암이다. 연중무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의상대사와 관세음보살 설화가 깃든 곳

홍련암은 신라 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창건한 절인 낙산사의 모태가 되는 암자이다. 관련 설화는 이렇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러 온 의상대사가 도중에 파랑새를 만났는데, 새가 벼랑 끝 석굴에 들어가 나오지 않음을 기이하게 여겨 굴 앞에서 정좌하고 7일 밤낮 동안 기도를 올렸다. 7일 후 바다에서 붉은 연꽃이 솟아올랐고, 그 속에서 관세음보살님이 현현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 바로 ‘홍련암(紅蓮庵)’이다. 의상대사가 좌선하던 곳이었다는 의상대 아래,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가면 해안가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짧은 해가 저물고 일찌감치 찾아온 겨울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앞은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만이 가득했다. 암자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깔리고, 평일이라 사람들 발길도

잠잠한 그곳에 서 있으려니 불현듯 두려운 마음마저 일었다. 저녁 기도 시간(6시 30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지라 어찌해야 하나 갈팡질팡하고 있던 찰나, 홍련암에서 총무 소임을 보고 있는 각밀 스님이 손을 내밀었다. 밖이 추우니 안에서 차 한잔하자며 부르신다. 뜨끈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스님이 따라주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10여년 전 이곳 홍련암에서 천일기도를 회향했다는 스님. 돌고 돌아 지난해 10월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단다. 말씀하시는 스님 얼굴이 알고 지낸 벗처럼 푸근하고 편안하다. 홍련암이 전해주는 기운이 그런 것일까. 아니면 오랜 기도의 공덕 때문일까. 알 수 없지만, 홍련암과 스님에게서 받은 첫인상이 마치 관세음보살의 음성처럼 포근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기도 시간에 앞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홍련암에 들었다. 오늘 밤 함께 기도 올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좁은 법당 안에 다섯 명의 재가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저마다 어떤 사연을 안고 온 것일까. 어떤 바람을 이루고자 이곳을 찾은 것일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서울에서 함께 올라왔다는 노보살님과 50대 아들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집안에 일이 좀 있어서…”라며 말끝을 흐리는 보살님. 자세한 사정을 캐묻기 어려웠지만, 한눈

에 봐도 보통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들은 말이 없었다. 법당 안 관세음보살상을 응시하는 모자(母子)를 바라보며, 관세음보살님을 향해 이들의 바람을 들어주십사 청을 올렸다. 이들 외에는 모두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특별한 우환이나 걱정은 없다고들 했다. 그럼 무엇을 빌러 이곳까지 오셨느냐 물으니 ‘가족’과 ‘자녀’의 건강과 안녕을 빌기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사회 생활하는 자녀가 일이 잘 풀리기를, 결혼한 자녀 가정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개중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바람을 말하지 않았다. “절에 와서 기도하는 사람 중에 내가 잘되고자 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대개는 가족이나 친척, 지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잘사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 바라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법당 한쪽에서 열심히 절을 올리던 보살님 말씀이다. 누군가는 ‘기도’를 불교적이지 않다며 비난한다. 인간이 자신의 삿된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기도란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사람 마음은 절대 삿되지 않다. 다만 그 대상이 부처님만큼 포괄적이지 않을 뿐이다. 비록 협소한 차원이라도, 거기서 비롯된 마음이 결국엔 세상을 좀 더 환하게 밝히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가족의 가족, 이웃의 이웃으로 번져가는 염원이야말로 기도가 갖는 힘과 공덕이 아닐까. 적어도 오늘 홍련암을 찾은 이들에게 기도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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