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의 자전적 에세이] 50년의 연구 성과를 선보일 전시회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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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의 자전적 에세이] 50년의 연구 성과를 선보일 전시회를 열다
  • 강우방
  • 승인 2020.01.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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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숨 가쁜 1990년대 후반기의 이야기는 다음호로 미루어야겠다. 1995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기간은 내 삶과 학문에 예상치 못한 격변기였으며, 나 개인에 끝나지 않고 한국을 넘어 동양으로, 동양을 넘어 서양으로 파문이 퍼져 간 이야기는 나의 자서전의 시작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그 ‘위대한 시작’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국립박물관 건물(중앙청 건물)을 허물어버리자는 김영삼 대통령의 무지한 용단은 문화에는 전혀 관심 밖이라 가능했다. 그 찬반 논쟁 과정에서국립박물관이 대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과정에서, 나는 2000년에 퇴임하고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의 초빙 교수로 자리를 옮겨 강단에 서게 되었다. 불상 조각을 중심으로 연구하여 온 그 이후의 학문적 변화는 매일매일 드라마와 같았다. 특히 2000년부터 2020년에 이르는 20년 간에 이룩한 연구 성과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것이었다.

지난 50년간의 모든 연구 성과를 전시를 통해 보여 줄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다. 지난 6월 국립문화재연구소 아카이브에 국립박물관 시절 30년 동안 찍은 슬라이드 70,000점을 기증하기로 서명했다. 그 계기로 대전에서 전시를 열기로 했었는데, 이를 거절하고 서울에서 열기를 요청해서 개인전 성격의 전시를 열게 되었다. 전시회가 안국동 인사아트센터 1층과 2층, 각각 100평씩 모두 200평을 쓰는 대규모 전시로 확정되자 모두가 놀랐다. 2020년 1월 9일 개막하고 20일에 끝나는 전시를 어떻게 기획하고 전시할 것인지, 아무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슬라이드 7만 장이란 것은 사진을 찍어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수인지 알 수 없다. 국립박물관 생활 30년 동안 직접 찍은 이 사진 자료들은, 물론 고대 삼국시대 불상 조각을 중심으로 관련된 일본 불상과 중국 불상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당시 워낙 다방면에 관심이 넓었던 터라 건축이나 회화, 금속공예 등 광범위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여러 장르를 촬영한 것이다. 당시 나는 서양의 근현대 미술에도 매우 심취되어 있었다. 2000년에 들어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문적 혁명이 일어나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그런 모든 과정을 전시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슴 벅찬 일이지만 누가 나를 도와줄 것이며 막대한 경비는 어찌할 것인가. 수많은 전시를 기획하여 왔지만 나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려 하니 웬만큼 잘 준비하지 않으면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불교 신자나 불교학자들도 불교 미술에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아는 스님들은 대부분 불교 미술에 등한하다. 불교 조각과 불교 회화들 각각 한 점은 한 권의 경전이라고 저서를 내고 강조하여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하다. 불교경전에 미술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대개 사람은 문자 언어로 된 문헌이나 논문들을 무조건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술 작품 자체를 중히 여기는 나의 연구 태도는 마침내 조형 언어를 세계 최초로 발견해 나가고 있다. 이 자서전은 어쩌면 불상 조각이나 불상 회화에서 어떻게 조형 언어를 찾아냈는지 그 극적인 과정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조형 언어라고 하면, 점-선-면-입체 등을 말하지만, 내가 찾은 조형 언어는 문자 언어와 맞먹는 아니 문자 언어보다 훨씬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문자 언어가 밝히는 진리와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므로 널리 검증되면 세기적 발견이 되고 무의식의 무한한 확장이 되리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1 공주 마곡사 괘불탱 | 1687년 작, 마본채색 | 10m 65cm x 7m 10cm | 보물 1260호
사진1 공주 마곡사 괘불탱 | 1687년 작, 마본채색 | 10m 65cm x 7m 10cm | 보물 1260호

갑자기 이루어진 사진전은 평생의 연구 성과를 시각적으로 한 번에 보여주는 회고전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슬라이드 70,000장에서 우선 500장을 엄선하고 다시 그중에서 300점을 선정하였다. 사진을 분류하고 프린트하여 거는 것이 아니라 빔으로 쏘아 사진들을 천천히 감상하도록 하는 새로운 전시 방법을 택했다. 사진으로 프린트하여 거는 것은 몇 점되지 않는다. 아마도 1층의 가장 중요한 사진들은 석굴암 불상 조각일 것이다. 그 사진들은 내가 직접 조명하여 찍은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주 생활에서 가장 기뻤던 작업이었을 것이다. 주지스님의 특별한 배려로 3일 동안 밤샘하며 찍은 것으로, 내가 찍은 다른 사진들보다도 특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작품들은 화강암을 조각한 것이므로 색이 한 가지여서 파악이 그리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중국은 불상을 점토로 만들든 사암이나 석회암으로 조각하든 항상 채색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각들을 입자가 큰 화강암으로 조각했으므로 정교하게 조각하지도 못하고 채색도 할 수 없어서 하얀색 조각에 순전히 양감(量感)으로만 승부를 하게 된 것이 오히려 한국의 석 조각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아온 까닭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1층 전시장의 작품들은 2000년까지 본질적으로 안 것이 거의 없었다.

2층 전시장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형들, 이른바 ‘문양(文樣)’들인데 그 모든 문양들은 각각 이름이 없는지라 필자가 직접 ‘영기문(靈氣文)’이란 이름을 붙였다. 연구해보니 뜻밖에도 생명생성이 끊임없이 전개하는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는 조형이었다. 영기문을 알게 되면서 불상 조각이나 불상 회화의 모든 것이 풀렸다. 보주에서 온갖 영기문이 생겨나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듯, 용의 입에서 온갖 영기문이 생겨 나와 만물생성 의 근원이 되듯, 여래의 정수리에서 보주가 무량하게 나오고 그 보주에서 온갖 영기문이 생겨 나와 만물생성의 근원이 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전시장 2층에서는 눈부신 여래의 세계가 펼쳐지는 셈이다. 이런 전시를 통하여 앞으로 전개시킬 조형 예술의 혁명적 사건을 미리 조금이나마 체험해두는 것도 좋으리라. 사람들은 문자 언어로 된 문헌이나 논문을 먼저 읽고 신뢰한다. 그러나 내가 조형 언어가 존재하여 있음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알아내고, 그 조형 언어는 문자 언어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문법 체계를 지니고 있음을 찾아냈을 때, 우리가 체험하여 온 세계가 전혀 다르게 보이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로부터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가 신뢰하여 온 문자 언어로 된 문헌, 심지어 불교 경전도 석가여래가 직접 설한 것이 아니요, 뛰어난 인간 보살이 기록한 인류 지혜의 축적임을 알았다. 더 나아가 그 기록에는 옳은 것이 있고 그릇된 것도 있음을 알았다. 조형 언어로 된 조형 예술품은 5,000년 역사의 문자 언어보다 훨씬 더 오래전인 300만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뿐더러, 문자 언어가 표현하는 진리와 조형 언어가 전하는 진리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문자가 없던 문명의 발생 시기에 이루어진 조형 언어에 이미 절대적 진리가 표현되어 있었고, 인도의 산치대 탑에 이미 불교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풍부한 진리의 표현들이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문자 언어를 동서 세계에서 배워서 문헌들을 읽어내고 있지만, 조형 언어를 배운 적은 전혀 없었다. ‘조형 언어로 된 조형 예술품의 본질’이 문양에 고스란히 살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문양이 무엇인지 모르니 사람들이 읽지도 못하고 잘못된 설명도 하지 않아 원형 그대로 살아 있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문자 언어로 된 문헌’들은 이미 첨삭이 가해지고 오류가 더해져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인간의 비극 아닌가. 문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가 조형 언어로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으니 조형 예술품이 21세기에 절대적 순수한 상태로 출현하는 기적이 나의 연구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문자 언어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시대마다 달라서 배우고 익히기 쉽지 않다. 반면 조형 언어는 나라와 민족, 시대마다 글자가 같으며 문법도 같음을 알아냈으니, 이제야말로 동서양 어디에도 국한되지 않는 세계의 르네상스가 가능하게 되었다. 서양의 르네상스는 유럽 문화 정신의 원형인 그리스 조형 원리의 부활을 꾀했으나, 내가 말하는 것은 300만 년 동안의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조형의 상징을 되살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업이니, 이로써 인류가 하나 됨을 증명하고 ‘세계의 르네상스’가 태동하리라 확신한다.

사진2 고려청자 무량보주 향로
사진2 고려청자 무량보주 향로

사람들은 영기문이라는 조형 언어를 배우지 아니하고 영기문 운운하고, 영기문을 익히는 채색분석을 한 점도 하지 않고 보편적 진리인 영기화생론을 이해하려드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만큼 인간은 오류에 가득 찬 문자 언어에 영혼이 오염되어 있어서 그 질곡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고 있지 않다. 조형 예술품이야말로 인류가 구원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임을 어찌 알 것인가. 그저 장식 예술이라고 치부하고 전혀 읽지 못하는, 이른바 문양에 절대적·보편적 진리가 내포되어 있는 줄을 누가 알았으랴. 사람들은 무엇을 알려면 먼저 도서관으로 달려가 문제를 알아내려 한다. 그러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는 가지 않는다. 가 보아도 온통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다시 가지 않는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불교 미술에 대한 책을 읽지만, 그 기록에 오류가 많은 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불교 경전에는 위경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것이 위경이고 어느 것이 진경인지 가리지 못한다. 원래 경전에는 어느 것이 석가여래가 직접 설한 것인지 의견이 구구하다. 예를 들면 『화엄경』은 석가여래가 직접 설한 내용이 아니다. 아무리 제자들이 구전으로 내려온 것을 설명한 것이라 해도 석가 여래의 본의가 아닐 수 있다. 그래도 그 핵심은 석가여래의 설이라 믿고 있다. 그 때문일까. 선종의 흥기는 모든 경전을 거부하고 스스로 깨치기를 강조하여 불교사에서 가장 놀라운 혁명이 일어난다. 경전도 읽지 않고 예배 대상인 불상도 거부하여 목불은 불살라버리기도 한다. 이런 혼란 속에 불교 미술에 절대적 진리가 숨겨져 있음을, 단순한 그림이라고 다들 낮추어 보며 관심을 갖지 않는 불교 미술에 절대적 진리가 표현되었음을 알게 된 것은 불교사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사건이라 확신한다. 누구나 다 아는 염화미소(拈華微笑)란 말이 있다.

말로 통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가 유명하다. 석가모니불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불법의 진리를 전해준 이야기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다. 석가모니가 영산회(靈山會)에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이자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음으로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주었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 이로부터 선(禪)을 염화시중의 미소, 또는 이심전심의 비법이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 내용은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 에 기록되어 있으나 위경이다. 그러나 바로 염화미소란 말 때문에, 그 이야기에 나오는 연화 때문에 사람들은 연꽃에 열광하는 것같다. 불상 조각이나 불상 회화에 보이는 연꽃은 누구나 의심하지 않으나 연꽃이 아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주제이므로 다음에 계속되는 연재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한다.
바로 이 위경 때문에 불상 회화에 보이는 꽃은 모두 연꽃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마곡사 괘불을 보자(사진 1). 여래가 들고 있는 꽃은 연꽃이 아니다. 봉오리가 연봉같이 보이지만 모든 꽃봉오리는 그런 모양을 취하고 있다. 여래가 들고 있는 꽃은 연꽃이 아니라는 것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 本心微妙 六字大明王眞言), 육자대명왕다라니(六字大明王陀羅尼), 옴 마니 파드메 훔(산스크리트어: ॐमणू,ँ 한국 한자: 唵麼抳鉢訥銘吽) 등은 불교의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다. 이 주문을 모르는 불자가 없다. 밀교를 비롯하여 불교에서 사용되는 주문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성철 스님이 50년 전에 ‘옴 마니 반메 훔’이 아니라 ‘옴 마니 파드메 훔’이라고 고쳤으나 현재 전자 쪽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문자적인 뜻은 ‘옴,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 훔’으로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주문이다. 이 주문에 대해서는 온갖 이상한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도 이 주문을 열심히 대중에게 권했지만 역시 의미를 알 수 없는 주문으로 이해했다. 어느 날 나는 그 주문을 풀었다. 풀지 말아야 하는 주문을 푼 것은 죄가 되는가.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에서 보석을 보주로 이해하면 상징이 완벽히 풀린다. 보주라는 것을 동서양 학자들을 만나 물어보았으나 아는 학자가 없었다. 나는 문자에서 답을 찾지 않고 작품 자체에서 풀어냈다. 그 길고 긴 파악의 과정도 후로 미룬다. 또 우리나라 고려청자 가운데 ‘고려청자 칠보문 향로’라는 어처구니없는 용어가 있다. ‘칠보’가 무엇인지 알고나 부르는가. 일본 학자들이 처음에 그들도 무엇인지 몰라 그런 이름을 붙이자 한국 학자들도 그대로 따랐다. 청자의 꽃잎도 뾰족뾰족하여 연잎이 아니다. 연꽃 모양 영기꽃의 씨방에서 투각한 무량보주가 나오는 조형적 진리다. 씨방에서 무량한 씨앗이 승화하여 무량한 보주가 발산하여 우주에 가득 차 있다는 『화엄경』 사상을 조형화한 것이다(사진 2). 보주라는 것은 대우주를 압축한 핵 같은 위력을 지닌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극히 무량한 세계의 조형 예술 작품 가운데 극히 일부만 조형의 진리 표현을 보여드릴 뿐이다.

 

강우방

1941년 중국 만주 안동에서 태어나, 1967년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과 국립경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하고 2000년 가을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초빙돼 후학을 가르치다 퇴임했다. 저서로 『원융과 조화』, 『한국 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법공과 장엄』, 『인문학의 꽃 미술사학 그 추체험의 방법론』, 『한국미술의 탄생』, 『수월관음의 탄생』, 『민화』, 『미의 순례』, 『한국불교조각의 흐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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