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에세이] 매운맛, 단맛, 순한맛... 아무튼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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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매운맛, 단맛, 순한맛... 아무튼 떡볶이!
  • 남형권
  • 승인 2020.01.06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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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는 독하게 맘먹지 않으면 웬만해선 끊기 어렵다. 특히 한번 시동이 걸리면 얼마간은 달려야 한다. 벌써 이번 주에만 세 번째다. 요즘 먹거리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빨간맛’의 도수를 올리고 있지만, 정말 무서운 건 순한 맛이다. 매운맛과 단맛이 적절히 어우러진 순한 맛은 그야말로 입과 접시를 무한 왕복하게 만드는데, 그 순간 ‘스톱’은 불가능하다.
그를 만난 건 바로 그 중독적인 맛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동네 새로 생긴 떡볶이 체인점이었다. 그는 외모부터 남달랐다. 우선 눈길을 끈 건 머리였다. 가닥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숱이 적은 데다 부숭부숭한 곱슬머리를 한껏 위로 치켜 세운 모양 때문이었다. 혹시 무슨 큰 병을 앓고 난 건 아닌지 조심스러웠는데, 그런 염려가 무색하게 검고 탱탱한 얼굴과 적당한 몸집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멋을 부렸다고 보기엔 뭔가 어색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릿발’은 머리숱이 좌우하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혹시 내가 유행에 뒤처진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와 마주 앉은 그녀도 시선을 붙들었다. 살집이 있는 그녀는 국물에서 마지막 남은 떡볶이를 건져 맛나게 먹은 뒤, 쿨피스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다. 그 시각 그곳엔 그와 그녀, 나, 세 사람뿐이어서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어쩔 수 없이 듣게 됐다. 둘의 대화는 죽 일관했다. 흔히 말하는 뒷담화였는데, 그렇다고 누구를 헐뜯는다든지 악의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떡볶이집에서 그를 또 만났다.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그의 앞엔 다른 그녀가 앉아 있었다. 요 녀석 보게! 그도 잠시 나를 봤는데, 낯익다고 느끼는 듯했다. 그런데 이번엔 남자보다 여자에 시선이 꽂혔다. 여간한 미인이 아니다. 까만 긴 머리, 갸름한 얼굴과 하얀 피부, 균형 잡힌 이목구비가 매력적이었다. 더욱이 말투도 똑 부러졌는데 자기주장이 뚜렷해 보였다. 둘은 또 연신 주변 인물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한편으론 진지했고 또 한편으론 재밌어했다.
내가 처음 가본 떡볶이집에서 그렇게 두 번씩이나 만난 건 우연이 아니라 타이밍이다. 남자아이는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기 전, 혹은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종종 들르는 듯한데,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모양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아이치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고, 그 또래 아이가 비속어를 쓰고 떠들썩하게 구는 것과 달랐다. 다음엔 그의 세 번째 그녀를 만나게 될까? 떡볶이집에는 순한 맛과 매운맛, 단맛 세 종류가 있다. 그런데 떡볶이가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떡볶이가 있고 다 제각각이다. 소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는 중학교 때, 나와 친구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영등포시장 떡볶이 골목을 찾았다. 좁고 복잡하고 음습하기까지 한 시장통을 찾아가는 걸 무슨 모험처럼 즐겼던 것도 같다. 줄지어 늘어선 떡볶이 포장마차에 서서 우리는 길쭉하고 매우면서도 달달한 떡볶이를 연신 물을 들이켜며 맛나게 먹고 웃고 떠들었다.
좀 더 커선 신촌의 명물 떡볶이 포장마차를 들락거렸다. 통통하고 쫄깃한 쌀떡이 특징인 이 떡볶이는 뜨뜻한 오뎅 국물과 먹어야 제맛이다. 특히 추운 겨울 포장마차 안에 사람들과 좁은 의자에 끼여 앉아 먹다 보면 왠지 푸근한 게 딴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직장이 있던 명동에선 뒷골목 신당동 떡볶이가 인기였다. 가는 떡볶이에 짜장과 각종 야채를 넣고 전골처럼 끓여내는 데 빨갛지 않은 떡볶이도 떡볶이라는 사실이 좀 신기했다.
떡볶이의 변신과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엔 엽기떡볶이가 유행이더니 이젠 마라떡볶이가 대세다. 얼마나 매울 수 있는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하다. 배달 앱에서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뚝딱 집으로 배달되는 시대지만 떡볶이는 역시 혼자보단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이런저런 얘기 꽃을 피우며 먹는 음식이다. 가벼운 화제가 제격이지만 어쩌다 진지한 게 끼어들지라도 가볍게 날려버리는 게 떡볶이의 힘이다. 떡볶이의 매운맛을 좋아하지 않는 이도 여럿이 먹으면 기세가 만만치 않다. 그
런데 사실 극한의 매운맛 떡볶이는 결코 혼자서는 먹을 수 없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어쩌면 견뎌내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 인생의 매운맛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는 건 고통이지만 여럿이 매운맛을 함께 하면 견딜 만해지고 어느새 고비를 넘게 되는 것 아닐는지.

이윤미
헤럴드 경제 기자.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삼성물산 홍보실에서 근무하다 언론에 발을 들였다. 헤럴드경제의 전신인 내외경제신문에 입사해 문화계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다. 문화부장을 거쳐 선임기자로 주로 책 리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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