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한 물건] 빈 김치통과 와인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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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한 물건] 빈 김치통과 와인 병
  • 백가흠
  • 승인 2020.01.03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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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진 게 너무 많다, 생각했다. 내가 사는 집 안에는 항상 뭐가 많았다. 예전 살던 아파트는 사방 모든 벽에 책장이 서 있었다. 흔한 거실의 풍경은 책 때문에 상상할 수도 없었다. 물론 집에는 등 편하게 기댈 소파나 비어 있는 벽이 없었다. 못 버리는 책이 집안을 어지럽고 버겁게 만들었다. 읽지도 않는 책을 왜 그리 쌓아두고 사나,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마음만 그랬다. 어떤 날은 마음을 굳게 먹고 보지 않는 책을 버릴 셈으로 정리를 시작한다. 하지만 의지는 꺾이고 그새 마음이 누그러져 다시 베란다나 책장 틈틈이 책 놓을 공간을 마련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뭔가를 버린다는 것은 기억을 지우는 일이다.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은 뭐든 잊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책 말고 애지중지하던 물건이 뭐가 있나 떠올려 봐도, 그리 뭐가 많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아니,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를 하지도 못 하는 나를 다시 발견한다. 수백 장의 음반들, 35mm 카메라 서너 개와 구형 폴라로이드카메라 몇 개, 공항에 들를 때마다 샀던 몰트위스키 몇 병, 몇 개의 낚싯대와 릴, 손목시계 몇 개, 안경 몇 개, 소설집 인세로 산 그림 석 점, 영국에서 사서 타고 다녔던 자전거, 야구글러브와 배트, 그리고 책상, 책상을 생각하자 방금 나열한 것들이 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하게 나는 말한 물건들이 없어도, 혹은 당장 없어져도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 곁에 있으니까 있는 것일 뿐. 사랑하는 감정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물건이란 필요할 때 없으면 조금 불편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한 물건들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냥 가지고만 있는 물건과 불화하는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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