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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로 만나는 선지식] 비밀한 가르침은 없다가섭 존자와 아난 존자

직지(直指)는 세계 최초 금속 활자로 제작된 선어록으로, 역대 선지식의 어깨 위에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나침반이다. 직지에 실린 선어록 중 핵심을 가려 뽑아 소개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후 승단은 쿠시나 가라의 말라족과 함께 장례를 마치고, 가섭 존자와 아나율 존자의 제안으로 결집(結集)의 대역사를 진행했다. 천신만고 끝에 결집에 참여한 아난 존자는 12부 경전을 구술(口述)하는 일을 완수했다. 결집이 있던 첫째 날, 가섭 존자는 아난 존자에게 “아난 존자여, 지금 500명의 아라한 앞에서 진리를 깨달은 눈[法眼]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해 보이시오”라고 요청했다. 아난 존자 역시 가섭 존자의 제안이 자신의 결집 참여 여부를 결정짓는 합당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묵묵하게 자리에 모인 대중을 한 번 둘러 본 후 이와 같이 말했다.
“대덕 아라한이시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제자들은 존귀하신 스승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망망한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만 빛나고 달마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짧은 설법을 마친 후에야 아라한들은 아난 존자를 결집 대중으로 받아들였고, 무사히 결집 은 끝났다.

분주한 일들을 마친 어느 날 아난 존자는 한가지 의문이 일어났다. ‘부처님께서는 가섭 존자에게 금란가사를 전승하여 부처님의 법을 이은 적통 제자임을 명확히 밝히시고 열반에 드셨다. 그런데 가섭 존자에
게 남기신 것이 과연 금란가사밖에 없을까? 금란 가사는 부처님이 그토록 경계했던 형상일 뿐인데 그것 말고 무엇인가 비밀한 법도 함께 전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솔직히 어느 때는 서운한 마음이 일어나 아난 존자를 괴롭히는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20여년 동안 스승님을 모신 자신에게 제법의 실상인 비밀한 법에 대해 한마디 말씀도 남기지 않으신 채 열반에 드신 스승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동안 주야로 스승님을 모시면서 철저히 공부하지 않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원망이 교차되어, 아난 존자는 짐짓 무사(無事)한 듯 보였지만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괴로움의 원인을 생각하다 보니 서운함보다 금란가사와 더불어 가섭 존자에게 전해진 정법안장(正法眼藏)의 특별하고 비밀한 법을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음이 다급해 졌다. 그날은 기원정사 넓은 도량 곳곳에 설법을 알리는 깃발이 요란한 바람 소리와 함께 펄럭이고 있었다. 설법을 듣기 위해 스님들과 재가 제자들이 법회당으로 모여들고 낯익은 얼굴 몇몇이 인사를 건네도 점잖게 인사하며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분주한 걸음으로 도량을 가로질러 곧바로 가섭 존자의 처소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다. 위의를 갖추어 인사를 드리고 가섭 존자를 찾아온 용건을 말씀드렸다.
“요즘 저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남아 있던 일을 정리하고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하고 명상하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처님께서 존자님께 전하신 금란가사(金襴袈裟) 말고 특별히 비밀한 법을 전하신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故阿難問迦葉, 世尊傳金襴外別傳, 何法?].”
가섭 존자는 아난 존자의 말을 듣고 한동안 가만히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웃음을 머금은 가섭 존자의 얼굴에 아난 존자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져서 다시 질문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가섭 존자가 아난 존자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다. “아난아[迦葉召阿難].” 가섭 존자의 입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던 아난 존자가 즉시 “예” 하고 대답했다[阿難應喏].
그 찰나에 아난 존자의 마음은 그동안 가졌던 의심이 풀어지고, 의식이 명료해지며, 모든 것이 확연해졌다. 아난 존자는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가섭 존자의 부름에 낱낱의 모공이 요동침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에게 전한 비밀한 가르침은 아난 존자의 “예”라는 응답과 함께 무용한 의심이 되고 말았다. 눈앞에서 아난 존자를 바라보던 가섭 존자는 이제 할 일이 끝났다. 그때 가섭 존자는 “찰간에 매달린 깃발을 거두어 버려라”라고 말했다[倒却門前刹竿着].

해설

선(禪)의 기원은 염화미소(拈華微笑)로 알려져 있다. 선의 첫발은 ‘부처님과 가섭’, ‘연꽃’이라는 실존적 존재들의 등장으로 시작을 알렸다. 부처님께서 연꽃을 들어 보이고, 가섭이 미소로 화답해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 장면에 보이는 교류 방식은 두 사람에게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소통 방식이었을 것이다. 신뢰가 형성된 스승과 제자에게는 불필요한 요소들은 생략되어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섭은 스승의 정법안장을 부촉받아 선불교의 2대 조사가 된다. 그런데 ‘염화미소와 정법안장’이라는 불교사에서 손꼽히는 장면이 우리에게는 한 가닥 가늠의 여지조차도 없는, 온기(溫氣)도 없는 오래된 옛 종이[古紙] 책을 보는 듯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불필요한 요소로 무엇을 생략한 것일까? 두 사람은 ‘언어’라는 표현 방식을 생략하여 통시적으로 선의 생명력이 현재까지 연속되는 공적을 불교사에 남겼다. 부처님과 가섭은 ‘언어’는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여러 요소들을 모아 놓은 순간의 형태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이 대상과 존재를 파악하는 구체적 방법은 구조화와 차별화이며, 이미 인간의 언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체계로 인간은 사물들을 언어 체계 안에서 조직하여 의미를 전달하고 인식을 확장하는 것이다. 부처님과 가섭으로 인해 세상에 나온 선은 그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금 더 친절하게 ‘언어’를 사용하여 낯섦에 한가닥 가늠의 여지를 남겨 주었으니 스승의 자비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가섭과 아난은 ‘연꽃’이라는 상징이 아닌 ‘아난아’, ‘예’라는 언어 체계로 선이 문답(問答)이 되는 순간을 열었다. 그 지점이 아난의 공적영지(空寂靈知)한 성품이 깨어나는 찰나이다. 아난은 언어 체계를 재정비할 틈도 없이 이름이 불린 순간 즉각 ‘예’하고 대답했다. 아주 당연한 응답이기에 생각하고 준비할 잠깐도 없다. 그렇다면 가섭이 ‘아난아’라고 부른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난의 무엇을 가리켜 부른것인가? ‘예’ 하고 대답하는 순간, 아난의 온전한 견문각지성(見聞覺知性)이 작용하여 진실되고 거짓 없는 순일무잡(純一無雜)한 ‘예’가 나온 것이다.
가섭은 아난의 전체를 부른 것이며, 부분의 아난도 아니고, 번뇌의 아난도 아니고, 깨달음의 아난도 아니다. 껍데기를 벗어 버린 아난, 단지 전일(全一)한 아난의 전모(全貌)가 발현되는 그 순간, 스승의 기다림과 제자의 열망이 만나는 기막힌 순간을 기다렸다. 가섭은 ‘찰간을 거두어 버려라’라는 말로 상황을 종료시켜 버린다. 찰간은 무용하며 부처님께 전해 받은 선등(禪燈)은 아난에게 전해졌다. 새로운 스승이 나타났기에 설법을 알리는 찰간은 거두어들이고, 아난의 설법을 알리는 새로운 찰간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직지(直指)를 편집한 백운화상은 이 장면에서 “가섭과 아난 두 존자가 함께 교화할 수 없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명확하고 응답함이 틀림없다. 문답하는 찰나에 대상과 음성, 언어 방식이 모두 갖추어진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선문답이다[二尊不並化, 喚處分明應處眞. 个中具色聲言語也. 最初禪也]”라고 했다. 단박에 낙처(落處)를 꿰뚫는 매우 탁월한 견해이다.
선문의 한결같은 정신은 부처님도, 가섭도, 아난도, 한 시대를 이끈 스승에 대한 찬탄을 넘어설 수 없다. 노자(老子)의 방식대로 절성기지(絶聖棄智)가 스승과 제자의 존재 방식이다. 성인이나 지혜로운 이를 존중하되 그들에게 과도한 신성성을 부여하거나 미혹되어 나의 본류(本流)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내 눈앞에 천길 절벽을 마주하고 있는데 물러날 수도, 한 발짝 나아갈 수도 없다. 여기에 성인이 무슨 소용인가. 비밀한 가르침은 없다.

범준 스님
운문사 강원 졸업. 사찰 및 불교대학 등에서 출재가 불자들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봉은사 전임 강사로 활동 중이다.

범준 스님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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