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봉 스님의 손만 닿으면 열매가 크고 튼실하다
두 해 전 늦여름, 순천 송광사에 간 일이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불일암이 송광사 산내 암자 중 하나이지요. 절 초입에 키 큰 나무들이 즐비했는데,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그곳을 지날 때 흠씬 맑은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나무 향도 그렇거니와 곧게 뻗은, 붉은 기운을 띤 코코아빛 수간이 인상에 남아, 무슨 나무인가 했더니 '편백나무'라고 합니다.
새삼 이 기억이 떠오른 건 지난 11월 조계총림 7대 방장으로 추대되신 현봉 스님의 기사를 찾아보다가 읽은, 스님의 행자 시절 일화 때문입니다. 방장方丈은 쉽게 말하면 종합대학교의 총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강원, 율원, 선원 등을 모두 갖춘 절을 총림叢林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해인사의 해인총림, 송광사의 조계총림, 통도사의 영축총림, 수덕사의 덕숭총림, 이렇게 4곳 총림에만 방장이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 해인총림의 초대 방장이셨지요.
〈송광사〉사보 2018년 2월호에 실린 현봉 스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 대목을 읽고, '아, 그때 스님이 통영에서 솎아 짊어지고 왔다는 편백 나무가 송광사 초입에서 본 바로 그 나무인가? ' 싶었습니다. 스님의 성실함으로 이 지구 한 구석이 맑아지고 그곳을 지나는 뭇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좋은 기운이 전해진 셈이니, 세상에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없음을 새삼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기사에서 스님은 해인사, 수도암, 봉암사 등 제방 선원에서 수십 안거를 하면서도, 산철(해제)에는 어김없이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데, 뙤약볕 아래 풀을 매면서도 화두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작 스님은 ‘농사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고 했지만, 어려서 할아버지로부터 익힌 한자에 해박하여 경전 읽기에 거침이 없었고, 덕분에 누구보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선방 수좌로, 경전에 해박하고, 농사도 잘 지으셨다는 현봉 스님. 앎과 삶이 그대로 가르침이 되는 수행자상을 떠올려 봅니다.
'현봉 스님의 손만 닿으면 열매가 크고 튼실하다.'
현봉 스님이 어떤 스님이신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조계총림 방장 현봉 스님의 저서들
선에서 본 반야심경
대전요통화상 원저 | 현봉 역 | 15,000원
중국 송나라 대전요통 스님의 『대전화상주심경』, 구절구절이 모두 금옥金玉과 같다는 명저를 현봉 스님의 번역으로 만나다.
반야심경
현봉 지음 | 13,000원
마음이 미혹하면 『반야심경』이 나를 읽게 되고, 마음을 깨달으면 내가 『반야심경』을 읽게 된다. 현봉 스님의 명쾌하고 친절한 반야심경 풀이!
너는 또 다른 나
현봉 지음 | 15,000원
불자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경전인 천수경을 경전과 불교 설화, 역사 등 풍부한 사례로 친절하고 자세하게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