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 여성을 말하다] 불교 내 성평등 제고를 위한 몇 가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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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불교, 여성을 말하다] 불교 내 성평등 제고를 위한 몇 가지 제언
  • 이혜숙
  • 승인 2019.12.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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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기획 특집 ‘불교, 여성을 말하다’라는 타이틀을 보니, 필자는 엉뚱하게도 ‘불교, 남성을 말하다’라는 기획 주제가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굳이 여성과 남성을 나눠서 생각하게 되는 경우,

언제·어디서·누가·왜 그러는 것인가. 이런 방식으로 따져서 생각하기 전에 우선 불자라면 누구나 알 것 같은 『유마경』의 법문 일부분을 아래에 인용하고 그 가르침에 대한 우리들 각자의 이해와 믿음이 어떠한지를 돌아보기로 한다.

(법문을 잘하는 천녀에게)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는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천녀가 대답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변치 않는) 여인의 상(相)을 찾아보았지만 찾아낼 수가 없었는데, 무엇을 바꾼단 말입니까? 비유하자면 마치 마술사가 마술로 허깨비 여인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허깨비에게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이 사람의 물음이 옳은 것일까요?” …(중략)… 천녀는 즉시에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천녀와 같이 바꾸고, 천녀 자신은 사리불과 같은 모습으로 몸을 바꾸고 물었다.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으십니까?” … “사리불이여, 만약 당신께서 그 여인의 몸을 바꿀 수가 있게 되면, 모든 여인들도 몸을 바꿀 수가 있게 됩니다. 사리불께서 여인이 아니지만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여인들도 이와 같아서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인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일체제법은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다’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천녀는 곧 신통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사리불의 몸은 본래와 같이 되었다. 천녀는 사리불에게 물었다. “여인의 몸의 특성[女身色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리불이 답하였다. “여인의 몸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닙니다.” (『유마힐소설경』 제7품, 66-67쪽)

‘여성·남성이란 본래 없는 것이다’는 위의 법문을 우리가 불자로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불교계는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가. 법문을 개념적으로 어떻게 이해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법문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어떠하며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고 몸[色]을 포함한 오온(五蘊)이 공하다는 것이 불교의 근간이므로, 불자라면 무엇보다도 그 가르침을 믿어야 하고 일상생활이 그 가르침대로 수행(遂行)되어야 할 것이다. 말로는 누구나 쉽게 외워서 전할 수 있는 교리 해석이지만, 실생활에서 우리가 과연 그대로 살고 있는지를 수시로 성찰해야 한다. 일찍이 불교 승가에서 이른바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등으로 성(性) 과 출가자·재가자를 구별하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교단 운영상 편의를 위한 일종의 분류 기호일 뿐이다. 승가는 본래 평등한 수행 공동체라고 하므로, 그 하위집단(Sub-Group)의 명칭으로써 차별을 불러일으킬 리가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평등한 가르침과 달리, 실제의 승가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관습적인 상호작용과 역할 관계에 따라 집단별 명분(名分)이 담긴 고정 관념을 형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불교계에도 남성인 불자와 여성인 불자의 정체성과 성 역할(Gender)이 마치 고정된 ‘그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것’이 불교에 부합하는지를 점검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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