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 여성을 말하다] 자신의 뜻대로 제 삶을 살다간 선지식 일엽 스님
상태바
[특집 | 불교, 여성을 말하다] 자신의 뜻대로 제 삶을 살다간 선지식 일엽 스님
  • 이미령
  • 승인 2019.12.04 1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엽 스님을 아십니까? 송춘희 씨의 <수덕사의 여승> 그 노래의 주인공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딱 나처럼 일엽 스님에 대해 엄청나게 지독한 오해를 품고 있음을 바로 그 대답에서 확인했습니다.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이 노래는 정말 오래전부터 남녀가 불러댔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 머릿속에는 수덕사는 ‘여승’들만 살고 있고, 그 여승들은 지금도 부처님 앞에서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고 있다는 비련의 주인공 이미지가 각인되어 버렸지요.

일엽 스님(1896~1971), 사실 이분은 워낙 스캔들을 많이 일으켜서 세상 사람들의 가십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독실한 신앙심을 지닌 목사 아버지와 꿋꿋한 인생 철학을 지닌 어머니 이야기는 접어두지요. 종교란 무엇이며, 절대자와 나약한 피조물은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 알게 모르게 관심을 품고 사색을 해온 사

람이었다는 말도 접어두지요. 누구나 부러워하는 서울 유학과 일본 유학을 다녀온 신여성이고, 자기 이름으로 글을 써서 문예지에 발표한 ‘여류문인’이었다는 사실도 일단 접어두지요. 아무리 뒤져도 찾을 길 없지만 <동생의 죽음>이란 시를 열두 살에 썼는데 이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 시인 최남선의 <해에

게서 소년에게>보다 1년 앞선 것이라는 말도 접어두지요.

일엽 스님을 따라다닌 말은 연애였습니다. 몇 명의 남자들이 그녀와 관계했는지를 일렬로 줄 세우기도 하더군요. 나도 한번 따라 해 볼까요?(이제부터는 자연인이자 한 사람의 여성으로 스님을 김일엽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가장 먼저, 결혼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한 남성은 40세의 이노익 교수입니다. 자연과학을 연구한 미국 유학생으로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내정된, 일제강점기 시절 반짝반짝 빛나던 지식인 신사였습니다. 이노익 교수와 결혼을 한 김일엽은 남편의 일본 유학 지원과 적극적인 도움으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언제나 김일엽에게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남편이 장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결혼 첫날 밤 방 한구석에 세워 둔 의족을 보고는 도저히 그를 남자로서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고 용감하게도 고백합니다. 결혼 내내 이런 감정은 지속되었고 결국 이혼합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