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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들] 소통하고 실천하는 비구니회, 시대적 요구에 때를 놓치지 않고 손 내밀 수 있도록전국비구니회 회장 본각 스님

고양 금륜사 1층 로비는 ‘다륜(茶輪)’이란 이름의 아기자기한 북카페로 꾸며져 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지나는 길에 들러 따뜻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사찰은 그 자체로 힐링의 공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금륜사 주지 본각 스님의 철학이 드러난다. 본각 스님의 ‘소통하는 공간’에 대한 강조는 제22대 전국비구니회 회장 선거 공약에서도 드러났다. 바로 전국비구니회관의 문을 활짝 열어 누구나 쉽게 찾아와 의견을 낼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이다. 스님의 공약은 1,000명이 넘은 비구니로부터 화답을 받았다. 제22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으로 취임한 본각 스님을 금륜사에서 만나 비구니 승가의 역할과 비구니 수장으로서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Q ─ 다양한 소임을 맡아오셨는데, 전국비구니회 회장이 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한 가지를 꼽을 수 없습니다. 제 삶을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정말 길어서 마치 여러 번의 생을 사는 거 같아요. 살아오면서 굽이굽이마다 계기가 있었고, 그런 인연들이 쌓여 지금의 제가 된것 같습니다. 어린나이에 출가했지만 어른들께서 학교 공부를 허락해주셔서 학교 공부를 마쳤고, 동국대학교 서양철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출가했습니다. 묘엄 스님이 계시던 수원 봉녕사에서 새로 온 스님을 가르치는 중강 소임을 3년간 맡게 됐는데, 초심자를 가르치면서 문득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교에 대해 더 공부하기 위해 8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석사, 박사를 마치고 1992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중앙 승가대학교 교수가 됐습니다. 이때 비구니 스님들 수행관에 책임자 소임도 맡게 됐고요. 한국 비구니 연구를 시작하게 된 건 대한매일신문사에서 1999년 ‘근세 여성 종교 지도자 명감’을 제작하면서 제게 비구니 스님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당시 비구니에 대한 자료가 『삼국유사』와 같이 고문서에 나온 것 외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 한국 비구니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고 자료집을 모으기 위해 1999년 한국비구니연구소를 세워 지금까지 총 24권의 자료집을 냈습니다. 이러한 26여 년간의 교육자로서 이력, 연구자로서 이력은 그때그때 필요 때문에 시작한 일들이지만 우연히도 이번 회장 선거에 투표하러 오신 2천여 명의 스님들에게 좋게 평가를 받았고, 제가 전국비구니회 회장이 되는 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Q ─ 한국비구니 연구는 현재 중단된 건가요?

중단된 건 아니고 잠시 주춤한 상태입니다. 한국비구니연구소는 중앙승가대학교의 허가를 받은 정식 연구소가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세운 연구소였습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비구 스님 연구소도 아직 없는데 비구니 연구소를 만든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고 허가를 안 해준 것 같아요. 학교의 지원 없이 저 혼자 한국비구니연구소를 운영하다 보니, 제가 2017년 퇴임을 한 이후에는 비구니 연구가 이어지지 못한 거지요. 물론 재직중에도 연구소 운영이 녹록지는 않았습니다. 학교의 지원 없이 제가 직접 기부금을 조달해 연구를 이어갔는데 그것도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혔어요. 또 이미령 선생님, 황인규 교수님 등 비구니 연구에 애정을 갖고 자료집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주셨던 분들이 각자의 길이 있어 연구소를 떠나시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전국비구니회 회장 소임을 맡게 되면서 살펴보니 비구니회관에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가 있더라고요. 간판만 걸려 있고 4년 동안 아무 역할을 하지못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를 재가동시켜 비구니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Q ─ 비구니 연구가 왜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한국 비구니가 불교 발전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평가받기 위한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웃종교인 기독교나 원불교는 종교인에 대한 문헌 정비가 잘 되어있는 데 반해 긴 역사를 가진 불교의 비구니에 대해서는 신문 자료 외에는 정리된 자료가 없습니다. 가끔 외국에서 한국 비구니에 대한 자료를 요청받을 때 우리 불교에서는 아무것도 내줄 것이 없어서 곤란했던 적이 많습니다. 한국 비구니 승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문헌으로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큰 문제
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사실도 역사 자료가 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19년의 비구니는 뭘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비구니 연구소에서 주체적으로 자료를 정리해서 미래의 비구니에게 전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Q ─ 앞으로 전국비구니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계획이신가요?

제가 선거 공약으로 ‘소통하고 실천하는 비구니회’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먼저 비구니회관을 누구나 내 집처럼 편하게 찾아와서 의견을 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더불어 SNS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 온라인 소통 문화도 정착시킬 거고요. 이렇게 온·오프라인 소통을 통해 수렴된 의견을 현실화하기 위해 저를 포함한 비구니회 소임자 30명이 수시로 회칙에 맞게 의논하고 곧바로 실천하는 방향으로 비구니회를 이끌어가고 싶습니다. 또 비구니 승가가 한국 불교의 한 축으로서 할 역할이 참 많습니다. 불교가 사회적인 문제에 다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있어요. 현재 여성 인권과 관련된 사회적인 문제가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비구니 스님 개별적으로는 다문화 가정 여성, 미혼모 등 소외계층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계세요. 이렇게 비구니 스님들이 혼자 힘들게 감당하던 일을 전국비구니회에서 어느 지역에서 어떤 분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파악하고, 함께 논의해 필요한 것을 지원하면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 비구니 스님에 대한 제도나 문화 중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이 있지요. 하지만 비구니 제도는 저희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종단을 통해 끊임없이 불평등한 비 구니 제도의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 거고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문제 상황을 비구니 스님들이 인식하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 비구니 제도 개선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선거를 거치면서 SNS로 소통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어요. SNS를 통해 수시로 소통해서 전국의 비구니 스님들 의견을 수집하는 게 먼저고, 의견들이 수집되면 저희 비구니회가 지혜를 모아서 종단에 건의할 것은 하고 개선할 방법과 길을 모색할 생각입니다.

Q ─ 한국 불교는 굉장히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불교에 소속된 모든 분이 위기 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출가자 수가 격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구 절벽 시대와 맞물려 출가자 수가 감소하고 여성 출가자 수는 더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사찰이 아무리 좋아도 사찰의 주인공 노릇을 할 출가자가 없다는 건 정말 큰 위기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 불교가 경제적 힘이 적다는 겁니다. 물론 종교가 경제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결코 칭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수행 위주로 정신 문화를 잘 지켜왔고요. 그렇지만 경제 사회에서 경제적인 힘은 곧 종교를 알릴 수 있는 힘이기 때문에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한국 불교는 굉장히 위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스님들이 철저히 출가사문의 본분을 지키고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회복해서 국민에게 존경받는스님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 1,700년 동안 한국 불교 문화를 지켜온 재가 불자님들의 보시 정신, 현대 말로 말하면 기부 정신이 필요하겠지요. 스님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거기에 동감해주시는 재가 불자님들의 보시 정신이 더해진다면 한국 불교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존경받는 비구니 스님이란 어떤 스님일까요?
존경받는 비구니 스님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을 잘 지키고 정신세계를 조금도 흔들림 없이 하며 그 계(戒)와 정(定)에서 우러나오는 지혜(慧)로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수행자입니다. 『화엄경』에 ‘불시어시’, 즉 때를 놓치지 말라는 부처님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어떤 요청이 있을 때, 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내밀고 잡아줄 수 있는 스님이 우리 시대에 존경받는 비구니 승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구니 수장으로서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한국불교 발전에 이바지하는 비구니 승가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글.
허진
사진.
최배문

허진  moonspark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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