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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창간 45주년, 다시 보는 월간 「불광」 | 다시 듣는 큰스님 말씀 3 숭산스님

숭산 스님

1927년 평안남도 순천 출생, 1947년 마곡사에서 출가해 1949년 수덕사에서 고봉 스님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대한불교조계종회 의원, 화계사 주지, 대한불교 신문사 초대 사장 등을 역임하고,
이후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해외 포교에 평생을 바쳤다. 처음 1966년 일본에 홍법원을
설립한 후 40년 가까이 세계 각국을 돌았다. 1년에 지구 두 바퀴를 돌 정도로 강행군을 펼치며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등에 국제 선원을 개설했다. 현재 32개국에 120여 개의
선원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가진 제자들이 치열하게
수행하여 참나를 찾으라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이어 나가고 있다.

선(禪)이란 무엇인가? 

나는 설법을 통하여 몇 가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인간은 매일 밥을 먹고 산다. 그러나 왜 매일 밥을 먹느냐 하였을 때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이 답을 옳게 할 때 우리 인간은 대도(大道), 즉 인간은 왜 사느냐 하는 방향이 문명하게 드러난다 하였다. 다음에 하늘은 왜 푸르냐? 이것 또한 문제다. 이에 정답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우주의 대진리를 얻게 될 것이다 하였다. 저 산이 ‘내가 산이요’ 한적이 없고, 저 태양이 ‘인간들아 나를 태양이라고 불러다오’ 한 일도 없다. 인간들이 제멋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은 왜 푸르냐 하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다음 설탕은 언제부터 단 것인가. 이것의 정답을 얻으면 우리 인간의올바른 생활을 발견할 것이다. 인간이 사량분별을 내지 말고 자기가 당한 일에 찰나찰나 오직 할 뿐이라면, 그곳에는 내외가 없고 주객이 사라져 일여(一如), 전일(全一) 세계를 이루어 순간순간 완전무결한 인간 생활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 말한 세 가지 문제를 완전 해결하는 우리 인간이 올바른 진리와 생활을 발견하여 인간과 천상의 복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두었다. “하늘은 왜 푸른가? 설탕은 언제부터 단 것인가? 그리고 인간은 왜 사는가?” 선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삼심이 도인 것이다. 우리가 아견과 아집이 있을 때 평상심이 될 수 없으며, 아견과 아집에서 해방될 때 생사, 선악을 초월한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올바른 대도를 실천하여 얻고 깨닫는 것이지 학문이나 지식으로 알아지는 것은 아니다 했다. 선은 가장 과학적이며 현실적이며 실천적인 것이지 관념적은 결코 없다. 철학적으로 볼 때 유무, 공과 존재에 대한 관념을 초월하여 절대적인 사량(思量) 이전의 세계이다. 이것은 입을 열면 벌써 그르치는 세계다. 왜냐하면 생각이 끊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체득하였을 때, 올바른 지혜가 빛나며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완전한 세계를 증득하게 된다. 또 심리학적으로 볼 때 조건반사와 무조건반사 현상을 불교에서는 작용이라고 한다. 나의 생각과 견해와 입장을 모두 없애버리면 조건반사나 무조건반사가 하나가 되어 찰나찰나 올바른 조건반사를 하게 되니, 이것을 우리는 정견(正見)·정행(正行)·정업(正業)이라고 하며 평상심의 행이라고도 한다. 또한 생리학적으로 볼 때, 우리 인간은 생활하며 몸을 움직일 때, 지성·감성·의지의 세 가지를 조정하여 평균을 유지할 때,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감정이 강하거나 지성 또는 의지가 강하면 평균을 상실하여 개인주의로 흘러가거나 밤낮으로 외경에 끄달려 감정을 조종 못 하는 주책바가지가 되며, 의지가 강하면 어리석은 석두(石頭)가 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외적 교감신경을 제재하고 내적인 자율신경의 건전한 활동을 유지하게 될 때 정견이 나오고 정행이 되는 것이다. 교감신경이 강하여 자율신경이 압박을 받고 옳게 활동을 못 할 때 신경통, 두통, 소화불량 등 온갖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 우리 인간의 중심이 탄탄하도록 교감신경을 조정하여 자율신경을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 선인데, 여기서 올바른 생활을 하게 되므로 정견 지혜가 나오고 정행보살행이 되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본다면 고전 물리학에서는 시간과 공간과 인과를 절대적 가치로 보았지만, 현대물리학에서는 시간과 공간과 인과는 주관에 속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나의 한 생각이 객관적인 한 시간을 길게도 하고 짧게도 한다. 그러면 한 생각이 없다면 시간과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한 생각 이전으로 들어간다면 무한의 시간과 공간이 한 생각 속에 있는 것이 되므로 일념이 곧 무량겁이요 무량겁이 곧 일념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화학적으로 보자. 여기에 섭씨 15° 되는 3cc의 H2O가 있다. 이 3cc의 H2O는 물도 되고 얼음도 되고 수증기도 된다. 그러다 15° 당시 3cc의 H2O의 원자량은 변화가 없으므로 불생불멸이요 부증불감이요 불구부정이다. H2O의 본성이 그러하므로 이름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만물의 본성이 그런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 나의 것이 될 때 대우주의 진리가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유기학(唯氣學)적으로 살펴보자. 우리 인간은 음식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그 음식이 위장에서 소화가 되어 기 에너지가 되어 단전으로 전부 모인다. 그것을 원기라 하며 아무 생각이나 욕망이나 성을 내지 아니하면 그 원기는 그대로 있어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지만, 만약 망명된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모든 원기는 머리로 올라와 소비되고 마는 것이다. 단전의 원기가 없으니 중심 없는 사람이 되며 정견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생각을 모두 쉬고 단전호흡을 공부하면 공기 속에 있는 막대한 에너지가 신체로 들어와 머릿속에 있는 뇌의 때를 깨끗이 하고 또한 우주를 싸고 있는 대기와 하나가 되어 대우주의 에너지가 나의 몸으로 들어온다. 나아가서는 자성을 깨달아 대도를 성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선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삼심이 도인 것이다.”

나는 여러 측면에서 선을 설명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명이다. 진실한 선과는 거리가 멀다. 선은 학설을 떠나 실천하는 데 있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 그 모르는 의심 덩어리를 자나깨나 끌고 나아가면 그 의심덩어리가 바로 나의 본성이 되어 대광명을 나툴 것이다. 고인이 이르기를 ‘다만 알지 못하는 것을 알면, 곧 이것이 견성이라(但知不會 是卽見性)’ 하신 것은 이를 가리킨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르는 것은 안다’ 한 부지철학(不知哲學)에 선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옛날 조주 스님이 무엇을 물어도 ‘차나 마시고 가거라(喫茶去)’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뜻일까. 차 한 잔 마시는 가운데 대우주의 진리와 인생의 근본 문제가 다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설이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1987년 2월호, 5월호 ‘전법기행’ 발췌·정리

글.
숭산 스님

남형권  nhkb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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