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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스미는 맑고 향기로운 그 말씀특집 | 창간 45주년, 다시 보는 월간 「불광」 | 명사들의 명문장

지난 45년간 수많은 필자의 옥고가 월간 「불광」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다. 부처님 가르침과 그로부터 길어 올린 삶의 혜안이 담긴 글들이 무던히도 쌓였다. 그 가운데 여전히 우리 가슴을 울리는 명문장을 추려 보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행복한 삶을 위한 마중물 같은 글이다.

우리는 개인으로 살고 있다. 동시에 한 사회인으로 국가인으로 인류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동시에 이 시간상의 현세로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의 생과 앞으로 다가올 사후의
생을 연결하는 오늘을 살고 있다. 이와 같이 시간·공간으로 넓은 ‘나’를 생각할 때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참나’를 향하여 오늘을 바르게 사는 길에도 한 걸음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1974년 11월호, 광덕 스님

나는 원효대사의 말씀을 따라서 열반·성불이라는 것은 모든 중생의 성숙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하고 싶다.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끝까지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 그러한 사람이 되는 과정을 겪어야만 성불의 이상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1975년 12월호, 이기영(동국대학교 교수)

공부하는 도인들은 부디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모든 경계를 쫓아가며 이것이 무엇인가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놈이 무엇인가 하지 말고 또한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들여다보지 말며
화두를 들 때 잘되고 못 되는 데 마음을 두지도 말며 또한 고요하고 평안한 것을 취하지도 말며
공부하다가 마음이 텅 빈 것을 보고 견성했다고 하지도 말 것이다.
1976년 1월호, 용성 스님(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일 중 한 명)

번뇌 망상이 끓어오르는 그때에는 저 마당이나 바깥 뜰에 나가 왔다 갔다 하면서 화두를 챙겨라.
그러면 성성해진다. 그러면 또다시 가서 살그머니 화두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대로 가만히
두호하고 앉아서 참선을 하다가 또 망상이 들어오든지 혼침이나 잠이 오든지 하면 또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서 왔다 갔다 하면서 잠도 깨고 망상도 쫓아버리고 성성하니 화두를 잡아가지고 또 가서
슬그머니 앉아서 참구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처음 공부는 익어가고 익은 망상은 스러진다.
1977년 11월호, 구산 스님(조계총림 방장)

물건이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가끔 보살피지 않으면 없어지거나 병이 난다. 누가 훔쳐
가기도 한다. 챙기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엔가 열중하고 있거나 공상이 많아서 현실이 골고루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자체가 노이로제라고 볼 수 있다.
1978년 5월호, 이동식(의학 박사)

나는 주인이라기보다는 기질 언제나 그 무엇의 종(奴隸)이었다. 무엇의 종이었을까?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허영의 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시를
잘 쓰고 싶은, 그리하여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었다. 내가 가진 언어들. 그것조차도 한낱 헛된
망집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인간 냄새나는 그것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시(詩)의 종이 되게
하소서. 마음속에 시가 있는지, 아니면 시 속에 마음이 있는지, 시와 마음이 한 얼굴이 되는지 나는
가려내고 싶지 않고 다만 나는 시의 주인이게 하소서.
1978년 8월호, 문정희(시인)

꿈을 이루는 길은 직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선을 따라가다가 장애물이 있으면 치워야 하고
길이 끊어졌으면 길을 이어야 한다. 그것도 불가능하면 가시밭길이라도 헤치고 목적지까지
쟁취하는 집념과 노력이 없이는 꿈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요즘은 ‘세상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인간형’, ‘있으나 마나 한 인간형’, ‘있어서는 절대 안 될 인간형’ 등이 등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세 가지 인간형에 속하지 않나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1980년 2월호, 유현목(영화 감독)

나는 글을 쓰거나 생각을 할 때, 특히 드라마의 대사를 외울 때엔 라디오를 틀어 놓는다.
마치 애청자라도 된 듯한 분위기 속에서 글을 써야 원고지 한 칸이라도 메꿀 수 있는 나의 버릇은
허물일 게 분명하다. 그 허물 속에서 독서를 하고 사색하고 대사를 외운다. 그러나 구태여 허물을
말하라면, 진짜 허물은 숨기고 싶어 하는 버릇이다.
1980년 3월호, 장미희(배우)

대개는 불로써 불을 끌 수는 없다. 노여움으로 노여움을 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로써 불을 끄는 것처럼 노여움은 자비심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소멸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인간인 이상
누구나 현세에서 우선 행복하고 싶다. 아마도 아무도 성냄으로써
행복해진 체험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행복하고 싶다면 노여움을 품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 대하여 따뜻하게
마음 갖고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하는 것이다.
1981년 3월호, 달라이 라마(티베트 종교 지도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봄은 화살표를 해 놓아도 화살표 방향으로 오지 않으며 우주의 순리나
인류의 역사도 다 화살표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꿈꾸는 자가 어찌 화살표를
믿는가. 나는 내 생각이 오고 가는 길에서 모든 화살표를 제거하려고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꿈꾸는 자의 가야 하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87년 4월호, 장석남(시인)

‘참고 기다리며 산다’는 것이 주어진 조건에 굴복해서 산다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조건을 이겨내고 뛰어넘어 창의적인 삶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될 때, ‘참고 기다리는’이 정말 보람
있는 삶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88년 3월호, 신경림(시인)

변할 수 없는 것을 죽어도 변화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면 그것은 힘만 쓰일 뿐 결과는 얻지 못한다.
중년이 되어 문득 자신의 나이를 인식하게 되는 것도 따지자면 이런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에
속한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입니다.’ 이런 말에 현혹되지 말고 ‘내가 나임’을 직시해 보자. 내가
나임을 자각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까를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1990년 2월호, 이근후(이화여대 신경정신과 교수)

땀 흘려 일하여 모은 것만이 확고부동하게 자기 것이 된다. 땀 흘려 일하여 뭔가를 성취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있다.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언제나 길이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확신하기 때문이다. 땀 흘린 보람을
아는 사람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자신에 대한 긍지와 믿음이며,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밑바탕이 된다.
1993년 10월호, 전현수(전현수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칠팔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 속에 앉으면 나는 늘 보리수 아래
앉은 석가모니를 생각하곤 한다. 석가모니는 바로 그 나무의 그늘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인류를 감싸 덮어주는 큰 그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도 누군가를 위하여 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할 일이다. 한데 나는 얼마만 한 그늘을 만들 수 있을까. 그늘이 더 넓고 크고
아늑하고 웅숭깊어지도록 부지런히 공덕을 쌓을 일이다.
1986년 6월호, 한승원(소설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누구’라고 하는 의문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 여기서 ‘누구’는 누구인가? 그 누구는 다름 아닌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의 의문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삶의 문제는 반드시 삶의 주체자인 ‘참나’를 바로 알아야만 해결될 수 있다.
1996년 5월호, 서광 스님(미국 보스톤 운문사 분원 서운사)

동물들은 자신이 아닌 밖의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인간은 자기 안의
것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실체가
어느 날 갑자기 바람 곁에 열매 떨어지듯 사라지고, 결국 ‘나’라고 하는 것은
내가 공간 속에서 점유했던 그 만큼의 ‘무(無)’, ‘비어 있음’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에 오는 두려움이다.
1983년 7월호, 류시화(시인)

금생에 내가 할 일은 다겁생의 업습을 소멸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 나와 더불어 세상을 향상시키는
데 진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나라고 하는 존재는 세상과 더불어 있는 것이지 나만의 세상은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생각지 않는다면 설사 자기만의 큰 능력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쓸모없이 큰 나무가 옆의 작은 나무들을 살 수 없게 하는 것과 같다.
2000년 3월호, 혜거 스님(금강선원장)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는 일불승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불생불멸의 존재,
보배로운 복덕 지혜,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존재라는 것을 철저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람들을 볼 때 사람이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니요, 사람이 부처님입니다.
나와 남이 똑같은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2003년 7월호, 무비 스님(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맑고 향기롭게 살려면 될 수 있는 한 작은 것,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것, 적은 것이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답고 고마운 것을
알게 되면 맑은 기쁨이 샘솟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꼭 필요불가결한 것만 가지려는 사람이 바로 무소유자입니다.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소유해버립니다.
1994년 5월호, 법정 스님(강연 중)

잘난 척하는 마음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심(下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심이란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낮추는 데서 참다운 공부는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항상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의 시작입니다.
2007년 6월호, 월호 스님(쌍계사 승가대학 교수)

하루가 끝나고 우리 목숨은 하루 짧아졌습니다. 우리가 한 일을 조심히
살펴보세요. 우리의 온 가슴을 명상의 길에 놓고, 우리 서로 열심히 정진합시다.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가지 않도록 순간 순간을 자유 안에서 깊이 삽시다.
1998년 2월호, 틱낫한 스님(게송 중)

보조 스님이 세속 나이로 33세 때 팔공산 거조사에서 썼다는 결사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이 곧 도량이다.” 바깥에서 찾지 말고 신속히 내 마음에게로 돌아갈 일이다. 깨끗하게
비질된 도량 마당에 가을의 소슬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상상해보라. 도량 가득 만월(滿月)의 빛이
내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곳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우리의 마음을 그곳에 살게끔
하면 어떨까.
2008년 10월호, 문태준(시인)

불법의 이치를 알아도 현실에서 실천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무지로 인해 이미 오랫동안 습관화되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고 참회하는 정진을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끊임없이 순간순간
자각하며 깨어 있어야, 내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2009년 4월호, 법륜 스님(정토회 지도법사)

우리는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고, 동물은 식물을 지배하는 생명관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불교는
‘모든 중생은 나와 하나’라는 불이의 연기론적 생명 사상으로 출발합니다. 수행을 하려면 건강한
몸과 맑은 영혼이 필요해요. 그 토대는 음식이 만들어줍니다. 그러므로 수행을 완성하고 지혜를
갖추기 위해선 자연계에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꿀벌이 꽃에서 꿀을 따올 때 꽃을 해치지
않고 따오듯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2011년 7월호, 선재 스님(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장)

“갈라지면서 도끼날을 향기롭게 하는 전단향나무처럼.” 고대 인도의 잠언시
‘수바시따’에 들어 있는 구절이다. 전당향나무가 갈라지면서 도끼날을
향기롭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향나무는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원수의 몸에 자신의 향기를 묻힌다. 그때부터 피아의 구별은
사라진다. 원망도 사라진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사람에게 나의 향기를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게 결국은 부처님의 품에 드는 일일 것이다.
2008년 2월호, 안도현(시인)

우리가 진정으로 홀로됨을 느껴보기 전에는 그 근본적인 질투의 마음이 해결되지 않는다. 둘이
있어도 좋고 혼자 있어도 괜찮은 상태가 되지 않는 한, 대상을 옮겨가면서 우리 중생은 끊임없이
질투심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질투 나는가? 그렇다면 질투의 감정에 빠져 나를 잃어버리지
말고, 왜 그런 감정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관찰해 보라.
2011년 9월호, 혜민 스님(매사추세츠 햄프셔 대학교 교수)

‘쉬고 또 쉰다면 쇠로 된 나무에도 꽃이 피는구나(休去歇去 鐵木開花).’ 휴식 없이
무리하게 일만 하면 몸이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몸이 피로해지면 당연히
감각기관이 무뎌진다. 감각기관이 무뎌지면 그야말로 목석이 된다. 목석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쉬고 또 쉬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몸도 쉬고 마음도 쉬라는 뜻이다. 몸만 쉬어서는 제대로
쉬는 것이 아니다. 마음마저 내려놓았을 때 제대로 쉴 수 있다. 그래서 두 번
반복한 것이다. 둘째, 마음을 쉬어라. 그리고 마음을 쉬었다는 그 생각마저
쉬어라. 그렇게 될 때 그것이 진정한 휴식이 되는 법이다. 진짜 제대로 쉬는
것은 쉰다는 말이 필요 없다. 쉬어야 한다거나 쉰다는 말에 걸려 있으면
그것은 반쪽짜리 쉼이 될 뿐이다.
2013년 9월호, 원철 스님(해인사 문수암)

“수행이란 안으로는 가난을 배우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다. 용맹 가운데 가장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 것이다.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다(성철 스님의 공부 노트 중).” 어쩌다 초심을 잃고
수도 정신이 흐려지는 나 자신을 느낄 때, 편리주의에 길들여져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나를 볼때, 인간관계에서 수도자다운 겸손과 인내가 부족한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성철 스님의 이 말씀은
나를 깨우치는 죽비가 되어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2011년 11월호, 이해인(수녀)

산하대지일권경(山河大地一券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세상 모든
것이 다 경전이라는 그 말처럼 삶 자체가 우리에게 훌륭한 스승이자 좋은 배움터라고 생각합니다.
저 사소한 닭 울음소리 하나에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저는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2012년 8월호, 이철수(판화가)

상처가 체질인 사람이 있다. 아니 어쩌면 누구나 인생의 한때는 상처가 체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도 그랬고 너도 그렇다. 삶은 누구에게나 상처투성이기에 그렇다. 중요한 것은 상처
자체가 아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신을 보다 밝은
성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을 바꾼다고
해서 삶이 통째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에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2014년 8월호, 원영 스님(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

과거의 경험이나 자신의 추측, 상상하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고 무아적 관점과,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연관적 통찰인 연기적 관점이 살아 있어야 지혜가 나온다. 그런 지혜의 마음을 늘 살아
있게 쓰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자재한 삶으로 가꾸는 것이다. 결국에 모든 대상의
본질을 본다는 것은 밝은 눈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2015년 1월호,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

명상과 어떤 식으로든 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명상을 삶의 일부로 구축할 순 없습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 명상이란 사실을 스스로 발견해야 해요. 매일 명상을
하는 것은 내 영혼에 주는 선물이며, 나의 불성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일입니다.
2015년 8월호, 타라 브랙(명상 수행가)

‘몸에게 친절하면 몸이 긴장을 풉니다. 몸의 긴장이 풀리고 나면 몸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연꽃 가장 밖에 있는 거친 꽃잎이 열려서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몸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머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알아차리고
또 친절하십시오. 그러나 마음이 생각을 하고 싶어하면 생각하도록 두십시오.
단지 거기에 끼어들지만 마십시오.
2016년 4월호, 아잔 브람 스님(보디냐나수도원장)

참선은 자기 체험입니다. 아름다운 꽃들을 그려 보일 수는 있지만 향기를 그릴 수는 없습니다.
저 하늘의 달을 그려 보일 수 있지만 밝음은 그릴 수 없습니다. 본인이 직접 보는 수밖에 없어요.
2016년 4월호, 혜국 스님(석종사 금봉선원장)

편집부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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