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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한 물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물체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네덜란드 산 꽃무늬 연필 한 다스와 한국에선 판매되지 않는 연필 몇 자루, 구해 달라고 부탁해 두었던 영국산 빈티지 연필 한 다스, 그리고 연필로 쓴 편지 한 통. 소박하지만 따뜻한 꾸러미였다. 오래된 연필의 향을 맡아보았다. 그윽한 나무 향과 묵직한 흑연 향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거짓말처럼 마음이 안정됐다. 자낙스를 한 알 더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욕창이 악화돼 2주가 넘도록 샤워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밤낮없는 통증을 견디느라 땀에 흠뻑 젖었다 마르길 반복하는데 씻지 못하는 괴로움까지 더해져 엉망진창인 날들이었다. 다행히 상처가 꾸덕꾸덕 말라서 방수밴드를 붙이고 활동 보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샤워를 시도했다.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동안 쌓인 꿉꿉함을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샤워를 마치고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옷을 입다가 소변줄이 빠져 있는 걸 발견했다. 잠깐 사이였지만,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소변에 흠뻑 젖어버렸다. 그걸 본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데 화를 낼 대상이 없었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화가 나서 가슴이 조여들든 말든, 통증 때문에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것 같든 말든, 다시 샤워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내내 ‘나는 왜 아직도 살아있나, 이렇게 살아서 얻어지는 게 무언가, 어째서 내 고통엔 끝도 없는 것인가’ 같은 생각에서 놓여날 수가 없었다. 친구가 보낸 연필 꾸러미는 바로 그런 순간에 도착했다. 8년 전 일어난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의 세상도 반 토막 났다. 마비가 일시적인 증상이 아니라 영구적인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두 번 다시는 웃을 수 없을 줄로만 알았다. 더구나 척수가 손상되며 얻게 된 신경병증성 통증을 평생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걸을수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나는 반 토막 난 세상에서는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날 리 없다고, 사는 내내 불행 속을 헤매다 비참한 모습으로 죽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자 시시한 농담에 무신경하게 웃기도 했고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했으며 이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욕심내기도 했다. 반쪽만 남은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온전한 세상을 살아가던 때의 나와 마찬가지로 모든 감정이 생생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고백하자면, 그래서 더 힘이 들었다.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가질 수 없는 걸 욕심내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복기하는 내가 끔찍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늘 함께한 것이 연필과 종이였다. 고통에 잠긴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다가 깊은 잠에서 깬 듯 정신이 들면 사각사각 아무 말이나 끼적였다.

대부분은 절망의 말, 헛된 희망의 말, 채워지지 않을 그리움의 말이었다. 그렇게 종일 사각사각 쏟아낸 말들을 한데 뭉뚱그리면 그날의 내가 되고는 했다. 나는 매일매일 나를 쓰고 그렸다. 읽을 만한 글이 되지 못한 절망의 말이 하릴없이 부유하는 공간에 웅크린 채, 세상의 말과 글을 잃어버린 나를 견뎌냈다. 그 모든 시간이 조각난 영혼을 치유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연필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사실, 거창하게 ‘수집’이랄 것도 없다. 간혹 힘든 시간을 잘 버티고 있는 내게 상을 주고 싶을 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연필을 몇 자루 사거나, 실용적인 소비보다는 그저 아름다운 것을 사는 사치가 부리고 싶을 때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연필을 한 다스 정도 구입하는 게 전부니까. 나보다 훨씬 일찍 연필의 세계에 입문한 친구들이 보내주는 연필은 그래서 더 고맙고 귀하다. 오래된 연필의 향을 맡으며 정성껏 깎은 뒤,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말들을 더듬더듬 써나가는 과정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댄다. 그것은 새하얀 모니터 속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는 일과는 다른 차원의 설렘이다.

연필과 관련된 일이라면 좋아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연필 깎는 일을 가장 좋아한다. 연필 깎는 일은 생각만큼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자동연필깎이로 들들들 깎아 치우고 만다면 연필이 품고 있는 향과 질감이 너무 아깝다. 수동연필깎이나 칼로 깎아야만 그 가치를 확인할 수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에도 몇 번씩 연필을 깎고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은 빠짐없이 소중한 감동의 순간이 된다. 연필을 깎기 위해선 우선 하얀 종이를 한 장 깔아야 한다. 그다음엔 수동연필깎이를 단단히 잡고 동일한 힘을 가하며 천천히 연필을 돌린다. 연필깎이의 칼날을 통과한 나무가 돌돌돌돌 말려 나옴과 동시에 향긋한 나무 향이 풍기기 시작한다. 감각을 예민하게 벼리지 않는다면 알아차릴 수 없는 그 향기에 집중하다 보면 들끓던 내면의 소란마저 잔잔하게 가라앉곤 한다. 칼로 연필을 깎을 땐 조금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연필심과 나무의 비율을 어림잡은 다음 천천히 나무부터 깎아 나간다.

칼날에 나무가 깎여나가면서 풍기는 향은 여전히 그윽하지만, 사실 수동연필 깎이만은 못하다. 칼을 사용할 땐 나무보다는 연필심을 깎아내는 일이 훨씬 인상적이다. 다이아몬드와 동질이상의 관계라는 흑연을 칼끝으로 서걱서걱 긁어내다 보면, 오랜 세월 땅속에서 다져지며 수많은 변화를 거쳤을 흑연의 묵직한 향이 풍겨온다. 그러면, 그 지난한 세월의 향을 맡기 위해 숨을 더 깊이 들이마신다. 까마득한 세월의 무게에 압도되어 반 토막 난 세상에 내팽개쳐진 내 존재마저 아득해지고 만다. 세상 어떤 일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내게 연필을 깎는 일은 내 존재의 깊이와 공허를 한꺼번에 깨닫게 해준 일이었다. 그렇게, 겨우 반쪽 남은 몸의 감각을 한껏 동원해 연필을 깎던 어느 날 생각했다. 뿌리 뽑힌 나무도 이렇게 그윽한 향을 내뿜고 다이아몬드가 되지 못한 흑연도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발하는데, 나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이 꼭 두 다리뿐만은 아니지 않을까. 온 정신을 집중해 연필을 깎고 그 연필로 내 안에 고인 고통과 슬픔, 그리움의 말을 사각사각 적어나가는 시간이 쌓이면서 저절로 든 생각이었다.

여전히 내 안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절망의 말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달팽이처럼 느리게 나아갈지언정 잃어버린 세상의 말과 글을 되찾고 싶어졌다. 내게 종종 연필을 보내주는 다정한 친구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주워 모으듯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연필을 찾아내 부지런히 모으고 있다. 그렇게 모은 연필이 어느 정도 쌓였다 싶으면 연필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보내주곤 한다. 아무리 어렵게 구한 연필도, 연필 한 자루 값이라기엔 다소 과하다 싶은 값을 지불한 연필도, 아까워하는 법이 없다. 연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필 선물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에 그녀는 이번에도 기꺼운 마음으로 내게 보낼 꾸러미를 꾸렸을 것이다. 오래된 연필 특유의 묵직한 향엔 그녀의 마음이 깃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불안증을 가라앉힌 것은 어쩌면 연필이 아니라 연필에 담긴 그녀의 마음이었을지도.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연필 한 자루가 사람에게 주는 위안은, 아마도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위안과 맞닿아 있었기에 그토록 그윽한 모습으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척박한 땅에 단단히 뿌리박았던 세월이 완성해낸 연필은, 그래서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물체이다.

 

황시운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그들만의 식탁」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2011년 제4회 창비 장편소설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컴백홈』, 경기문학 작품집 『홈HOME』, 공저소설 『파인 다이닝』, 공저 산문집 『책이 선생이다』가 있다. 20011년에 일어난 사고 이후 휠체어 생활자로 살아가고 있다.

황시운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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