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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신화] 부처님은 잘생긴 꽃미남이셨을까?

“훌륭하게 태어난 당신의 몸은 완전하고 탁월하며 광채가 나고 보기에 더없이 아름답고 몸의 빛은 금빛이요 치아는 지극히 하얗군요.”
(「맛지마니까야」 「셀라의 경(Selā-sutta)」)

32가지 특징을 갖춘 석가모니 부처님상.

| 부처님 시대에도 외모가 중요했을까?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난 바라문 셀라는 이렇게 감탄한다. 도대체 부처님의 용모가 어떠했기에 이렇게 찬탄하는 것일까? 우리는 부처님의 용모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경전에 부처님의 용모가 묘사되어 있고, 여러 나라의 불상들이 부처님의 용모를 형상화하고 있지만, 그 용모가 제각각이어서 실제 부처님의 용모를 상상할 만한 적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경전에 부처님의 용모를 찬탄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 당시에도 외모가 매우 중시되었음을 말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나라나 비슷했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당(唐)나라에서도 인재를 등용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신(身)은 외모요,
언(言)은 말솜씨요, 서(書)는 글솜씨며, 판(判)은 지혜의 정도다. 그 당시에도 외모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음에 놀랍다. 세상이 그렇다 보니 부처님께서도 당신의 가르침을 널리 펴기 위해서는 뛰어난 용모를 갖추셔야 했을 것이다.

| 부처님 외모의 서른두 가지 특징
왕자가 태어난 지 닷새째 되는 날 숫도다나왕은 아기 왕자의 머리를 감기고 이름을 짓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는 지혜로운 바라문 108명을 초청하여 진귀한 음식을 만들어서 공양하였다. 그러고는 그중에서 8명의 바라문을 선발하여 그들에게 왕자를 보여주고 왕자의 미래를 점치게 했다. 다시 말하면 관상을 보게 한 것이다. 바라문들은 왕자의 용모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왕자는 이상적인 군주인 전륜성왕(轉輪聖王, ⓟcakkavattin, ⓢcakravartin)이나 위 없는 깨달음을 얻을 붓다(Buddha)가 갖추고 있는 32가지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32가지 특징은 문헌에 따라 약간 다른데, 「맛지마니까야」 「브라흐마유 경(Brahmāyu-sutta)」을 토대로 적어본다. (1)땅을 온 발바닥으로 디딜 수 있는 평평한 발. (2)천 개의 살과 테와 바퀴가 달린 모든 형태가 완벽한 수레바퀴가 새겨진 발바닥. (3)넓고 원만한 발뒤꿈치. (4)기다란 손가락. (5)부드럽고 유연한 손과 발. (6)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는 손발. (7)먼지가 조금도 묻지 않는 복사뼈가 돌출된 발. (8)사슴과 같은 장딴지. (9)똑바로 서서 구부리지 않아도 무릎에 와 닿는 두 손.
(10)몸속에 감추어진 성기. (11)황금빛의 몸. (12)황금과 같이 섬세하며 먼지나 때가 끼지 않는 피부. (13)몸의 털이 뭉치지 않고 제각기 자라는데, 그 각각의 털은 털구멍에 하나씩 자란다. (14)끝이 위로 향하는 몸의 털을 지니고 있는데, 위로향하는 털은 감청색이고 검은 색깔이고 오른쪽으로 감겨 올라간다. (15)단정한 몸매. (16)일곱부분이 돌출된 몸. (17)사자와 같은 상체. (18)양어깨 사이에 패인 곳이 없는 충만한 어깨. (19)니그로다 나무와 같은 몸의 둘레. 양손을 활짝 뻗은 크기가 몸의 키와 같고, 몸의 키는 양손을 활짝 뻗은 크기와 같다. (20)똑같이 둥근 양 어깨. (21)최상의 탁월한 맛을 느끼는 감각. (22)사자와 같은 턱. (23)마흔 개의 치아. (24)평평하고 가지런한 치아. (25)간격 없이 고른 치아. (26)희고 빛나는 치아. (27)길고 넓은 혀. (28)범천왕의 목소리처럼 청정한 음성. (29)깊고 푸른 눈. (30)황소의 것과 같은 속눈썹. (31)미간에는 희고 부드러운 면과 같이 생긴 털이 있다. (32)머리 위에는 육계(肉髻)가 있다.

아무래도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꽃미남과는 거리가 있는 외모이다. 부처님께서 군대가지 않아도 되는 평발이라는 것도 이상하고, 손과 발이 오리처럼 물갈퀴 모양이라는 것도 특이하며, 머리 위에 혹처럼 육계가 튀어나와 있다는 것도 독특하다. 그 내용을 『마하붓다왕사』와 『대지도론』을 통해 아주 일부만 확인해보자. 보통사람들은 발을 땅에 내리면 발끝이나 뒤꿈치, 아니면 발바닥 가장자리만 바닥에 닿고 가
운데 부분은 닿지 않는다. 사람들이 발을 들면 발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이 먼저 들리고 디딜 때도 일부분이 먼저 바닥에 닿는다. 그러나 부처님의 평발은 바닥에서 발을 들어 올릴 때도 발바닥 전체가 한꺼번에 편편하게 올라가고 디딜 때도 발바닥 전면이 고르게 땅에 닿게 된다. 만약 부처님이나 전륜성왕이 웅덩이나 울퉁불퉁한 곳이나 깊이 패인 곳, 골짜기, 절벽 등 고르지 못한 바닥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 바닥이 위로 솟아올라서 발을 받쳐주게 된다. 곧 평발은 보통사람들처럼 오래 걸을 수 있도록 발바닥 가운데가 푹 들어가야 할 필요가 없는 신적인 존재인 부처님이나 전륜성왕에게 적합한 것이었다.* 부처님이나 전륜성왕의 손가락들과 발가락들은 모두 길이가 같으며, 오리발의 물갈퀴 같은막이 있다. 오늘날 보통사람이 이런 손 모양을 가졌다면 물갈퀴 같은 막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선천적으로 물갈퀴 같은 손과 발을 가졌다면 대단히 뛰어난 수영선수가 될는지도 모른다. 부처님과 전륜성왕은 머리의 정
수리 부분이 두툼하게 솟아올라 있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정수리에서는 밝은 빛이 퍼져나오며, 이는 보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기쁨을 준다. 여덟 명의 바라문들은 이런 32가지 특징뿐만 아니라 그 특징을 뒷받침하는, 다시 말해 32가지 특징을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게 해주는 80가지 작은 상호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왕자의 용모를보고는 말한다. “대왕이시여, 이 왕자님은 천하를
덕으로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시거나, 출가하여 위 없는 깨달음을 얻으면 중생을 널리 교화할붓다가 되실 것입니다.” 숫도다나왕은 왕자가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에 뛸 듯이 기뻤지만 출가하여 붓다가 될수도 있다는 예언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생겼다. 그러나 그는 애써 불안감을 떨치고 왕자의 이름을 지었다. “왕자의 이름을 ‘해야 할 바를 성취한다’는 의미에서 싯닷타(ⓟSiddhattha, ⓢSiddhāratha)로 하리라.”

 

| 우리도 부처님처럼 편안한 인상을 만들어가자
부처님은 왜 이렇게 보통사람과는 다른 상호를 가지셨을까? 『대지도론』은 “붓다의 몸을 보고 청정한 믿음을 갖는 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상호로 몸을 장엄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인도 신화 속 신들의 모습도 독특하다. 유지의 신 비슈누의 경우 팔이 네 개이고, 각 손에 항상 원반과 곤봉과 연꽃과 소라고둥을 들고 있다. 파괴의 신 쉬바는 눈이 세 개이며, 목에는 푸르딩딩한 독을 저장하고 있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는 머리와 팔이 네 개다. 보통 능력을 가진 사람이 팔이 네 개거나 머리가 네 개라면 기괴하다고 하겠지만, 신들이 그런 모습이라면 인간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오히려 숭앙받는다. 부처님 용모도 그렇
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 용모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32가지 특징과 그를 뒷받침하는 80가지 상호를 갖춘 부처님의 용모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애 동안 쌓은 공덕과 원력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원력은 뭇 중생을 구원할 깨달음을 얻는 것인데, 『대
지도론』에서 그 깨달음의 이름인 아뇩다라삼먁 삼보리는 의인화되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나를 얻고자 하거든 먼저 훌륭한 상호를 닦아 자신의 몸을 장엄하라. 그런 뒤에야 내 그대의 몸에 머무르리. 만일 상호들이 그대의 몸을 장엄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에게 머물지 않으리.”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위한 원력을 굳건히 세우셨고, 결국 깨달음을 위해 외모 또한 가꾸셨던 것이다. 부처님의 외모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의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려 했는데, 『대지도론』 인용문 때문에 외모가 깨달음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하기야 어찌 외모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다만 부처님의 외모가 오늘
날 꽃미남의 외모가 아님에 주목하자. 부처님의 외모는 어디까지나 부처님께서 수많은 생애에 쌓은 공덕의 집합체이다.
오늘날의 외모지상주의는 깨달음, 곧 정신적 성숙은 배제한 채 오직 아름다운 몸만을 추구하는 추세이다. 지난 2017년 원적에 든 세계적인 소설가 박상륭은 인간 세계가 몸의 우주에서 말씀(정신)의 우주로, 그리고 마음의 우주로 진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점점 더 몸의 우주로 전락하고 있다고 개탄하곤 했다. 신화화된 부처님의 외모는 실제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인도 사회에 널리 전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외모도 신격화해야 했던 것이다. 어쨌든 부처님의 용모가 더없이 아름다웠고, 보는 이들의 마음은 부처님을 보는 순간 한없이 편안해졌던 것만은 분명하다. 부처님의 그런 용모는 부처님께서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꾸준히 쌓은 공덕과 수행 덕분이었다. 우리도 그런
외모를 가꾸어보면 어떨까? ‘나를 보는 사람이 더없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32상 중 평발.

동명 스님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지홍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구족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북한산 중흥사에서 살고 있다. 출가 전 펴낸 책으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동명스님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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