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象象붓다] 홍대 앞에서 ‘전통’을 소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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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象象붓다] 홍대 앞에서 ‘전통’을 소환하다
  • 마인드디자인 김해다
  • 승인 2019.11.0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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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드뮤지엄 3rd Museum 개관전 <삼색광경(三色光景)>에 부쳐
서드뮤지엄 <삼색광경(三色光景)> 전시 전경.

 

홍대 앞, 이상한 뮤지엄이 문을 열었다. 이름마저 이상한 ‘서드뮤지엄 3rd Museum’은 전시, 학술, 공연을 비롯하여 민속, 무속, 테크놀로지, 서브컬쳐 등 세상의 모든 변화무쌍한 잡다한 것들을 지향하는 “이상한 공간”을 자처한다. 홍대 앞 문화예술이 한창 꽃피우던 시절 전방위 예술가의 주역이었던 최정화를 필두로 지난 9월 9일 9시, <삼색광경(三色光景)> 전과 함께 개관한 이 이상한 뮤지엄. 유행처럼 떠도는 막연한 의미에서의 대안이 아닌 우리 문화예술의 창의적인 변화, 발전의 근본 바탕을 찾아 튼튼하게 뿌리내리겠다는 포부에 기대가 크다.

민화의 ‘색’, 추사의 ‘빛’, 우석의 ‘경’

민화, 추사 김정희의 글씨, 그리고 우석 최규명의 작품이 서드뮤지엄이라는 공간에서 버무려진 경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삼색광경(三色光景)> 전은 서드뮤지엄의 뜻과 지향성이 담겨 있다. 국적 불명의 품격 없는 상업적 현재만이 자리하는 홍대 앞이라는 토양에 오래된 미래와 새로운 과거를 더하겠다는 포부

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 서드뮤지엄이 소환한 세 가지는 바로 민화의 색, 추사의 빛, 그리고 우석의 경이다. 서드뮤지엄이 제안하는 민화의 색(色)은 민중의 소박한 그림, 공예미나 민예미의 양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었던 민화가 아닌 다중의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조형 실험이자 우리 문화의 뼈대인 무속, 유불선, 풍류 등의 복합적 사유와 정서가 농밀하게 배어든 우리 문화의 원형이다. 전시된 작가 미상의 <제주문

 

자도(濟州文子圖)>는 유교의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글자로 가운데를 장식하고 화면 상하를 갖가지 문양으로 수놓은 작품이다. 화사하고 자유분방한 색감과 조형미는 상류층의 장식화와는 또 다른 자연스럽고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한편으로는 그린 이가 실력이 부족하여 이렇게밖에 그릴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부족한 그림’ 7장을 끝까지 그리고 나름 정성을 다해 배접했을 작가의 손길과 이를 소중히 간직해왔을 소장자의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하여 괜히 따뜻해진다. 상류층이 향유하던 그림들의 깔끔함과 정돈됨을 바라지조차 않은, 법칙에 갇혀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있는 그대로 만들어낸 민화의 색을 서드뮤지엄은 우리 문화예술의 마르지 않는 새로움의 잠재력이자 자긍심의 바탕이라 부르고 있었다.

한쪽 벽을 묵직하게 차지하고 있는 추사의 글씨 <소창다명(小窓多明)>. ‘작은 창 밝은 빛 가득하니 나 오래오래 앉아 있네’라는 뜻으로 추사가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63세 이후에 쓴 작품이다. 한눈에 보아도 글자의 구조를 자유자재로 변화시켜내며 그 홀가분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 즉 ‘세상의 즐거움으로 첫째는 책 읽기(一讀), 둘째는 호색(好色), 셋째는 술 마시기(飮酒)’라는 다소 파격적인 글귀를 담고 있는 이 작품 역시 대쪽같은 선비의 모습으로만 비쳤던 추사의 자유분방한 측면을 한껏 드러내며 서드뮤지엄이 지향하는 품격과 자유로움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드뮤지엄이 소환한 작품은 식민화, 서구화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우리 문화예술 고유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보여준 작가로 알려진 우석 최규명의 작품들이다. 개성에서 유명한 한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 광복, 6.25 전쟁, 남북분단을 몸소 겪으며 우리 역사가 짊어져야 했던 고된 아픔과 한, 특히 분단을 넘은 통일을 향한 열망을 작품에 담아냈다. 우석의 작품을 작가 최정화가 재설치하며 탄생한 작품 <첩첩산중> 중 왼쪽편에 위치한 <고산유수(高山流水)>는 서로의 뜻을 잘 알아주는 친구를 뜻하는 말로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산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바탕으로 파격적인 미감과 자유로운 기세를 느끼게 하는 우석의 작품들을 통해 자신이 발딛고 있는 지금, 여기, 현실의 토양으로부터 출발하되 정체되어 머무르지 않는 생성의 미학을 지향하는 서드뮤지엄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서드뮤지엄이 민화나 서예와 같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범주화된 것들을 지금 바로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세계로 소환하여 그것들이 본래 지니고 있었던 생명력을 봉인해제 시키고, 이 땅에 사는 우리 몸에 꼭 맞는 문화예술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삼색광경(三色光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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