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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나이 듦에 관하여] 늙어간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누가 이세상에 오고 싶어서 온 사람이 있겠는가.또 누가 저세상으로 가고 싶어 가는 사람이 있겠는가.이것은 내의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오는 세월 막지 말고 가는 세월 잡지 마라”고들 한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내 의지대로 될일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가 있으니 오는세월을 막으려고 하는사람들도 많고 가는 세월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도많은가보다. 하긴 주변을 돌아보면 오는 세월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고 가는 세월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균 수명이 4~50대는데 지금은 80세를 훌쩍 넘고 있으니 세월을 막고 잡을 욕심이 생길법도하다.

송강 정철 선생님의 시조에 이런 말이 있다. “이보오, 늙은이. 짐벗어나 를주오. 늙기도 서러워라커녕 짐조차지실까.”참 고마운 시조다. 참고마운 젊은이다. 상대적으로 생각하면 지금의 젊은이도 이런 마음을 갖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런 마음을 가진 젊은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젊은이도많을것이다. 그만큼 세월이 흘러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또 백세시대를 구가하는 삶이니 100세를 살기 위해서 늙은이들도 짐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러니 ‘짐 벗어 나를 주오’ 하는 젊은이도 줄어들었지만 계속 짐 을지고 놓지 않고 살아가는 노인들도 많은 사회가 되었다.

노인이라는 시기는 생애의 마지막 단계이다. 모든 것이 젊을 때 같지 않다. 옛날 서양 속담에 노인이 한분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이웃 노인이라도 빌려서 모시라고 하는 서양속담도 있다. 그만큼 노인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소중했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어떤 매체에서 보도한 내용을 보면 젊은사람들의 노인 혐오증이 60%가 넘는다고 한다. 노인을 곱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각하면 얼마 있지 않아 자기들도 늙은이가 될 텐데 왜 자기 의미래를 혐오하는가. 구체적인 응답을 보니 청년 응답자의 56.6%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기 때문에 그렇단다. 옛날처럼 노인을 멘토로 보지 않고 경쟁자로 보는것이다. 세대 차이는 옛날부터 있었으나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혹자는 나이 들어 즐거운 점도 많다고 하지만 그것을 어찌 젊을때의 즐 거움에 비교하겠는가. 고타마 싯다르타 같은 특한 선각자도 생로병사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보리수 아래에서 6년이나 고행을 하셔서 깨달았는데 우리같은 범인은 60년이 걸려도 힘든 과제다. 우선 늙어서 슬픈일은신체적인 기력과 정신적인 기억력이 떨어지며 살아가는 의욕도 줄고 사회로부터는 따돌림을받는것이다.누가 그런 연령에 즐거움이 있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이세상에 오고 가는 것이 내의지가 아니라 인연 따라온 것이라면, 기왕 와서 사는 동안의 몫은 내 의지다. 내가 자유롭게 설계를 해도 되고 움직여도 되고 경계가 없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있다’고 했다. 늙어도 재미있는 것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솟아날 구멍을 찾아본다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늙음에도 불구하고’란 전제를 생각해볼 수있다. 세상에서 보는 노인에 대한 편견에 분노하지 말고, 또 나이들었다고 해서 분노하지도 말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보면 어떨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신체적인 조건, 정신적인 조건, 그리고 사회 경제적인 조건 등을 아울러 객관화해본다면 바로 그것이 내 삶의자산일 것이다. 이 자산은 지금까지 살아온 개인적인 삶이 다르듯이 다를것이다. 자기만의 자산으로 저만의 솟아날 구멍을 설계해 보는것이다. 늙었으니까, 또는 사회에서 (편견으로) 멸시받는다는 이유를 들어 자기를 학대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부처님은 룸비니에서 태어나시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말을 하셨다. 이때 유아독존은 개인의 독립적인 특성을 말하신 것이다. 누구나 불성이 있어서 깨우쳐 부처가 될수 있다는 말이다. 나이 들어 부처까지는 아니겠지만 내가 살아온 일생의 궤적을 소중히 생각 해야한다. 그 궤적은 이세상에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나의 유일한 과거이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면서 제자들에게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하셨다.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다. 태어나실 때 말과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은 같은 맥락의 뜻이다. 세상 어디에나 편견이 있을 수가 있다. 이런 편견은 내가 고깝게 생각한 다고 없어지는것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내삶의 궤적은 세상 누구도 갖지못한 나만의 자랑스러운 궤적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살아갈 수있다면, 그런 편 견은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이세상에 와서 저세상으로 갈때까지의 삶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소중한 몫이다. 이소중한 것이 바로 노인만이 가질 수있 는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늙으면 슬픈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삶의 궤적을 소중히 생각한다면,노인은 결코 슬프지 않은 나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전에는 노인들의 생명이 이렇게 길지 않았는데 요즘은 백세 시대를 구가하게 되었다. 어느 분이 말하시기를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산다”는 강연을 하셨다고한다. 참재치있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 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 200살까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앞가림을 할수 있는 수준이면 많은 재미를 느끼면서 살 수 있을것이다.그런데 왜 재수없는 사람이 200살까지 살까? 이말은 200살까지 산다고 해도 건강을 잃으면 재수없는 인생이 될것이라는 뜻이다. 건강 못지않게 경제적인 것도 중요하다. 스스로 앞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경제력이라면 고통이 참 많을것이다. 이런 고통을 안고 산다면 200년이라는 숫자는 재수없는 숫자다. 나는 젊을 때부터 이런 말을 즐겨 했다. “누워 있는 사람은 앉아보세요. 앉아 있는 분은 서보세요. 서 계신분은 걸어보세요. 걸을 수있는 분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보세요.” 이 말을 즐겨 썼던 이유는 지금 처해 있는 조건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한 단계 노력을 해보자는 뜻에서다. 누운 사람이 눕고싶어서 누웠겠는가. 눕지 않으면 안될 신체적 조건들이 발생하니까 그럴 것이다. 비록 그런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일어나 앉아보는, 작은 즐거움을 가져보자는 뜻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작은 즐거움이 쌓이면 긴 여운의 즐거움이될 수있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노인 인구 가운데 건강하게 활동하는 분은 3분의 1 정도일 것이다.나머지 3분의 1은 왕성하게라는 말은 붙이기 어렵겠지만 근근히 자기활동을 하는 분일것이고,나머지 3분의 1은 요양원 침상에 누워 세월을 보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세상을 다산것처럼 움츠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이 든다는것이 의학적으로 슬픈 일이긴 하지만 슬프다는 감정에 매여 자신을 학대하고 있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흔히 뜻은 알겠는데 행동하기 어렵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이런 말을 하는분들 중에 생각을 앞세우고 행동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기에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생각을 습관화한다면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은 현재 나에게 주어진 환경적인 조건들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주어진 조건들을 어떻게 극복해 갈 까하는행동으로 이행된다. 생각을 행동화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론이 있다. 그중 나한테 적합한 행동 양식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보자. 작지만,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희망이 다.꿈이다.나이가문제가아니다.이런 희망과 꿈을갖지 않는다면 명실상부 침상에 누울 노인일 수밖에 없다. 젊은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미래에 대한 꿈, 희망을 갖고 그것을 실천해보려는 행동화가 없다면 나이 숫자와 관계 없이 그또한 침상에 누운 노인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팔정도가 있다. 그 첫번째가 정견(正見)이다. 바로 본다는 뜻이다. 나는 노인이 되면서 스스로에게 정견이라는 화두를 갖고 살아왔다. 참 어려운 화두다. 정견은 모든 일의 첫단추에 비견할 수있다. 첫단추가 잘끼워지면 행복한 생애가 될것이고,나이 들어서까지 첫 단추를 잘끼울수 없다면 정말 불행하고 슬픈 노인이 될것이다. 우리 모두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즐거운노인으로바꾸어살아보자.

 

이근후

이화여대명예교수이자,정신과전문의로학생들을가르치고환자를돌봤다.국내최초로 폐쇄적인정신병동을개방병동으로바꾸었고,정신질환치료법으로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으며,대한신경정신의학회회장을역임하는등우리나라정신의학발전에 기여했다.퇴임후엔아내와함께사단법인가족아카데미아를설립하여청소년성상담, 부모교육,노년을위한생애준비교육등을진행하고있다.30년넘게네팔을찾아 의료봉사활동을이어오고있으며저서로『백살까지유쾌하게나이드는법』등이있다.
 

이근후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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