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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한 물건] 주머니

가을이 왔다.가을이면생각나는 것들. 추석, 새학기, 노랗고 크고 놀랍도록 둥그런 달, 산책, 축제. 나는 이무렵이면 이상하게 늘열일곱 살가을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쯤이었던 것같다. 하늘은 절반쯤 어두웠 고절반쯤은 파랬고, 느닷없이 으슬으슬해서 깜짝 놀란 기분으로 교문을 지 나동아리실로가던그때.우린다음주에열릴축제를준비하고있었다.나는 생물반이었다. 우린 햄스터로 쥐미로를 만들 거고, 황소개구리로 전기 자 극실험을 할거다. 축제 막바지에는 대동제에 참여하고, 또우리는 오금공 원에앉아술을마시며놀것이었다.하지만그때나는짝사랑을하고있었고, 지난 학기에 선배들을 욕하다가 걸려서 두들겨 맞았고, 왠지 모르지만 누구 와도 친근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오슬거리는 기분으로, 구부정한 태도 로얕은경사를 걸었다. 바지 주머니에두손을꾹찔러넣고.대체로 나는 무 언가마음이그러하면,주머니에손을넣어왔다. 어릴 적의 나는 예민한 아이다고 했다. 부끄러움도 많았고, 고집도 셌 고,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격한 성미의, 또그러면서도 쓸데없이 호기심이 많 은.말하자면피곤한아이다.그때의내습관은입술물어뜯기,손톱물어뜯 기, 상의의손목시보리 물어뜯기, 장롱에 들어가 있기. 초등학생 때과외선 생님이 올시간에 장롱 속에 숨어 있던 기억이 난다. 장롱 속에서 내가 종종 발견됐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찾다 찾다 장롱 문을 열것이었다. 그래서 장롱 속겹겹이 쌓여 있는 이불 아래에웅크리고있다가 그무게와 그숨막힘이 편안해서 까무룩 잠들었던 기억. 장롱에서 기어 나오니 해가 져있었고, 엄마 도아빠도엄청나게화가나있었지. 내게 주머니란 그런 거다. 내예민함. 내부끄러움. 내외로움을 숨기는곳. 내옷에달린장롱.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주머니는 또이런게아니다.왜 냐하면 내가 주머니에 손을 넣는 건무의식적인 거니까. 어느 날거울을 보다 가내입술이 뻘건 것을 보고서야, 내가 습관적으로 입술을 물어뜯는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 기억이란 건그런거다. 습관은, 패턴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20세기 초반의 추리 소설들 중에서는 인간의 습관 속에 단서를 숨겨 놓는 것 들이 많았다. 코난 도일의 홈즈나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는 그런 사소한 것 들을 발견하는 남자들이었다. 사건과 사건, 점과 점을 이어주고 있는 거대한 방사선의습관들을놓치지않는남자들이었다.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다른 주머니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고 있다. 어 쩌면이건타인의습관일수도있다. 아빠는 점잖은 사람이었다.매너있고다정한 사람이었다. 부드러운 남 자다. 아빠는 해병대 출신이었지만,나는그걸어느날우편함에 들어 있던 해병대전우회안내엽서를통해알았다.그때가중학생때.그정도로아빠는 일반적인 한국 아버지들과 달리 남성성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 만엄마는 늘아빠가 재미없는 남자라고 했다. 엄마는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 면아빠말고다른남자들과연애같은것도제대로해보고싶다고했다.종종 엄마는또아빠를쌀쌀맞다고했다.어릴때나는엄마가왜그런말을하는지 잘몰랐다. 저렇게 부드럽고 다정한 남자에게도 더많은애정을 바라는 게온 당한것인가? 엄마는 마음이 약했다. 어쩌면 물다. 잘울었다. 싫은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면 마음 아파했다. 중학생 때공부를 잘했다고 했다. 대 학에 가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외가댁은 가난했는데, 형제는 일곱이었다. 남자가 셋, 여자가 넷. 공교롭게도 그일곱명중네명이공부를 잘했다. 남자 세명과엄마. 그래서 엄마는 대학에 갈수없었다.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그 렇지만 변하는 건없었다. 엄마는 인근 여상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공부를 잘 했다. 부기2급을 땄다고 했다. 결국 졸업 후서울에 취직했다. 동창들 중에서 도서울로 취직한 사람은 몇명없었다. 올라오니 외갓집에서 막내 외삼촌을 엄마에게딸려보냈다.공부잘하는네명중특히공부를잘했던삼촌을서울 에있는휘문고에유학보낸것이다.셋째이모도같이올라왔다.이모도서울에서 취직자리를 알아봤다. 하지만 취직은 쉽지 않았고, 졸지에 엄마는 남동 생과 언니를 먹여 살려야 했다. 그러다 아빠랑 결혼했다. 아빠는 다정한 남자 다.하지만엄마는더많은낭만을꿈꿨을수도있다.그렇게생각했었다. 나는 아빠를 닮았고, 나는 커가면서 더욱 아빠를 닮았다.나도비교적 부 드러운 남자지만, 그리고 대체로 다정한 태도가 몸에 배있었지만, 늘애인 들로부터 쌀쌀맞다는 말을 들었다. 왜그런걸까? 주머니에 습관적으로 손을 넣는사람이라서?어릴적에는장롱에숨어있던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알게 되는 만큼 또 이해할 수없는것도늘어간다. 마치 지뢰 찾기 게임에서 하나의 블록을 깨면 순식간에 수많은 공간이 생성되는 것처럼. 이제부터 어떤 블록을 깨야 할지 잘모르겠는그런마음처럼. 다만 이쯤 되니까 왜엄마가 아빠에게 늘아쉬워했는지알겠다. 아빠는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늘자기역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걸 침범하는 걸 용납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빠는 장롱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아빠만의 장롱 은늘있었던거같다.어쩌면엄마와는조금더물에물탄듯술에술탄듯한 사람이 잘맞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엄마는 쉽게 마음이 아픈 사람이고,그래서늘쉽게기대했다가,쉽게실망하고,쉽게상처받기때문이다.아니면, 이런관계가가족의본질일수도있다.잘모르겠다. 가을이 왔다. 이상하게도,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면, 이계절이 되면, 아니 더추워질 때면 더더욱, 나는 떠오르는 게있다. 우리 가족이 걸을 때면 늘아 빠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자기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걷던장면. 그모습을 뒤 에서보면서, 나는 자랐다. 그래서 연애를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애인들의 손을 끌어내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걸었다. 대체로 나는 산책을 좋 아했고,또산책을좋아하는사람을좋아해서,많은연애를하며많은길을걸 었던것같다.그러다가외투를벗는계절이올때면내외투의한쪽주머니는 두개의손을감당하다못해축늘어져있었다. 이때의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지만, 그건 도망가는 게아니었던 것같다. 맞잡은 두개의손이들어있는그주머니는 장롱이 아니었던 것같 다. 그렇다면 이때의 나는 무엇일까? 나는 어쩌면 이럴 때마다 혼자 있는 게 아닐지도몰라.나는어쩌면내앞의엄마아빠를따라가고있는건지도몰라. 이런생각을하기도했더랬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나를 보면 할아버지를 빼닮았다고 했다. 나는 또 아빠를 빼닮았다고 했다. 내얼굴과 아빠 얼굴을 번갈아 보며, 그렇게 쳐다보 는어른들은 조금 웃으며, 피라는 건어디안간다는 말도 종종 했다. 이건 유 전자의 신비, 생명의 신비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삶을 떠올렸던 것 같다.어릴적에는삶이란말을몰랐는데도어렴풋이그랬던것같다. 종종 삶이란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삶은무언가를 다음으로 옮기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잠깐 명멸하는 현상처럼 느껴진다.하지 만만약그런게삶이라면 나는 무얼 옮기는 걸까? 혹시 할아버지도 할머니 와걸을때면이랬을까?그랬을지도몰라.가을이오면.

 

임승훈

서울출생. 2011년「현대문학」소설부문등단. 2019년소설집『지구에서의내삶은 형편없었다』(문학동네)를출간했다.
 

 

임승훈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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