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암자의 숨은 스님들] 나한의 얼굴을한스님, 결의로 암자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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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의 숨은 스님들] 나한의 얼굴을한스님, 결의로 암자에 들다
  • 이광이
  • 승인 2019.09.26 09: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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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암 행선 스님

산따라 절따라 두루두루 다니다 보면, 그냥 스님 낯빛 하나만으로 고개가 숙여지면서 존경심이 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가을바람처럼 선선하고 기분이 좋아 환희심이 절로 난다. 하지만 깊은 산중을 헤맨 뒤에야 맛보는 산삼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반면에 행색은 멀쑥해도 굴러다니는 자갈 같은 말을 하는 양반, 수박을 먹는지 수박 겉을 핥는지 도통 알 수없는 사람도 있다. 절이 천 년 이래 고색창연하다고 해서 절을 존경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보면, 다 사람 탓이고, 사람 덕이다. 지리산 북서편 수청산을 올라 백장암(白 丈庵)에 들어선다. 언제 보아도 늘씬한 삼층 석탑 아름답고, 그 뒤로 마침 스님이 내려오고 있다. 선원에서 오는 길이다. 다가서서 합장하고 쳐다보면서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어디선가 보았던 얼굴인 것이다. 분명 잘생기지 않은 것은 틀림없는데, 어디서 보았을까? 우리가 나한전에서 보았던 얼굴들, 고개를 젖히고 깔깔 웃고 있는 바로 그 얼굴이다. 소박하고 익살스럽고 친근한, 영락없는 ‘나한(阿羅漢)’의 모습이 아닌가. 스님이 차나 한 잔 하자고 앞서니 나는 뒤따르면서 말했다. “스님, 응공(應供)의 성자, 나한 같은 모습이네요.” “하, 얼굴이 못생겼다 그 말이지요?” “허, 어 아니요, 그것이 아니라….” “그런 얘기 가끔 듣습니다. 저는 ‘행선(行禪)’ 입니다, 좌선(坐禪)이 아니고. 참선이란 것이 눈만 멀뚱멀뚱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하는 게 아니라 걸어 다니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고 말하시더니, 송광사 은사스님이 ‘행선’이라고 지어줬지요. 그래서 늘 왔다 갔다 합니다.”

지금 승가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너무 타성에 젖어 있지 않은가?

행선 스님, 백장암 암주다. 여기 머문 지 3년. 여느 수좌처럼, 홀로 안거를 나려고 백장암에 왔다가 눌러 앉은 것이 아니다. 수행을 함께했던 다른 수좌 스님 6명과 뜻을 함께 모아, 7인방으로 들어와 백장암을 ‘접수’한 것이다. 이들은 “지금 승가가 가고 있는 길이 바른 길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수좌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백장암으로 들어온 것이다. 가장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이 물음은 지금에 이르러 얼마나 소중한가! 일곱 스님은 구름처럼 떠도는 운수납자가 아니라, ‘취모리검 (吹毛利劍)’을 휘날리는 7인의 검객이었던 것이다. “지금 승가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너무 타성에 젖어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가고 있는길이 부처님이 걸었던 그 길인가? 스스로의 마음속에 이런 물음들이 고여 있었던 거죠. 수없이 안거를 나면서도 이 물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런데 나 혼자 그런 것이 아니고, 뜻을 모아보니 7명의 도반이모인겁니다. 새 길을 찾아 나선거죠.”

일곱 스님은 상주하고 뜻을 받아줄 곳을 찾았는데, 못찾고 헤매다가 2015년 삼척 천은사 주지스님이 흔쾌히 동의하여 그곳에서 한철을 났다. 이듬해 백장암이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실상사 도법스님과 의논을 거친 끝에 여기 들어와 따로 한 세상을 차린 것이다. “그것은 결사 같은 것 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결사보다 작은 것”이라 고 답한다. 스님 답이 쉽다. “철 따라 제방선원에서 안거를 하고 있으니 큰 불편은 없을 것 같은데, 따로 떨어져 나온 이유가 있는가요?” “포살(布薩)을 안하잖아요.” 이 단순한 한마디가 늘어진 일상의 범계(犯 戒)를 베는 예리한 칼날 같다. 포살이 무엇인가? 어느 때 붓다께서 일사능가라 숲속에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셨다. “비구들아, 나는 두달 동안 좌선하려 한다. 밥을 가져오는 비구와 포살 할때를 제외하고 비구들은 내게 오지 마라.” 세존께서 이렇게 말하시고 나서 두달동안 좌선 하셨는데, 밥을갖다드리는 비구와 포살할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비구도 세존께 가지 않았다. 『잡아함경』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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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2019-09-28 21:00:06
행선스님 짧으면서도 핵심을 잘 말하시네요. 허허허 백장암이 한국불교에 새바람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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