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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내지 않아야 제대로 즐길 수있습니다 차(茶)도 인생도!

서울 봉은사 원명스님

1975년 월정사에서 능혜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7년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9년 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용주사, 불국사, 봉암사, 상원사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미륵사,백운사, 삼화사,조계사 주지를 역임하고, 2015년부터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 연휴가 지나고, 한층 가을 냄새가 짙어진 9월 중순 서울 강남 봉은사를 찾았다. 평일 낮절을 찾은 신도들, 점심 식사 후 산책 나온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경내를 돌아 다래헌에 들었다. 세상 소음에서 한 발짝 벗어난듯, 숲속의 작은 별장처럼 아담하게 꾸며진 그곳에서 주지 원명 스님을 만나 차 한잔 얻어 마셨다.

 

할 일 많은 절, 할 일 많은 스님

명절 후유증이란 게 진짠가 보다.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쉬다 온 것 같은데 어째 몸이 무겁다. 잠시 쉼에 익숙해졌던 몸이 다시 일상의 리듬에 맞춰 바쁘게 움직이려다 보니 버거워서 그런 걸까. 넋두리하듯 원명 스님께 앓는 소리부터 냈다. 그러고선 스님께 이번 명절 어떻게 보내셨냐 물으니, 역시 같은 증상을 앓고 계시단다. 단, 조금 다른 의미로.

“명절날 절에 차례 지내러 오는 사람이 많아요. 사정이 있어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매년 합동 차례를 지내는데, 올해도 많이들 오셔서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은데, 또 좀 있으면 큰 행사가 있어요. 정신 차리고 준비 해야죠.”

봉은사는 국내 사찰 중에서 손에 뽑을 만큼 살림 규모가 큰 도심 사찰인지라 평소에도 각종 행사가 많아 바쁠 수밖에 없다. 특히나 9-10월엔 연달아 큰 행사가 있어 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데, 추석과 개산대재가 그것이다. 올해로 1225주년을 맞은 봉은사 개산대재가 오는 9월 29일(음력 9월 1일)부터 9일간 열릴 예정이란다. 불교문화와 전통문화를 두루 알리기 위한 공연과 전시, 체험 행사가 준비 중이라는데, 스님 신경이 많이 쓰이시나 보다.

“우리끼리 축하하고 기념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런 특별한 시간을 통해 어떻게 하면 대중과 더 잘 소통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어요. 그동안 불교가, 사찰이 이런저런 핑계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잖아요. 대승불교는 특히나 대중의 삶과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데 반성이 큽니다. 이제라도 사람들 곁에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할 텐데,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뭘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요. 우선은 사람들 관심사로부터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사람들이 은근히 전통문화에 대 한 관심이 높은데 누구보다 불교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문화를 키워드로 접근해 보자는생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 문화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부처님 말도 알아가게 하는 것, 그게 포교와 소통의 첫걸음이 아닐까 해요.”

봉은사처럼 큰 도심 사찰의 역할은 지역 사회에 기여함은 물론, 불교를 알리고 대중화하는 데도 큰 몫을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절의 대표 소임을 살고 있는 스님의 사명감이야 오죽할까. 오히려 이쪽에서 따뜻한 차 한잔 건네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고생많으시다고, 힘내시라고.


몸과 마음을 맑히는 법, 차와 부처님 말씀

찻상 너머 원명 스님이 차를 내리는 사이,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스님 뒤로 자그만 다기(茶器)들이 진열된 찻장이 있고, 그 옆에 여러 칸으로 제작된 나무 서랍장이 놓여 있다. 옛날 한약방에서나 봄 직한 그 모양새가 신기해 무엇이냐 물었더니, 보이차를 말리고 보관하는 함이란다. 함까지 들여놓을 정도니 보이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스님이 가장 좋아하는 차는 보이차가 아니라 ‘녹차’란다. 다만 지금은 함께 할 수 없는 애별리고(愛別離苦)의 사연이 있다며 차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저는 녹차를 참 좋아해요. 녹차는 우리가 먹을수 있는 식품 중에 가장 깨끗한 음식이거든요. 차 자체도 깨끗하거니와, 차를 마시는 사람 몸을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즐겨 마셨는데, 뭐든 과하면 탈이 난다고 위장에 무리가 와서 더는 마실 수 없게 됐습니다. 늘 마음속에 녹차의 향기를 간직한 채, 대신 보이차를 마시죠(웃음). 보이차는 아무리 마셔도 탈이 안나요. 여러 번 우려 먹을 수있는 장점도 있고요. 무엇보다 정해진 맛이 없어서 언제 어디서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보이차만의 오묘한 매력이랄까요. 자, 드셔보세요. 오늘 보이차는 어떤 맛인가.”
스님이 내려준 보이차를 한 모금 들이켠다. 적당한 온도와 진함, 자극적이지 않은 향이 입가에 감돈다. 따뜻한 기운이 서서히 몸안에 퍼지는 느낌이 좋다. 오늘의 보이차는 아무래도 ‘편안한’ 맛인가 보다. 홀짝홀짝 차를 마시며 계속해서 스님 얘기에 귀기울인다. 스님이 말하시길, 예부터 스님들이 차를 즐겨 마셨던 건 역사적으로 차의 기원이 불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차의 속성이 불교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란다. 부처님 말이 듣는 이의 마음을 맑게 해 업장을 소멸시키고 이로써 온몸을 맑힌다면, 차는 먼저 우리 몸을 맑게 해 깨끗한 몸에 맑은 정신이 깃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여러 차 중 단연 녹차가 효과 만점이라고. 그 말에 녹차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배어난다. 비록 녹차는 아니지만, 오늘 스님 덕에 좋은 차를 마셨으니 돌아가서도 이 맛이 생각이 나겠다고 넌지시 입바른 소릴 던졌더니, 스님 덕담하듯 다도(茶道) 법문 한 말씀 전하신다.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차가 있어요. 맛도 다양하죠. 두루두루 맛보세요. 누가 하는 소릴 듣고, 또 한번 마셔 본 경험을 가지고 그게 최고라고 여기는 순간 아집에 빠지는 겁니다. 맛이라는 건 항상 변하는 거라 정답이 없어요. 일단 접하기 쉬운 우리 차부터 시작해서 견문을 넓혀가시기 바랍니다. 차 마시는 법에 대해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절대로 진하게 마시지 마세요. 점점 더 자극적인 맛을 찾게 되니까요. 연하게 우린 차의 은은한 향과 맛을 느낄수 있어야 진정으로 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빈 잔에 차가 차오르듯

매번 스님들을 찾아뵐 때면 반드시 질문 하나씩을 들고 간다. 서로 좀 덜 어색하게 주고받을 얘깃거리를 안고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마음속 번뇌를 스님의 혜안으로 덜어보려는 속셈이 실은 더 크다. 마지막 찻잔을 기울이며 원명 스님께 물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인데 그러기가 너무 힘든 세상인 것 같다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스님, 웃으며 말하신다.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잖아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 노력하고 사는 게 우리 인생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꿈이란 것을 잘 들여다봐야 해요.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인지, 혹시 다른 무언가에 이끌려 가는 게 아닌지. ‘평상심시불’이라고 해서 불교에서는 내려놔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꿈도 목표도 없이 살라는 말입니까,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아니에요. 당연히 열심히 살아야죠. 목표를 갖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만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예요.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세요. 진짜로 뭐가 부족해서 힘들다고 느끼는지, 이만하면 충분한데 다른 것과 비교해서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나는 아직 부족하다, 평범하지 못하다고 하는 생각은 대체로 상대적 빈곤감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려놓으란 말도, 욕심을 버리란 말도, 당장 들을 때는 이해가 되는데 돌아서면 몸이 따라 주지 않으니 그게 또 문제라고 한술 더 뜨니, 스님 그럴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게 쉬웠으면 다들 걱정이 없을 거라고. 잘 안되니까 힘든 거고, 그래서 수행이 필요한 거라고…. 장고 끝에 악수라. 앞으로는 고민할 시간에 수행하라 이르시는 스님. 텅 빈잔에 향긋한 차가 차오르듯, 맑게 갠 머릿속에 해결책이 떠오를 거라는 게 스님 말이다. 속이 든든하다.

글.양민호 사진.최배문

 

양민호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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