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전통’이라는 이름
상태바
[상상붓다] ‘전통’이라는 이름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19.09.25 1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미술관 <박생광展>

매년 한국근현대미술의 거장을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개최해 온 대구미술관은 올해 박생광 화백의 삶과 작업세계를 되돌아보는 전시회를 선보인다. 불화를 비롯한 ‘전통미술’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활용해 한국의 정체성이 담긴 회화를 찾고자 했던 한 작가의 여정을 다각도로 탐구해 볼 수있는 본 전시회는‘전통’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며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전통’의 기원

‘전통’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흔히 끈질기고 유구한 세월의 감성을 느끼곤 한다. 전통이란 먼 옛날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문화적 혈통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과 동료 역사학자들이 저술한 전통 관련 담론의 고전 중 하나인 『만들어진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에 따르면, 전통이란 어떠한 목적 하에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과거와의 급속한 단절을 필수 조건으로 하는 근대 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전통은 곧 국민들이 공유하는 공동의 정체성으로서 역할을 하며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국민 통합의 열쇠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역시 국민 단결을 목적으로 국가적으로 전개되어온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박정희 정권이 내수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내세운 ‘신토불이’와 함께 탄생한 ‘백의민족’ 개념이나 이승만 정권 때 일민주의(一民主義)의 기본정신으로 제시되었던 ‘홍익인간’을 떠올려 보자. 해방 이후 이른바 ‘왜색’을 타파하고자 더욱 강하게 주창되었던 전통, 그리고 냉전과 분단 등의 상황을 겪으며 정치적으로 소비되어 온 전통 이데올로기까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참으로 복잡다단한 ‘전통 지형도’를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술 역시 이러한 사회정치적 담론과 항상 별개일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 해 보았을때, ‘전통의재해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하는 박생광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박생광식 ‘전통’을 그리기까지

박생광 화백은 190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농업학교를 다니던 중일본인 선생의 권유로 17세에 일본 유학을 떠나며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일본 화원에서 4년간 사군자, 채색화 등 동양화의 기초를 배운 후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서구의 미술과는 구별되는 ‘일본적 서양화’를 추구했던 신일본화파의 대가들로부터 사사하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일본미술원전(日本美術院展)》,《신미술인협회(新美術 人協會)》등에서 꾸준히 입선하며 작업적 역량을 키워나가던 그는 해방을 앞두고 귀국했다. 해방 이후 일본 화풍을 거부하려던 움직임이 강했던 한국화단에서는 채색화는 왜색으로 치부되어 1960년경 지방 화단을 중심으로 서서히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다소 은둔하며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듯보인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까지 동년배 작가들처럼 화단의 예우를 받지 못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1970년대 후반까지 여러 양식과 소재를 실험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고 평해진다. 그러나 1977년에 가진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는 ‘한국적인 것’, ‘전통’, ‘민족의 정체성’ 등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보이기 시작 했다. 평론가 유홍준은 이전 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에 대해 전후 일본화와 같은 화가의 조형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일본화 기량을 과시할 목적으로 이 전시회를 마련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화력에 어쩔 수 없이 붙어버린, 자신도 씻어내고 싶은 부분이었지만 그것이 마음 같이 잘 안된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며 이 전시회를 일본화를 벗어난한국 화에 대한 강한 갈망이 표현된 시작점으로 보았다.

이후 그의 작품은 일본화의 향에서 벗어나 민족미술의 방향으로 더욱 심화되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이루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에는 사찰의 회벽에 그려진 불화나 나무에 칠해진 단청의 색감을 적극 활용하여 강한 원색 효과를 내거나, 현재·과거·미래의 상황을 동시축약하는 불화의 화면 구성을 택하거나, 무속적·토속적 소재뿐만 아니라 불상·목어같은불교적 소재를 애용하는 등 불자들에게 익숙한 요소가 많이 발견되기도 한다. 청담 스님과의 각별한 인연과 한때 출가를 결심 하기도 했다는 박생광 화백에게 불교는 78세의 나이에 떠난 인도 성지 순례에서 남긴 “잘 생긴 것을 내나라옛에서 찾고, 마음을 인도에서 보고, 그것들을 그린 나의 어리석은 그림들을…”이라는 말에서 알수있듯 작품과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이자 오랜 역사 속에 자리한 민족성을 대변하는 상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까지 작업 혼을 불태우며 ‘전통을 개발해낸’ 그는 2019년 지금 이른바 ‘한국의 정체성이 담긴 회화’를 구축한 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의불교! 무당의 그것처럼! 신의 영감을, 또는 우리 고려 불화의 그 회화적 생명력을 현대적인 나의 힘으로 작품화하는 데 있다. -1983년 작가 노트 중(대구미술관 박생광전 도록 발췌)

만물이 복잡한 인연들의 화합물이자 연기의 결과이듯 그의 작품 역시 그러할 것이라 짐작한다. 당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던 민족문화 육성 정책과 그에 따라 형성된 국민 정서, 그리고 서양 과는 다른 일본만의 미술을 찾으려 했던 신일본 화파 스승들의 영향 등무수한 요소들이 그로 하여금 ‘전통’이라는 이름에 천착하게 하고, 결국 박생광식의 ‘전통’을 창조토록 이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그의 회화는, 그리고 ‘전통’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할까?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박생광展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