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음력 정월 초하루는 멋있게 보냈다.
이번 동안거는 갑사(甲寺) 내 대자암(大慈庵)에서 지내고 있는데 오늘 아침예불은 큰스님 집전으로 '세알삼배(歲謁三拜)'를 삼보님께 올리는 새해 인사예불이었다. 보통 때는 본존석가모니불과 그 다음 시방삼세 부처님은 통틀어 올리는데, 오늘은 특별히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 미륵 부처님을 한 분 한 분 모시고 삼배씩 대중이 "세알삼배 -"를 합창하여 올린다.
법당 예불 뒤에 나는 칠성각과 산신각에 올라가 예배하고 내려와 조상님들께 합동으로 세배천도제를 올리는 데 동참하니, 시방세계에 가득찬 제불보살님들과 천지신명과 조상들께까지 빠짐없이 공경 예배한 것이 한없이 흐뭇하다.
아침공양 후는 식당에서 큰스님 이하 사중이 다 모여서 성불도(成佛圖) 윷놀이를 했다. 놀이를 하는 중 내내 목탁을 치고 아미타불 정진을 했으니 내 평생 이렇게 뜻깊은 절 풍속의 설날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이런 생활에 감탄하고 즐기면서 하루하루 절식구가 되어 가는가 싶다.
이렇게 생활이 바뀌면서 내 생각도 어느새 속세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반 년 동안 이 칼럼을 쉬었다가 다시 붓을 들게 된 이유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나는 나의 여생에 대해서 절실한 느낌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늙음의 문제, 죽음의 문제가 발등에 불 떨어진 느낌으로 다가선 것이다.
우리가 참선 공부하는 데는 망상(妄想)과 혼침( 沈)이 두 개의 큰 장애가 된다. 망상이라는 것이 특별히 나쁜 잡념이나 망녕된 생각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 자체가 망상이다. 즉 인간의 제 6 식으로 하는 의식작용으로 하는 '생각' 그 자체가 끊어지지 않는 한은 참선삼매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이 조그마한 글 쓰기 행동도 망상에 속하는 것이라 일단 끊어버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은 처음부터 짐작했던 그대로였다. 참선한다는 모양새만 갖춘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말과 문자로 일평생(아니 다생이래) 인이 박힌 습(習)인데, 망상 그게 그렇게 쉽게 떨어질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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