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주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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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주걱
  • 김인숙
  • 승인 2019.08.2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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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서를 주로 내는 어느 출판사에 들른 길이었다. 서가를 어슬렁거리는데 『한국고대 숟가락 연구』라는 책이 보인다. 꽤나 크고 두툼하다. 숟가락 하나로 이런 책을 내다니, 흥미롭다. 주루륵 넘겨보니 사진도 많다. 박물관에서 보던 숟가락 들. 그런데 나는 박물관에서 숟가락을 볼 때마다 좀 이상했다. 의례용 제기로 만들어 넣은 부장품 이라 해도 실제 모양을 본떠 만들었을 텐데 어찌 저리 생겼을까. 어떤건 술잎이 너무 크거나 작고, 어떤 건 자루가 에스자로 낭창하게 휜 모양. 아니 도대체 저런 걸로 어떻게 먹은 거지? 집에 들고 와 찬찬히 보니 재밌다. 저자는 시대마다 숟가락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 주변국 부장 문화는 어땠는지 따위를 촘 촘히 훑는다. 그에 따르면 숟가락이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는 고려 시대다. 요나라와 몽골 의 영향으로 육식이 많아지고, 국을 많이 먹게 되며 밥상에서 숟가락이 꼭 필요하게 된 때. 살아생 전 쓰던 숟가락을 무덤까지 넣어주던 시기다. 따라서 그 시기 유물은 대개 사용 흔적이 남아 있고, 그걸로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도 추정할 수 있다고. 숟가락 하나로 지난 시대를 읽고, 옛사람의 삶을 본다.

지난겨울이다. 엄마가 방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다. 염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다들 이제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했다. 혼자 생활할 수 없을 테고, 옆에서 수발들 자식도 없으니 어쩌나. 엄마는 수술하고, 재활 치료를 받는 내내 기승전, 요양원 안 가였다. “나는 요양원 안 가! 집에 갈래.” 꿋꿋하고 단호하게 의지 를 불태웠다. 석 달 뒤, 엄마는 걸어서 집으로 돌 아왔다. 50여 년 살아온 당신의 집. 그 집으로 주 중엔 요양보호사가, 주말엔 오남매가 돌아가며 엄마를 찾아가 수발을 든다. 어느 날 나는 엄마 부엌 서랍에서 주걱을 발 견했다. 예전에 엄마가 밥할 때 늘 쓰던 주걱이다. 내가 막내라 엄마 곁을 맴돌았나. 부엌에서 밥하던 엄마 모습이 생생하다. 엄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쌀을 안쳤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반찬 준비를 한다. 호박잎이나 깻잎을 따 다 씻거나 가지를 죽죽 찢어 놓는다. 작은 보시기에 계란을 풀어놓기도 했다. 밥이 끓어오르고 자작자작 보타지면 솥뚜껑을 밀어 연다. 뿌연 김이 자욱한데, 스르륵 뚜껑 닫히는 소리. 눈 깜짝할새 반찬거리를 안쳤다. 그러니까 엄마는 밥솥 하 나로 밥도 하고 반찬도 했다. 불이 귀하던 시절, 뭐든지 밥솥에 쪄내면 반찬이 되었으니까. 호박 잎을 쪄낸 날 밥에는 호박잎 빛깔이 돌고, 가지를 쪄낸 날 밥에는 가지 빛깔이 돌았다. 호박잎이나 가지에도 밥물이 배어 부드럽고 맛있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어린 입맛에 가장 좋았던 건 계란찜 이다. 여름에는 가마솥에 감자를 삶아 주기도 했다. 그건 밥솥에 찐 감자랑 차원이 달랐다. 술날로 껍질을 벗기고 당원을 살짝 쳐서 바닥이 조금 눌 때까지 감자를 삶았다. 그래야 보슬보슬 분이 피니까. 포근포근하고 달달한 그 맛이란! 엄마는 바닥에 눈 감자도 박박 긁어 줬다. 감자 누룽지라 해야 하나. 그 맛도 잊지 못한다. 엄마는 그 주걱 으로 걷어내고 퍼내고 긁어내어 새끼들을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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