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하루 여행] 푸른 바다와 섬들이 손짓하는 곳
상태바
[포토에세이-하루 여행] 푸른 바다와 섬들이 손짓하는 곳
  • 양민호
  • 승인 2019.08.23 1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해

바캉스의 계절, 여름을 맞아 남해로 떠났다. 짧은 하루 여행이지만, 잠시 일상의 짐을 훌훌 떨쳐버리고 남해의 푸른 바다를 둘러보며 마음을 쉬었다. 긴 여름이 무르익고 있었다.

#남해 보리암

‘북상하는 태풍의 영향으로 하루 종일 흐리거나 비가 내리겠습니다.’ 아침 일기예보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래서 남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을 까. 이른 새벽, 겨우 잠을 뿌리치고 일어 나 짐을 싸는 마음이 무겁다. 끄무 레한 새벽하늘을 하염없이 바라 보며, 보리암으로 향했다. 보리암을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1주차장(복곡주차장, 성수기 승용차 기준 주차료 5,000원)에 차를 대고 셔 틀버스(왕복 2,500원)를 이용해 제2주 차장까지 가서 걸어 올라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제2주차장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가 는 것이다. 8월이라 성수기이긴 하지만,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나선 덕에 제2주차장까지 차 를 가져갈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15분 정도 오르면 보리암이다. 희미하게 비치는 가로 등 불빛을 따라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오른다. 거세게 불어오는 동풍이 해무를 잔뜩 눈앞에 늘어 놓는다. 10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길, 쏟아지는 땀과 습기로 금세 온몸이 축축하게 젖는 다. 무거워진 몸만큼이나 마음도 무겁다. 일출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리암에 도착했다. 캄캄하다. 예상 일출 시 각이 10분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남쪽의 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먼저 와서 해수관세음 보살상 앞에 자리 잡은 사람들 역시 일출 감상은 포기한 낌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 광전(普光殿)에 들어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전에 삼배 올리며 기도를 드린다. 보리암이 어떤 곳인가. 우리나라 수많은 기도처 가운데 가장 영험하기로 소문난 곳 아닌가(3대 기도처든 5대 기도처든 남해 보리암은 무조건 들어간다).

그런 곳인 만큼 먼 길 달려온 이의 작은 바람쯤은 흔쾌히 들어주시리라. 법당을 나와 화엄봉 아래 자리를 잡았다. 보 리암에서 일출과 다도(多島)를 감상할 수 있는 포 인트는 여러 곳이 있는데(사실 어디서든 잘 보인다), 해수 관세음보살상 앞과 화엄봉 아래, 그리고 조금 올라가 금산 제1경이라는 망대가 있는 금산 정상 (681m)이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서서히 날이 밝아 온다.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남해의 절경 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낸다. 눈앞으로는 남해 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는 상주은모 래비치, 저 멀리 바다 위로는 겹겹이 선 크고 작은 섬들이 비죽비죽 솟아오른다. 비록 삼대가 공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은 아니었지만, 장 엄한 남해의 시작을 목격했으니 말로만 듣던 보 리암의 기도빨(?)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 밀려오는 얕고 두터운 구름 들, 붉은빛 감도는 아침 바다와 하늘이 사방에 형 용할 수 없는 신령스러움을 더한다. 자연이 펼쳐 보이는 환상의 파노라마를 흠 뻑 감상하고 다시 보리암으로 내려온다. 법당에 들어가, 이번에는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불현듯 던진 욕심 같은 바람조차 아낌없이 들어주는 불 보살님의 자비로움에 삼배! 그러고서 법당을 나 오는데, 맞은편 예성당(禮聖堂, 설법당) 주련의 글귀 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첨앙제번뇌(暫時瞻仰除煩 惱, 잠시 우러러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 넉넉히 보았으면 홀가분하게 돌아가라 이르시는 말씀 인 듯하다. 욕심 많은 한객은, 그 말씀 잠시 유예 하고 보리암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석불전 부처 님께 합장 인사 올리고, 해수관세음보살님께도 예를 갖춘다. 극락전에 들러 만불(萬佛)을 뵙고, 태조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올렸다는 선은전(璿 恩殿)까지 다녀온 다음에야 비로소 하산길에 오 른다. 내려가는 길이 오를 때보다 여유롭다. 잠에 서 깬 짙은 녹음이 흙길 위로 쏟아진다. 그 길 따 라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방학을 맞은 어린 학 생들까지, 주말을 맞아 보리암을 찾은 사람들 행렬이 줄지어 섰다.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일까. 바짝 치켜든 고개가 다들 보리암을 향하고 있다.

 

INFORMATION

남해 보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의 말사이다.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수도하던 곳으로, 스님은 이곳을 보광산(普光山) 보광사(普光寺)라 불렀다. 이후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을 건국하는데, 그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현종 때 이곳을 왕실 원당으로 삼고 절 이름을 보리암(菩提庵), 산 이름을 금산(錦山, 명승 제39호)으로 바꾸었다.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군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관음성지로 손꼽힌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