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불광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band

intagram

youtube

페이스북
밴드
인스타그램
유튜브


상단여백
HOME 월간불광 칼럼
[테마 에세이-살며 사랑하며] 규칙과 제약의 틀 밖에서 얻는 것

최근 중학교 은사의 퇴임 만찬에 참석했다. 초등학교 1년 때부터 대학 4년까지 무려 16년간 수많은 선생님을 모시면서 관련 모임에 나간 건 중2 담임이던 이 ‘선생님’이 유일하다. 갔더니, 내 바로 위 기수와 아래 기수, 동기들이 다수 모였다. 시작부터 관련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20대 중반, 혈기왕성하게 부임해서 우리에게 ‘빠따’를 얼마나 세게 때리던지….” 내 동기가 웃으며 투덜대자, 선생님이 “인간 되라고 때렸지,
감정으로 때렸느냐.”며 맞받았다. 바통을 이어받은 선배가 한술 더 떴다. “매주 산행할 때 선생님이 우리에게 먹인 소주도 여러 잔이었지.” “맞아. 지금 시대면 영창 수십 번도 더 갔을 텐데….” 아래 기수가 기가 막힌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웃음보가 동시에 실내 한가득 터졌다. 선생님도 이에 질세라 항변했지만, 목소리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 앞에서 술을 배우라고 그런거지….”

20대 선생님 앞에서 꽤 무서워했던 10대의 우리는 중년에 접어들어 그 기억 속 격식의 끈을 죄다 푼 듯 선생님을 친구처럼, 가족처럼 과거와다시 만났다. 돌이켜보니, 그때도 그랬다. 선생님이 주는 술을 무슨 통과의례처럼 받아먹고, 잘못한 대가로 대걸레로 맞은 아픈(?) ‘결과’에도 빛나는 ‘과정’의 역사가 숨 쉬었다. 선생님은 반 어떤 학생도 소외시키지 않고 무슨 얘기든 들어줬고, 부모의 직업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공부로 차별대우하지 않았다. 게다가 선생님은 매주 우리와 산행을 계획했다. 공부에 찌든 우리를 나름 ‘구제’한 듯한 이 일탈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관계를 두텁게 하는 ‘연결 고리’였다. 선생님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주말 산행에 참석한 이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35년이 지났는데도, 자발적으로 찾아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진 빚이 적지않음을 우리는 부지불식간 알고 있다.

인생이란 역설의 과정이고 반전의 기회다. 무슨 이유에서든 맞으면 싫어하고, 규칙을 깨면 벌 받을 것 같지만, 헤르멘 헤세의 『지와 사랑』이 주는 교훈처럼 잘 닦인 길 위를 100km 걸어가는 것보다 10km라도 비포장도로를 뚫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데서 참 진리와 진정성을 깨달을 수 있다. ‘지’를 대표하는 나르치스는 학문의 끝을 보았을 때 허무와 절망에 빠졌고, ‘사랑’을 대표하는 골드문트는 학문을 포기하고 세속의 각종 향락을 맛보았을 때 비로소 인생을 느꼈다. 헤세가 말년에 접어들수록 불교 철학에 심취하며, 소위동양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젖은 건 극과 극이 반대가 아닌 상통할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아서다.
합리와 이성은 서양 철학의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목표’에 적합하지만, ‘관계’를 지배하는 데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뤄 ‘진화’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조화’까지 덤으로 얻는 건 아니다. 우리는 잃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고, 얻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헤세의 ‘사랑’이 보여주는 미학은 흥청망청 놀라는 의미라기보다 규칙과 제약의 틀을 깨는 데서 얻는 또 하나의 ‘무엇’을 보는 통찰에 한 걸음 더 다가서라는 주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세상에 놓인 인간을 보고, 그 인간의 내면을 읽고, 이성만 으로 해결할 수 없는 타자의 감각과 속성을 느끼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잣대로 선생님의 과거를 추적하면 일벌백계도 부족하다. ‘일벌백계’는 그가 한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 형량이다. 하지만 한 걸음 뒤에서 떨어져 보면 그 행위 뒤에 숨은 잔잔하지 만 깊은 사랑이 보인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존경과 애착, 차이를 두되 차별하지 않는 평등 정신이 유지됐기에 ‘그의 행위’를 탓하지 않고 ‘그’를 따랐다.
포스트모던 시대엔 기승전결의 구조가 해답 일 수 없고, 정해진 모범 답안에 맞출 기준도 모호하다. 뜻 모를 이야기도 대중의 가슴을 치면 성공의 준칙이 된다. 설사 그 규칙을 따르지 않더라도, 소수 열광자는 있기 마련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carpe diem, 순간을 즐겨라)을 외치며 ‘이탈’을 종용하는 선생님, 한 잔의 술을 권하며 매질도 서슴지 않은 ‘중2’ 담임 모두 넓은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가치의 증인들이다. 경직된 사회에서 ‘좋은 관계’란 때론 극의 반전에서 시작해 극의 역설로 이어지는 법이다. 소주 돌리던 기억이 생생한 선생님 퇴임식에 가고 싶어졌다.

 

글. 김고금평

 

김고금평
대형자본으로 주류에 묻어가는 음악보다 골방에 처박혀 머리 싸매 만든 음악이 더 사랑받기를 꿈꾸는 ‘맹랑한’ 기자. 2000년 ‘세계일보’에 입사, ‘헤럴드경제’ ‘문화일보’를 거쳐 현재 ‘머니투데이’ 문화부에서 근무 중이다. 사회부, 산업부, 여론독자부 등 여러 부서를 돌면서도 문화부, 특히 대중음악 분야를 20년 가까이 ‘전공하듯’ 다뤘다. 그간 MBC, KBS, EBS 등 라디오 각종 프로그램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고, MBC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2’와 KBS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1, 2’에서 전문 심사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 위원으로 10년 넘게 활동했고, 네이버 ‘오늘의 뮤직’에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김고금평  bulkwanger@naver.com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