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살며 사랑하며] 규칙과 제약의 틀 밖에서 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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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살며 사랑하며] 규칙과 제약의 틀 밖에서 얻는 것
  • 김고금평
  • 승인 2019.07.25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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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학교 은사의 퇴임 만찬에 참석했다. 초등학교 1년 때부터 대학 4년까지 무려 16년간 수많은 선생님을 모시면서 관련 모임에 나간 건 중2 담임이던 이 ‘선생님’이 유일하다. 갔더니, 내 바로 위 기수와 아래 기수, 동기들이 다수 모였다. 시작부터 관련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20대 중반, 혈기왕성하게 부임해서 우리에게 ‘빠따’를 얼마나 세게 때리던지….” 내 동기가 웃으며 투덜대자, 선생님이 “인간 되라고 때렸지,

감정으로 때렸느냐.”며 맞받았다. 바통을 이어받은 선배가 한술 더 떴다. “매주 산행할 때 선생님이 우리에게 먹인 소주도 여러 잔이었지.” “맞아. 지금 시대면 영창 수십 번도 더 갔을 텐데….” 아래 기수가 기가 막힌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웃음보가 동시에 실내 한가득 터졌다. 선생님도 이에 질세라 항변했지만, 목소리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 앞에서 술을 배우라고 그런거지….”

20대 선생님 앞에서 꽤 무서워했던 10대의 우리는 중년에 접어들어 그 기억 속 격식의 끈을 죄다 푼 듯 선생님을 친구처럼, 가족처럼 과거와다시 만났다. 돌이켜보니, 그때도 그랬다. 선생님이 주는 술을 무슨 통과의례처럼 받아먹고, 잘못한 대가로 대걸레로 맞은 아픈(?) ‘결과’에도 빛나는 ‘과정’의 역사가 숨 쉬었다. 선생님은 반 어떤 학생도 소외시키지 않고 무슨 얘기든 들어줬고, 부모의 직업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공부로 차별대우하지 않았다. 게다가 선생님은 매주 우리와 산행을 계획했다. 공부에 찌든 우리를 나름 ‘구제’한 듯한 이 일탈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관계를 두텁게 하는 ‘연결 고리’였다. 선생님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주말 산행에 참석한 이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35년이 지났는데도, 자발적으로 찾아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진 빚이 적지않음을 우리는 부지불식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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