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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일상을 명상하다] 열려라, 참깨

명상을 시작한 첫 번째 날을 떠올려봅니다. 제법 더운 여름날의 저녁. 향을 켜고 혼자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딘가에서 들은 것처럼, 며칠간은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신생아처럼 울기만 했으니까요. 왜 그런지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세상에, 향을 켜고 혼자 방 가운데 앉아 주룩주룩 눈물만 흘리는 명상이라니요. 명상깨나 해봤다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바로 ‘맑은 정신과 밝은 눈빛, 온화한 미소’ 아니던가요. 저 역시 그런 모습을 상상했건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명상을 할 때마다 온몸에 진이 다 빠질 정도로 힘들었고, 혼자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는데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하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이 맞긴 한지, 내면의 정화라는 것이 되긴 되는 것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밤새 불안해하며 고민하고, 스트레스도 많은 저 자신을 상대로 말이지요.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을,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환원시켜 증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에게, 혹은 제가 쓴 글을 읽어줄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그런 이유로, 따로 읽어줄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독백과 같은 명상 일기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노트에 모두 받아 적었습니다. 명상을 하는 중에 떠올랐던 망상들, 그 순간 나의 호흡, 땀, 혹은 눈물. 쥐가 났을 때 발의 통증, 깜빡 졸아 버린 순간과 그 날 하루의 인상이나 책에서 읽은 내용 등등.

별다른 주제도, 의무도 없다 보니 기록하는 것은 오히려 명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맨몸으로 거친 생각들과 싸우는 것이 명상이라면, 기록이란 그저 녹화된 영상을 보는 것뿐이니까요. 다만, 조금 창피했습니다. 그 영상 속 저는 대부분 실체 없는 망상에 패배하는 사람이자 겁쟁이였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번뇌를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 모습 그대로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란 제법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며칠간의 기록을 모아 적당히 걸러 가며 매번 글을 새로 쓰다시피 했습니다.

생업을 핑계로 글을 그렇게 자주 쓴 것도 아니었으나, 놀랍게도 그 날 것의 생생한 기록들을 몇 번이고 읽고 고쳐 쓰기를 반복하는 바로 그곳에서 제 마음이 정화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내 저를 괴롭히던 망상과 번뇌를 어떻게든 두 눈 부릅뜨고 찬찬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이해할 수 있게 되자,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놓아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정말이지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마치 꼭꼭 닫혀있던 바위 문이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 한마디에 자동으로 열리듯, 마음을 혼탁하게 만들며 고여 있던 망상과 번뇌가 글쓰기를 통해 마법같이 정화되고, 그것이 마음속 어딘가 설치된 센서에 인식되자마자 그대로 문을 열어 내보내는 듯했습니다.

정화, 놓아버림, 그리고 평화. 명상이 혼탁한 마음을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현미경이었다면, 글쓰기는 그 혼탁한 마음을 정화해주는 필터이자,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 주는 주문이었습니다.

물론 제 마음은 여전히 쉽게 망상에 물들고, 번뇌에 혼탁해지는 업식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구름이 모여 비가 내리고, 빗물이 모여 호수가 되듯, 이 모든 날 것의 기록과 정제된 글 하나하나가 모여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그리고 저에게는, 혼탁한 마음의 문을 언제든지 열어버릴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정화의 힘이 있다는 것을.
 

글_ 김예림
평범한 직장인, 아마추어 명상가, 간헐적 블로그 쓰니(blog.naver.com/forestofart).

양민호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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