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일상을 명상하다] 그림, 내겐 너무나도 명상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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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일상을 명상하다] 그림, 내겐 너무나도 명상 같은
  • 양민호
  • 승인 2019.07.0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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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 11시, 어김없이 수채화 붓 몇 자루와 물감이 올려진 팔레트, 엽서 크기의 수채화 종이를 챙긴다. 정성 들여 밑그림을 그리고 마음에 드는 물감을 찍어 물과 함께 섞어준다. 밑그림 위에 얇게 색을 올릴 찰나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으로부터 내 마음의 상태가 느껴진다. 색을 과하게 쓰면 내 마음에서부터 어떤 욕심이 올라오는 것이겠고 선이 깨끗하지 못하면 아직도 어지러운 주말의 시간이 묻어나오는 거다. 선과 풀어낸 색으로 단정하지 못한 마음의 어느 지점을 보기도 하고 미세하게 가다듬어지고 있는 마음의 과정을 예리하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숨을 고르고 붓의 떨림을 최소화해야 그림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처럼 내 삶에서도 숨을 고르고 흔들림을 최소화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림은 어느덧 내 삶의 작은 호흡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빼먹지 않고 꾸준히 시간을 들인 것이 벌써 2년 6개월이 되었고, 나는 감히 이 시간을 ‘나만의 명상 같은 시간’이라고 명명한다. 그리는 행위와 함께 내 마음과의 대면이 이 시간을 지속하게 한 셈이다. 솔직히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것이라고 해봐야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8개월 정도 화실을 다닌 게 고작이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단순히 좋은 느낌의 기억을 붙잡고 싶어 화실을 알아보고 그곳에서 다른 세계를 맛보게 된 것이다. 사각거리는 선 긋는 소리, 액체에 붓을 흔들어 씻는 소리, 물감이 발리는 질감을 꼼꼼하게 느끼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에 흠뻑 몰입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림 그리는 일 외에 모든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마법 같은 매력의 첫맛!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러 가지 현실 문제로 선생님께 배운 그림은 아쉽게도 그즈음에서 짧게 막을 내려야 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육아에 매몰되다시피 한 시간 속을 살고 있었다. 엄마들이 한 번쯤 겪을 만한 우울감이 나에게도 찾아왔고, 그 강도가 갈수록 심하게 나를 짓눌렀다. 일상에서 나를 잃은 느낌이었다. 마음을 매만지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책과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고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이 두 가지 활동은 끊임없는 사유의 작동이 내재되어야 하므로 정말이지 탁! 생각의 끈을 끊어버리고 싶을 때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그림이 주던 옛 기억, 텅 빈 시간이 발휘되던 그림의 힘이 떠올라 집에서 틈틈이 그림을 그렸지만 24시간 엄마 손을 기다리는 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림 그릴 짬을 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상황일수록 매번 아쉬움에 목이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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