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하루 여행] 느린 걸음으로 텅 빈 시간에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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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하루 여행] 느린 걸음으로 텅 빈 시간에 이르다
  • 양민호
  • 승인 2019.07.01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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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그리고 청평사

춘천 그리고 청평사를 여행의 첫 목적지로 삼은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가까워서다. 서울에서 2시간 안팎(대중교통으로 3시간여)이면 도착하는 곳. 하루 여행 코스로 이만한 곳이 있을까. 눈부신 아침 햇살을 맞으며 춘천으로 간다.

# 김유정역 - 김유정문학촌

김유정역을 첫 행선지로 잡은 것은 아련함 때문이다. 학창 시절 그의 대표작 『봄봄』과 『동백꽃』을 읽으면서, 작품 속에 그려진 때 묻은 시골 풍경에서 느꼈던 동질감에 대한 기억이 그리로 발길을 이끌었다.

평일 아침 김유정역은 한산했다. 오가는사람도 전철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평일 여행의 호사가 이런 게 아닐까 하며 느긋하게 역사를 돌아본다. 지금의 김유정역은 2010년 경춘선이 개통되면서 새로 지은 역사로, 그 전까지는 오른쪽으로 백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구 역사를 사용했다. 짧았던 구 역사(驛舍)의 역사(歷史)가 이름 딴 이의 생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새것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겨운 감성을 옛 역사와 그 주변에서 느낄 수 있다. 작은 역사 앞에 놓인 녹슨 철로, 낡은 무궁화호 열차(북카페로 운영 중이다), 작은 꽃나무로 이뤄진 생태숲이 잘 짜인 미장센처럼 펼쳐진다.

느린 걸음으로 그 풍경들을 두 눈에 담는다. 뜨겁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도 어쩐지 한가로운 봄 곁에 선 듯한 기분. 오래된 것들 곁에서면 마음도 그렇게 시간을 되돌리나 보다. 짧은 산책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소설가 김유정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역 앞 도로를 건너 김유정문학마을로 향한다. 머잖아 도착. 김유정문학촌(생가와 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이야기집이 낮은 경사길을 사이에 두고 들어서 있다. 소설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설치 작품들,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로 빼곡한 문학촌과 이야기집을 돌아보며 소설가 김유정을 다시 만난다. 어려서부터 병약했고, 애틋하게 누군가를 사모했으며, 뛰어난 글재주를 가졌으되 일찍 세상을 저버린 사람. 작품보다 극적인 그의 삶이 눈앞에 아른댄다.

문학마을을 나오면 위쪽으로 김유정 소설의 주요 배경인 실레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실레이야기길이 펼쳐진다.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소낙비)>, <점순이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동백꽃)>,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봄봄)> … 누구 아이디어인지 재치 있게 작품에서 이름 따다 붙인 열여섯 갈래의 길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그 길 따라, 이야기 따라 걸어가며 소설 속 점순이가 되었다가, ‘나’가 되었다가, 마침내 김유정이 되어 본다. 한적한 시골 풍경에 흠뻑 잠겨서 그가 그린 전원의 삶을 나도 따라 스케치해 본다. 아쉽게도 철이 지나 노란 동백꽃(생강나무)은 만날 수 없었지만, 돌아올 계절을 기약하며 다시금 발걸음을 돌린다.

* Information

지하철 경춘선 회기역에서 김유정역까지 1시간 20분. 역 앞 도로를 건너면 3분여 거리에 김유정문학마을이 있고, 그 위가 실레이야기길 초입이다. 문학촌 입장료(이야기집 입장료까지 포함된 금액)는 개인 2000원, 단체 1500원. 실레이야기길을 천천히 다 돌아보는 데는 2시간 남짓 걸린다.

위치_ 강원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0-14

문의_ 033-261-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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