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중대 사자암에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다람쥐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사찰 경내를 제집처럼 드나들고, 사람이 건넨 과자나 견과류를 겁 없이 받아먹는 다람쥐에 대해 말이다. 지인이 장난삼아 먹이를 주듯 빈손을 건넸더니 약이 오른 다람쥐가 손가락을 물어버렸단다. 딱딱한 도토리를 깨물어 먹는 이빨이니 얼마나 아팠을까. 절에 사는 야생 다람쥐가 궁금해졌다. 오대산이 품고 있는 사찰들과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야생 동물들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야생 동물로부터 배운 중도의 의미
초여름의 오대산은 서울보다 선선했다. 비가 그친 다음이라 맑은 숲 향기가 더 진하게 다가왔다. 자동차는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 부근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중대 사자암까지는 상원사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그 전에 상원사 카페에 들러 대추차를 한 잔 마시고 나오는데, 돌계단을 지나던 작은 뱀 한 마리가 사람을 보고는 놀라 머리를 돌 사이로 숨긴다. 오대산에서 처음 마주친 동물이다.
중대 사자암까지는 계단이 잘 놓여 있어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사자암 입구에 들어서는데, 말로만 듣던 다람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숲에서 뛰어나오더니 돌계단을 지나간다. 경쾌한 움직임이다. 멈칫하거나 도망가지 않는 걸 보니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모양이다. 준비해간 잣 몇 알을 손끝에 올려놓고 눈높이를 맞추니 다람쥐 한 마리가 다가와 날름 받아먹는다.
“아마 이곳 적멸보궁을 찾는 분들 중에 악한 마음을 갖고 오시는 분들은 없을 거예요. 다람쥐들도 사람들을 겪어봐서 자신들을 해치치 않는다는 걸,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겁니다.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거든요. 선한 마음으로 식물을 키우면 더 잘 자라듯이 동물들도 사람의 마음에 감응하는 것이죠.”
중대 사자암 주지 해여 스님이 차를 우려주시며 하신 말씀이다. 중대 사자암은 불상 대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것 외에도 자랑거리가 또 하나 있다. 사방이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덕분에 다람쥐와 까마귀, 고라니, 너구리 같은 야생 동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그러고 보니 자동차로 상원사까지 올라오는 동안 ‘야생 동물 주의’ 표지판이 자주 눈에 띄었었다). 새나 다람쥐가 종무소는 물론이고 법당까지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작년까지는 적멸보궁에 까마귀가 굉장히 많았어요. 사시불공을 드린 후에 마지밥(부처님에게 올리는 아침밥)을 까마귀들에게 조금 나눠줬는데,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와서 먹고 가더니 언젠가부터 그 시간만 되면 수십 마리가 와서 밥 달라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먼저 먹고 간 녀석들이 제 친구들한테 알려준 모양이에요. 저기 가면 밥 얻어먹을 수 있다고.”
수십 마리의 까마귀 떼가 적멸보궁 앞마당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상상하니 장관이 따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인간들이 자연의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게 되면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밥 주는 것을 멈췄죠. 겨울에 먹이가 없을 때는 조금 줄 수도 있지만, 평소에도 먹이를 주게 되면 야생 동물의 자생력이 떨어지고 개체 수가 늘어나서 생태계 전체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해요.”
매일 주던 밥을 주지 않자 까마귀들이 밥 달라고 시끄럽게 울어대고, 성질이 난 까마귀들은 스님 머리 위로 올라오기까지 했단다. 까마귀들에게도 밥을 얻어먹는 일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던 모양이다. 결국 까마귀들은 자연으로 돌아갔다. 자연 속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으며 까마귀답게 잘살고 있으리라.
“절에 오셨다가 야생 동물을 보고 과자나 빵 같은 것을 한 주먹씩 주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은 자신이 선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한 번쯤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의도는 선했지만 결과로도 과연 선한 행동인가? 하고 말이죠. 이게 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中道)의 가르침입니다.”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선한 마음으로 하는 행동일 텐데 지혜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선한 마음으로 행한 것이 자칫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는데 스님의 질문 덕분에 새로운 화두를 하나 받은 것 같았다.
“야생 동물은 인간이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놔두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생태계는 스스로 잘 알아서 돌아가게 되어 있거든요. 자연을 가만히 놓아두는 게 인간을 위해서도 더 유익합니다. 태생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려면 자연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자연이 자기 회복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절히 사용하지 않으면 안 돼요. 자기 복원이 안 될 정도로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어서 요즘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삶이란 수많은 인연의 합작품
해여 스님과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로 이어졌다. 고래 뱃속에서 수십 킬로그램의 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시작으로 쓰레기와 미세먼지, 아마존 개발과 아프리카 사막화 문제까지. 스님은 현재 인류가 심각한 환경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은 오만한 마음으로 자연을 남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자연의 역습이 시작된 거죠. 그동안 생태계를 무시한 채 인간 중심적으로만 생각해 온 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다들 잘 먹고 잘사는 것, 당장의 부를 쌓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잖아요. 기업들도 이윤 좇기에 바빠 자연은 뒷전이었죠. 당장 눈앞에 안 보인다고 문제가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미래 세대가 써야 할 자연을 급전으로 당겨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그 대가를 결국 미래 세대가 지불해야 하는 거죠.”
우려주신 차를 마시며 깊이 경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님이 퀴즈를 하나 내셨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이 뭔지 아세요?”
순간 머릿속으로 사나운 육식 동물들이 스쳐 지나갔다. 호랑이, 사자, 하이에나……?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에게 스님이 웃으며 대신 답을 해주셨다.
“바로 인간이에요.”
“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인간도 동물임을 다시 한 번 자각했다.
“백두대간이 세간에 알려지기 전에 태백산을 종주하신 한 여성분께 들었는데, 산을 타면서 멧돼지 같은 야생 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만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고 하더라고요. 동물은 자기가 먹을 만큼만 먹고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해치지 않잖아요. 인간은 자기 유희를 위해서도 생명을 죽일 수 있으니 가장 무서운 동물이 맞는 셈이죠.”
국립공원 매표소 입구를 지나서부터 오대산에는 사찰 외에 민가는 없다고 한다. 해여 스님은 있는 그대로 맑은 오대산을 절이 오염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신다.
“오대산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잔반 남기지 않기, 분리수거 제대로 하기, 일회용품 안 쓰기 등 사찰 차원에서도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사자암 올라올 때 계단으로 올라오셨죠? 사실 계단도 엄밀히 말하면 자연을 훼손한 게 맞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만든 거예요. 인간의 발이 생각보다 매워요. 사람이 많이 다니면서 흙이 파이면 그 자리에 나무뿌리가 드러나고 결국 나무도 죽게 되거든요.”
중대 사자암에서 계단을 더 올라 적멸보궁에 도착했다(적멸보궁에 오르는 길에서도 다람쥐들을 많이 만났다). 오후 5시, 해가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적멸보궁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나오는데, 앞마당 벤치 위에 시커먼 형체가 하나 보였다. 자세히 보니 까마귀가 아닌가(태어나서 까마귀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까마귀 역시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고 우아하게 법당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마치 기도를 드리듯.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까마귀와 묘한 교감을 느끼고 있는 기분이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기도가 끝난 듯 까마귀는 유유히 하늘로 날아갔다. 세상과 ‘나’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해여 스님의 말씀이 깊이 와 닿은 시간이었다.
“모든 것은 부처님 연기법이죠. 자연과 인간은 영원한 공생(共生) 관계에요. 내가 어떤 성과를 얻었다고 해서 내가 잘해서 이룬 거라 생각해선 안 됩니다. 수많은 인연들의 합작품이 지금 잠시 내 것이 되어 있을 뿐이에요. 내 모든 공덕을 세상과, 자연과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회향입니다.”
글_ 조혜영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추계예술대 대학원 영상시나리오 석사, BBS불교방송 및 KBS 라디오드라마 작가로 일했으며, 대학에서 영화, 창의성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림_ 봉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