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정우성 | 정가 | 13,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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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9-06-20 | 분야 |
1) 문학 > 에세이 > 한국 에세이 2)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인권문제 |
책정보 |
216쪽 |
네팔, 남수단, 레바논, 이라크, 방글라데시, 지부티와 말레이시아…
세계의 난민촌을 찾아 난민들의 삶을 직접 마주한
정우성의 특별한 경험, 그리고 그가 간절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
정우성
배우.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하여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똥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아수라>, <강철비>, <증인>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대중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온전히 세상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오던 중, 2014년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되어 본격적으로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5년 6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임명되었으며, 매년 한 차례 이상 해외 난민촌을 방문하는 등 지속적이고 헌신적으로 난민 보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직접 만난 난민의 이야기를 보다 널리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추천사 - 필리포 그란디(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
머리말
프롤로그
1장 너, 정말 준비됐니? - 2014년 11월 네팔
2장 명예사절에서 친선대사로 - 2015년 5월 남수단
3장 그들은 왜 유럽으로 가려 하는가 - 2016년 3월 레바논
4장 전쟁은 언제쯤 끝날까? - 2017년 6월 이라크
5장 비극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 2017년 12월 그리고 2019년 5월 방글라데시
6장 갑자기 찾아온 이방인들 - 2018년 6월 제주
7장 난민의 길을 따라서 - 2018년 11월 지부티와 말레이시아
에필로그
그가 본 것을 함께 바라보며 - 홍세화(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대표)
네팔, 남수단, 레바논, 이라크, 방글라데시, 지부티와 말레이시아…
세계의 난민촌을 찾아 난민들의 삶을 직접 마주한
정우성의 특별한 경험, 그리고 그가 간절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
정우성 에세이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이 출간되었다. 그간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을 하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난민 문제에 대한 생각을 책으로 엮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연예인이 비영리기구 활동을 하는 사례는 적지 않지만 그의 사례는 조금 특별하다. 그가 어느 순간 우리 사회 난민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2017년 12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로힝야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앵커 손석희는 그에게 “제가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2018년 6월 제주도에 도착한 500여 명의 예멘인 난민 신청자에 대한 수용 문제를 두고 뜨거운 찬반 논란이 있었을 때에도 그는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열린 자세로 토론에 임했다.
2019년 2월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주최로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우리 곁의 난민’ 행사에는 핵심 패널로 자리를 함께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이양희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좌관과 난민 문제로 심도 있는 대담을 진행하기도 하였다.(<시사IN> 제613호 참조)
그가 난민을 주제로 책을 펴낸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난민 보호 활동 5년의 기록
유엔난민기구 “그의 용기와 헌신, 책임감에 존경심을 느꼈다”
정우성은 2014년 5월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되었다. 그 전에 난민 문제와 특별한 관계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제안을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 배우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다른 이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오던 그였다. 딱히 제안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는 게 그의 소박한 수락 이유다.(본문 23쪽 참고) 그가 실제로 걱정한 것은 혹시라도 자신이 바쁘다는 핑계로 활동을 소홀히 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하기로 했다면 제대로 하겠다는 게 그의 마음이었고, 그 마음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2014년 11월 그는 네팔로 첫 난민 캠프 미션을 떠났다. 그곳에서 부탄 출신 난민을 비롯해 여러 난민들을 만났다. 난민 지위를 얻어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부터 법률상의 난민 지위를 얻지는 못했지만 유엔난민기구의 보호 대상자가 되어 삶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보호 대상자를 만나면서 난민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갔다.
(*유엔난민기구의 보호 대상자에는 법률상의 난민뿐 아니라, 국내 실향민, 난민지위신청자, 귀환민 등이 포함된다. 엄격한 의미의 ‘난민’은 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을 뜻하지만, 통상적으로 앞의 보호 대상자를 통칭하는 의미로 ‘난민’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본문 28쪽 참고)
2015년 5월에는 남수단에서 수단 출신 난민과 남수단의 국내 실향민을 만나고 돌아왔다. 아프리카의 황홀한 자연과 난민 캠프의 고된 삶의 선명한 대비가 준 충격은 여전히 그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본문 58쪽 참고)
그는 1년간의 명예사절 활동 기간을 거쳐 2015년 6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공식 임명되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안젤리나 졸리 특사(친선대사로 오랜 기간 활동한 뒤 2012년 유엔난민기구 특사로 임명되었다.)를 포함해 친선대사는 11명뿐이었다.(현재는 25명의 친선대사가 활동 중이다.)
이후 2016년 3월 레바논에서 내전으로 조국을 떠난 시리아 난민을 만나고, 2017년 6월에는 이라크에서 이라크 국내 실향민과 시리아 난민 등을 만났다. 2017년 12월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로힝야 난민을, 2018년 11월에는 지부티와 말레이시아에서 예멘 난민 등을 만나고 돌아왔다. 이 책의 출간 한 달 전인 2019년 5월에는 2017년 방문했던 방글라데시를 다시 찾아 그때의 로힝야 난민들과 재회하기도 했다. 그는 매해 한 차례 이상 해외 난민촌을 찾겠다는 약속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인 필리포 그란디는 추천사를 통해 “그(정우성)가 난민과의 연대와 보호에 대한 원칙과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보여 준 용기와 헌신 그리고 책임감에 존경심을 느꼈”다며 “그의 이야기를 통해 (…) 난민의 곁에서 행동할 용기를 갖게 되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가 난민에 대해 몰랐던 것
“난민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
정우성은 난민을 만날수록 이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내전이나 폭압 등의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임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난민촌이라고 웃음이 없을 리 없”(43쪽)다는 점을 확인하고,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아이들 교육 문제를 더 걱정하는 부모들을 마주하며(84쪽) 난민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어 갔다고 고백한다.
제주도를 찾아온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스마트폰을 쓰고 브랜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가짜 난민’으로 몰릴 때, 그가 단호히 ‘가짜 뉴스’에 맞서 이들을 비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역시 평범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우성은 당시에 제주도에서 난민지위신청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176쪽 참고) 그가 만난 이들은 고국에서 기자, 엔지니어, 셰프 등으로 활동했던 이들이었고, 내전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받던 탄압을 피해 이곳까지 온 상황이었다. 그들은 본국에서 입던 옷을 입고 이곳까지 왔을 뿐이고,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고 어느 나라에서든 값싼 심카드를 구해 바꿔 끼우기만 하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헤어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고, 또 새로 적응해야 할 나라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기에, 난민들은 밥을 굶더라도 스마트폰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정우성이 만난 난민 그 누구도 스스로 난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꿈꾼다. 어렵게 귀화에 성공해 타국에 정착한 이들 중에서도 조국이 안정을 되찾으면 국적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만주나 일본 등에서 살다가 해방 후 한반도로 돌아온, 그리고 6.25전쟁 때 피란길에 올랐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난민들의 열악한 삶을 마주하게 되면 자주 말문을 잃다가도 그들이 희망을 갖고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인류의 불가사의한 힘을 확인했던 그였지만, 그가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지 못한 곳이 있다. 바로 방글라데시의 쿠투팔롱 난민촌이다. 2017년 여름 미얀마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로 갑작스레 70만 명에 가까운 로힝야 족이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었고, 이들은 이미 30만 명의 로힝야 족이 난민촌을 이루고 있던 쿠투팔롱으로 몰려들었다. 산을 밀어 만든 벌판에 끝없이 이어져 있는 판잣집으로 된 인구 100만의 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가? 또한 그들은 그가 만나온 여느 난민들과 다르게 돌아갈 조국도 마땅치 않다. 2017년 12월 찾았던 이곳을 2019년 5월 다시 찾은 것은 이곳의 상황을 더 알려야겠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
정우성이 꾸는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꿈
정우성은 “난민을, 그리고 난민촌을 직접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다면, 그들을 돕는 문제에 대해, 그리고 유엔난민기구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44쪽)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소중히 쓰려 한다고 밝힌다. 이렇게 책을 펴내는 것도 자신이 경험한 것을 보다 널리 전하기 위함이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의 제목은 그런 저자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는 난민 문제에 대해 온정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 차원에서 정치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171쪽) 하고, 이를 위해 각국에서의 여론이 중요하며, 그러하기에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참여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인권, 평화, 사랑과 같은 단어를 언급한다.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그래서 때론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이지만, 난민 문제를 접하며 이 단어의 소중함에 대해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고 말이다. 모두가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 몽상가의 한낱 꿈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꿈을 꾸는 이가 몇몇에 그치지 않을 거라며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맺는다.
“나 역시 상상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존중하는, 보다 나은 세상을.”(207쪽)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긴 가뭄 뒤 단비 같은 책”
프랑스에서 긴 난민 생활을 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작가 홍세화(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대표)는 이 책을 먼저 읽고 쓴 ‘그가 바라본 것을 함께 바라보며’라는 글을 통해 “난민에 대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몰이해와 배타적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절감해 온 나에게 긴 가뭄 뒤 단비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난민에 대한 냉대와 혐오의 차가움이 환대와 친절의 따뜻함으로 바뀌는 그만큼 우리 사회도 따뜻해진다고 믿”는다며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랐다.
*이 책의 인세는 전액 유엔난민기구에 기부됩니다.
난민을 만나며 한 가지 확인한 게 있다면, 그들 누구도 스스로 난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원하지도 않았던 난민이 되었다. -44쪽
이들은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에 난민 지위를 통해 다른 국가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것인데, 난민 지위마저 얻지 못한다면 지구상에 그들을 보호할 정부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아이들 역시 학교에 가지 못한다. 현대 사회의 틀에서는 국가의 보호 없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을 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42쪽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난민 어린이들이 어떠한 가능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에게 미래의 삶을 위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비단 이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고, 그 아이가 우리 인류에게 어떠한 선물을 선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확신한다. -83쪽
내가 만난 시리아인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자식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당면한 문제인 먹고사는 것도 걱정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이들의 미래다.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 오늘 굶주리는 것보다 더 큰 걱정거리다. -84쪽
누군가는 기구의 지원으로 살아가는 삶이 편하게 누리는 삶 아니냐고도 한다. 하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자립하지 못하는 삶은 모두의 가슴에 생채기를 낸다. -87쪽
가장 중요한 것은 난민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난민 문제를 남의 나라 문제라고 생각하고 외면하지 않는 것, 내가 사는 곳의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국제 사회에까지 넓히는 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살아가는 데 서로가 얼마나 강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 또 연대와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자각하게 될 것이다. -93쪽
언젠가부터 난민 문제를 우리 역사와 함께 생각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를 떠날 수밖에 없던 선조들, 6.25전쟁 때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들 역시 난민이었다. -115쪽
로힝야 난민은 달랐다. 그들은 눈앞에서 가족이 총살당하는 모습을, 갓 태어난 아기가 불타는 덤불에 던져지는 모습을 봐 온 사람들이다. 마을 주민 전체가 몰살되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고 겪으면서 이들은 무엇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잊은 사람들이다. -134쪽
우리가 스마트폰을 필수품으로 여기듯, 난민들도 스마트폰을 필수품으로 여긴다. 아니 우리보다 더 필사적으로 챙긴다. 스마트폰이 고국에 남아 있는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175쪽
평생 지속되는 슬픔과 고통은 없다는 것, 역경과 인고의 시간 뒤에는 반드시 그 보답인 행복이 기다린다는 것. 소녀는 책을 통해, 또 아버지와 나라를 잃었던 참혹한 경험을 이겨 내면서 일찌감치 깨우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너무 빨리 성숙해져 버린 아이를 보는 것은 언제나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185쪽
상상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존중하는, 보다 나은 세상을. -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