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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象象붓다] 갤러리 수 <멈춤과 통찰(Samantha & Vipassana)> 전시 리뷰미술로 하는 명상 수행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19.06.18 09:51
  • 호수 536
  • 댓글 0

삼청동에 위치한 갤러리 수에서는 지금 불교와 명상을 키워드로 한 현대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김용호, 서고운, 이피, 최선 네 명의 작가가 명상 수행에 푹 빠져 있는 기획자 변홍철(그레이월 대표,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겸임교수)과 만나 ‘멈춤과 통찰’을 이야기하는 현장에 다녀왔다.

최선 <오수회화(적분의 그림)> 캔버스에 아크릴, 81.6 X 60.5cm, 2019

|    불이(不二)의 문을 지나 그림을 살게 하다
작가 최선이 그림의 소재로 삼는 것들은 독특하다. 오염된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름 자국의 패턴이나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터져 있는 오디들, 침을 뱉은 모양 등이 그것이다. 이전의 작품들은 더욱 유다르다. 모유를 모아 캔버스에 발라 자연스럽게 부패되는 과정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동냥젖(흰그림)>이나 소각장에서 얻은 사람의 뼛가루를 전시장 바닥에 흩뿌려 놓은 <실바람>, 그럴듯한 추상 조각처럼 보이는 씹다 만 껌들 <깎지도 붙이지도 않고 허약하면서 거창하게 만들기> 등.

어찌 보면 캔버스 천에 물감을 발라 놓은 것뿐인 회화에 대단한 가치가 부여되고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곤 하는 미술계의 풍토에 작가는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고뇌를 바탕으로 ‘말 되는 예술’을 위해 ‘말 안 되는 예술’을 해왔다. 지금 여기 두 발 딛고 서 있는 나의 현실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아 ‘가짜’처럼 느껴지는 그림보다 침이나 모유, 뼛가루처럼 내 피부에 찐하게 맞닿아 있는 ‘진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진짜’ 회화의 소재가 되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추한 것인지에 대한 관념을 재고하게 하는 그의 그림. 그래서 화려한 유리잔에 담긴 값비싼 샴페인보다는 생활 폐수에 둥둥 떠 있는 기름 자국을 담고 있다. 말은 <오수회화>지만 전시장을 거닐며 만나는 그의 작품들은 그리 흉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예쁘다. 한 점 사서 거실에 걸어놓고 싶은 적당한 크기에 흰색과 파란색 혹은 검정색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가 돋보이는 꽤나 장식적인 그림이다. 작가가 이루고자 하는 경지는 미와 추의 분별을 넘어 진실로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환영의 뇌사 상태를 지속하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회화의 숨통을 
끊고 싶다. 그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싶다는 말이다. 
더욱 볼 것 없이, 더욱 가난하게, 하지만 더욱 더 진솔하게.”
- 최선, 작가 노트 중

이피 <난자의 난자> 장지에 먹, 금분, 색연필, 수채, 389.5x191.5cm, 2018

|    나를 살피는 그림
전시장 2층, 금색 세필선이 돋보이는 거대한 그림은 이피 작가의 작품이다. 스스로 크리스천이라 이야기하지만 불화의 기법을 배워 작품에 응용해온 그의 작품에서는 불화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 그리고 연기의 그물 속에서 자신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세상 만물을 소재로 초현실과 현실, 상상과 일상의 경계를 그려낸다.

전시된 <난자의 난자>에 등장하는 수많은 상징물은 이것이 무엇인지 형언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상징물들이 금색의 외곽선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독립된 개체로 작품에 드러나 있다. 타오르는 양초나 날개가 달린 연필, 제목에서 유추해 보아 난자들인 것처럼 보이는 둥근 형상들도 뭉개짐 없이 모두 금색의 필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스스로를 돌이켜 비추어 보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위빠사나처럼 작가는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되 그 자체의 형태를 보존하며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내가 주관적인 몸이 되는 것은 나의 행동, 나의 활동이 아니라 타자들의 부딪쳐옴이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나는 이 타자들을 내 몸에 접착함으로서 비로소 나의 주관성을 얻었다. 나는 타자에 의해서 나를 감응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대상들 없이는 불가능했다.”
- 이피, 작가 노트 중

서고운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 캔버스에 유화, 162X326.2cm, 2018

|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무아(無我)로 나아가는 길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사람들은 종종 모르는 척하고 살아간다. 서고운 작가의 <사상도(팽창기-붕괴전기-붕괴후기-골격기)>는 죽은 몸이 부패하여 짐승에게 뜯어 먹히고 결국에는 뼈만 남는 과정을 네 개의 화폭에 담았다. 그 앞에서 내가 흠칫 놀란 이유 역시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것을 맞닥뜨린 순간 작동하는 방어 기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끔찍해 보일지 몰라도 누구든 언젠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게 죽음이다. 작가는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에서 켜켜이 쌓여 있는 시체와 이제 막 죽어가는 한 사람을 그렸다. 망자를 안내하던 손이 다시 저울질하듯 양쪽으로 이어진 것을 보며,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두 손이 가리키는 게 죽음 그 자체를 판단 없이 응시하라는 작가의 뜻은 아닐까 생각된다. 문득 어디서도 겨자씨를 구할 수 없었던 고타미의 일화가 떠오른다.

“죽음에 다가가는 것을, ‘날개가 타는 것을 무릅쓰면서 촛불에 달려드는 나방’이라고 표현한 장켈레비치처럼,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들을 포용하고 표현하고 싶다. 그것들을 오롯이 대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서고운, 작가 노트 중

김용호 print on matte paper, face mount, Framed, 120x70cm, 2017

|    지금, 여기가 바로 피안임을
유명한 패션, 광고 사진가이기도 한 김용호 작가는 연을 소재로 깨달음의 언덕 피안(彼岸)을 담았다. 번뇌로 가득 찬 차안과는 대비되는 완전한 행복의 땅 피안. 연을 자라게 하는 흙탕물에 둥둥 떠 연 숲을 바라보며 피안과 차안이 둘이 아님을 속삭이는 소금쟁이처럼 작가는 행복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는 것임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피안을 찾아 찰랑이는 물속에서 나는 
평화롭다. 나는 살아서 내가 있는 세계를 다른 세상에서 본다. 나는 피안을 꿈꾼다.”
- 김용호, 작가 노트 중

기획자 변홍철은 다양한 종류의 명상 수행과 이론들 중 불교의 명상 수행에 관한 말씀과 기록들이 개인적 경험을 가장 명확히 설명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공부하며 수행해 왔다. 그는 명상 수행의 양 날개인 멈춤(지: 止, Samatha)과 통찰(관: 觀, Vipassana)을 어떤 대상이나 생각에 대한 몰입(止)과 들여다봄(觀)을 바탕으로 내면을 표현하는 미술에서 발견한다. 작가와 관객 스스로가 인지하건 아니건 간에 이미 시각 예술 안에서는 멈춤과 통찰의 명상 수행이 펼쳐지고 있음에 주목하는 그가 기획한 <멈춤과 통찰> 전에서 미술로 하는 명상 수행에 동참해 볼 것을 추천한다.    

<멈춤과 통찰 / Samatha & Vipassana> 展

•장소 : 갤러리 수 (서울시 종로구 팔판길 42)
•기간 : ~2019년 6월 16일 (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 : 070-7782-7770
•자세한 내용은 갤러리 수 홈페이지(www.gallerysu.net) 참조

 

이달의 볼 만한 전시  

창령사 터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展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 2019. 4. 29. ~ 2019. 6. 13. | 문의: 02-2077-9300
국립춘천박물관이 기록적인 관람객 수를 달성하며 성황리에 선보였던 창령사 터 오백나한이 현대 미술가 김승영과 협업한 ‘일상 속 성찰의 나한’ 등 더욱 다양해진 전시 구성으로 서울에서 다시 열리고 있다.

관심(觀心)-강미선 展
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 2019. 5. 16. ~ 2019. 6. 23. | 문의: 02-725-1020
한지와 수묵 작업으로 일상의 기물이나 풍경을 그려온 강미선 작가의 전시. 특정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관심(關心)이 아닌, 대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바라본다는 뜻의 전시 제목 관심(觀心)은 작품을 통한 마음 수행을 추구해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반영한다.

제1회 신수유물소개전 - “다른 불신(佛身), 하나의 염원(念願)”
부산시립박물관, 부산 | 2019. 2. 19. ~ 2019. 6. 16. | 문의: 051-610-7132
 「목조여래좌상」 등 16~18세기에 활동하던 조각승들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 전시. 모두 조선시대 불상들이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활동한 조각승들에 따라 달리 표현된 불상의 모습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

 

마인드디자인
한국불교를 한국전통문화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고민하는 청년사회적기업으로, 현재 불교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서울국제불교박람회·붓다아트페스티벌을 6년째 기획·운영하고 있다. 사찰브랜딩, 전시·이벤트, 디자인·상품개발(마인드리추얼), 전통미술공예품유통플랫폼(일상여백) 등 불교문화를 다양한 형태로 접근하며 ‘전통문화 일상화’라는 소셜미션을 이뤄나가고 있다.

마인드디자인(김해다)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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