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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접해 본 적 없는 미국인 대학생과
서양철학을 전공한 한국인 불자 교수의 첨예한 철학 토론!

 

홍창성 지음 | 280쪽 | 값 14,800원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에는 특별한 철학 수업이 있습니다. 바로 ‘불교철학 강의’입니다.
이 강의가 특별한 이유는 기독교 전통이 강하기로 유명한 미국 바이블 벨트 북부의 미네소타주에서, 그것도 불교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접해 본 적 없는 젊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담긴 두 번째 강의에서 기독교 신자가 대부분인 현지 학생들은 불교의 가장 기초라 할 수 있는 ‘무아(無我)’부터 수긍하지 못합니다. 다른 철학적 관점을 가지고 살아 온 서양인들에게 붓다의 철학은 꽤 충격적이었을 테지요.

 

미네소타주립대학(ⓒ 홍창성)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십여 년간 진행해 온 불교철학 강의에서 제기된 학생들의 질문을 적극적으로 인용합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질문들이 그동안 우리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불교철학의 난점과 많이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무아’나 ‘윤회(輪廻)’, ‘연기(緣起)’ 등의 기본 교리는 물론 불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지인 ‘깨달음’, ‘열반(涅槃)’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학생들보다 더 자주 불교를 접해 온 우리이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의문과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불교를 알면 알수록 난해했던 것들, 학생들의 질문으로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 깨달음엔 그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엇을 알고, 무엇을 깨닫는단 말입니까?
‧ 깨달음에 대한 집착은 실로 굉장한 집착일 텐데, 깨달음이 과연 가능한 일입니까?
‧ 깨달아 열반에 들어 해탈하지 못하면 생사를 반복할 것입니다. 그럼 윤회는 과거 언제 무엇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까?
‧ 해탈을 이루어 육도 가운데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해탈한 자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 열반이란 무엇입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 같은 것입니까?
‧ 붓다는 무아를 설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수행자가 어떻게 열반에 들 수 있습니까? 열반에 드는 자 없이도 열반이 가능합니까?
‧ 대승불교에서 ‘공(空)’은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왜 ‘공허하다’라는 부정적인 개념을 그리도 중시하는 겁니까?
‧ 짧은 참선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집니다. 그런데 이 참선이 깨달음과 열반에 어떤 도움이 됩니까?

사실 불교는 철학, 그것도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있어 영향력의 측면이나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입니다. 또한 종교성을 초월하여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현대 인류와 첨단문명의 폐해로 병들어 가고 있는 사회를 구제할 사상으로 주목받은 지 오래되었지요. 최근에는 명상으로 대표되는 불교 수행의 이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중들의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불교철학을 이해하려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고 역설(力說)합니다. 그렇지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적 개념들은 현대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에 난해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불교를 공부함에 있어 ‘어렵다’는 불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요.

 

ⓒ 홍창성

저자는 이 책에서 학생들이 제기한 질문들과 함께 그에 대한 토론과 논증을 정리하여 이 철학에세이를 완성합니다.
이토록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저자의 강의는 미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이어집니다. 더욱이 자신의 전공 분야인 서양철학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불교철학의 정교하고, 지적이며, 논리적인 측면을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이 책은 그동안 불교를 공부해 오며 단박에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한 줄 알았는데 또 그런 것 같지도 않은 ‘난관’에 부딪힌 독자들에게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또한 불교에 관한 기본 지식을 갖추었거나 동양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는 물론 미국의 대학생들과 같이 불교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우리의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할 것입니다.

 
미국의 대학생들을 매료시킨 철학 강의!
붓다의 생각을 꿰뚫는 스물네 번의 철학 수업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자 홍창성

서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oorhead)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형이상학과 심리철학, 불교철학 분야의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다.
저자는 지난 2015년에 시작되어 국내 불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깨달음 논쟁’ 당시 누구보다 많은 분량(8편)의 글을 기고하며 논쟁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후 월간 『불광』, 『불교문화』를 비롯한 매체에 불교철학 관련 글을 연재하였으며, SNS에서 ‘Yumaa Hill’이라는 필명으로 국내 독자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불광출판사)를 부인이자 동료 교수인 유선경 교수와 공역하였고, 함께 저술한 『생명현상과 불교』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현재 Buddhism for Thinkers(사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를 집필 중이기도 한 저자는 마음과 물질세계의 관계를 주제로 한 전공 분야 논문을 영어와 한글로 발표해 오고 있으며, 불교의 연기緣起의 개념으로 동서양 형이상학을 재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재호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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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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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심 2019-05-29 23:24:56

    무아와 진아가 다르지 않는데 안타깝게도 홍교수님은 대승불교나 선불교가 진아를 마치 실체가 있는 고정된 본질로 잘못 해석했다고 우겨서 마치 힌두교의 아트만과 다르지 않다고 오단합니다. 무아는 오온이 나라고 착각하며 집착하는 것을 쳐 주시려고 무아라고 했지 "내"가 완전히 소멸되는 그 무엇도 없는 현상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열반이라면 부처가 어떻게 살아계신 동안 자신이 열반을 증득했다는 앎이 일어날수 있을까요? 홍교수님 말씀처럼 완전히 소멸된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무아라면 그런 앎조차도 일어나면 안되겠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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