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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의 스님들] 묘향대 호림 스님어차피 산속에서 사는 것은 매한가지요
사진:최배문

인연이 참 묘(妙)하다. 금년 정월 우번대를 찾아가다가 눈길에 막혀 포기하려던 차에 지리산 북편 달궁마을의 어느 펜션에 들어갔다. 이른 아침이라 다른 집들은 문을 안 열었는데, 그 집만 유독 장작에 불을 피우고 있어서 이끌리듯 들어간 것이다. 인사를 나누니, 덕동펜션 정창조 사장(57). 그는 여차저차 한 우리 사연을 듣더니 바로 트럭에 체인을 감고는 눈길을 뚫고 노고단까지 데려다주었던 고마운 사람이다. 우리는 그 인연을 따라 지리산 갈 때 자주 그 집에서 잔다. 그는 사경(寫經) 책을 수십 권씩 사서 주위에 나눠주는 불자이기도 하고, 지리산에서 약초와 버섯 등을 채취하는 산꾼이기도 하고, 조난 사고가 났을 때 긴급 투입되는 전북산악연맹 소속 구조 대원이기도 했다. 나는 늘 묘향대가 걱정이었다. 대개 지리산 다른 암자 토굴이야 차에서 내려 1시간 안팎 걸으면 된다. 하지만 여기는 반야봉이 동북방으로 능선 8부쯤에 품어 안은, 깊고도 높은 구중심처 아닌가. 쉽게 나설 엄두가 나는 곳이 아니었다. 예로부터 하늘이 숨겨 놓은 땅, 이 땅의 아란야로 딱 둘을 꼽으면 이북의 묘향산 법왕대와 이남의 지리산 묘향대였다. 묘(妙)한 것은 묘향산(妙香山)도 묘하고, 묘향대(妙香臺)도 묘하다. 어느 선방은 1년 안에 깨치고, 어느 암자는 한 달 안에 득도하고, 어느 토굴은 열흘 안에 도통한다는 구전들이 구구한 바, 이 두 곳은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그야말로 전설의 성지였다. 이런 걱정을 듣고 있던 정 사장은 “약초 캐러 자주 가는 곳이니 걱정 말라.”며 스스로 안내하겠다고 나섰으니, 참으로 불자다운 행동이었다. 산꼭대기는 봄이 늦다. 승속이 다른 것처럼, 마을에는 이미 백화만발하였고 철쭉도 시들어 여름으로 가는데, 산정에는 이제야 참꽃 피고 산벚 꽃잎 바람에 날리고 있으니 봄이 한창이다. 녹음이 짙어지기 직전, 이때가 고지대의 약초를 채취하는 마지막 타이밍이다. 아직은 잎이 여려 가지에 붙은 약초들이 눈에 보이지만, 조금 더 지나면 활엽이 무성하여 상황버섯 같은 값나가는 것들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약초 채취를 위해 어차피 가는 길, 묘향대 산길 안내를 겸하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나 그것은 지리산 제2봉 반야봉(1732m)을 등산로가 아닌 길로, 길 없는 길로,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심마니들의 길로, 산을 타야 하는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으니….

달궁 쟁기소로 입산했다. 쟁기소는 반야봉 북서쪽으로 흐르는 만수천 계곡의 못이다. 정상에 오르는 최단 코스의 출발지다. 반야봉에서는 4개의 물길이 발원한다. 북향하여 2개, 이곳 만수천과 동쪽 뱀사골이다. 이 물길은 경호강으로 합류하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흐른다. 반야봉 남향은 서쪽으로 연곡사 피아골의 발원이고, 동쪽으로 쌍계사 화개천의 시원이다. 그러니까 반야봉에 서서 북쪽으로 오줌을 누면 낙동강이 되고, 남쪽으로 오줌을 누면 섬진강이 되는 것이다.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정 사장은 앞서 걷는데 해갈에 도움이 된다면서 당귀 잎을 따 준다. 더 가서는 삼지구엽초를 꺾어주고, 오가피순, 곰취 할 것 없이, 그의 손이 뭔가를 취하면 바로 나물이고 약초다. 계곡 옆에 왕릉처럼 검은색의 커다란 무덤이 있다. 이곳이 옛 삼한 시대 변한 땅인데, 계곡에서 철이 든 돌을 캐내 불로 녹여 철을 빼내던 ‘제철소’라 한다. 그에게서 역사와 자연을 배우며, 약초를 씹으며 올라간다. 완만한 계곡 길을 따라 걸을 때는 좋더니만, 갑자기 투구봉과 반야봉 사이의 능선을 향해 치고 들어간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 바위가 미끄럽고 위험한 탓이다. 오르는 방향은 있는데 길은 없다. 사면은 60도를 넘는 급경사다. 산죽을 잡고 발을 디딘 겉흙이 미끄러진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아래로 구를 수도 있다. 겁이 난다. 아! ‘길 없는 길’이란 정말 어려운 길이구나! 부처님이 걸었던 길이 ‘길 없는 길’ 아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럴 때만 꼭 “관세음보사~알”을 암송하면서 겨우겨우 능선에 올라섰다. 정 사장은 앞서 걷다가 안 보이다가 다시 보이면 손에 뭔가 들려 있다. 구상나무에서 따온 상황버섯, 항암에 좋다는 자작나무 버섯, 말굽버섯, 생리불순 냉대하에 좋다는 작약뿌리까지 배낭 속으로 자꾸 들어간다. 능선을 한참 오르자 연안 김씨 묘가 나온다. 직진하면 반야봉이다. 거기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전나무와 구상나무,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썩어 천 년이라는 3천 년의 주목, 나무와 바위를 뒤덮고 있는 이끼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천연의 원시림이 펼쳐져 있다. 그 길로 한참을 내려간다. 투구봉에서 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로 돌았을 때, 거기에 뭔가 있다. 비 내리고 안개 자욱한 대숲 속에서 정말 거짓말처럼 노랗게 드러나는 지붕, 묘향대가 있다.

이광이  bulkwang_c@hanmail.net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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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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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 2019-06-16 07:24:45

    스님과철학자 잘 읽었습니다. 그책에 나오시던 학생이신가요? ㅋ. 법성계를 아름답게 펼쳐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드리고 싶어 생전안하던 댓글 달기 이런걸 해봅니다. 위글도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같이 지리산골짝 작은암자를 다녀온듯 감동입니다. 성불하십시요.   삭제

    • 불도삼매 2019-06-14 11:54:13

      아버지를 찾아 헤매던 두 아들 글에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나무아미타불   삭제

      • 불자 2019-06-14 06:50:22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붓다께서는 절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지으라고 하셨는데, 산으로 산으로 도닦으러 들어만 가시면 결국 도피 아닌가요? 숨어살며 홀로 도닦고,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모습, 부럽고 보기 좋습니다만, 그게 불교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독자보다 그곳 계시는 스님과 필자께서 더 많이 고민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잡생각하나 보탭니다. _()_   삭제

        • 정도심 2019-06-13 13:35:53

          삶이 나를 속일때....
          나를 찾아 떠나는
          최고의 여행지로 딱이네요.
          꼭 가야겠지(?) 다짐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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