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저 썩은 강이 너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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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에세이]저 썩은 강이 너희 모습이다
  • 김택근
  • 승인 2019.05.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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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지구촌에 ‘둠 투어(Doom-tour)’가 유행했다.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연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맨살이 드러난 아마존 밀림, 만년설이 녹는 킬리만자로, 빙하가 녹아내리는 파타고니아 등에서 위기의 실상을 확인하고 그 절박한 모습을 보고 왔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자연 앞에 모자를 벗는 ‘최후의 문병(問病)’ 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둠 투어라 불릴만한 여행이 있었다. 바로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강 주변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불도저 정부’는 거센 반대 여론에도 4대강 사업을 강행했다. 이에 사람들은 곧 없어질 풍경들을 눈에 담아 왔다. 모래 언덕을 걷고, 습지를 살피고, 물속에 발을 담그고, 강물의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은 강변에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며 노래했다. 목이 메어 다 부르지 못했다.

4대강 파괴는 우리가 잠든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자행되었다. 반대 여론이 거셀수록 굴착기는 더 맹렬하게 강을 파헤쳤다. 관변 학자와 언론은 녹색 뉴딜, 일자리 창출, 자전거 도로, 생태 공원, 천년의 비전 같은 말들을 쏟아내며 덩달아 춤을 추었다. 토건 사업으로 부와 권력을 움켜쥔 무리는 처음엔 물류 혁명을 내세웠다가 그 부당함이 드러나자 관광 사업으로, 다시 치수(治水) 사업으로 바꿔 공사를 강행했다.

흐르는 물줄기를 바꾸고 물을 가두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고함을 지르고 가슴을 쳤지만 미친 권력의 망나니짓을 막을 수 없었다. 참으로 무식하고 무도한 정부였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수많은 굴착기가 강 속에 주둥이를 처박고 강의 내장을 파먹었다. 수수만년 낮은 곳으로 흐르며 이 땅의 구석구석을 핥아주던 착한 혀를 잘라냈다. 그들은 사탄이었다. 후손들의 강산을 잠시 빌려 쓰면서도 미래 세대에게 ‘흐르지 않는 강’을 물려준 죄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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