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에세이]불상 조각 연구의 기틀을 마련해 준 1년간의 일본 연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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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에세이]불상 조각 연구의 기틀을 마련해 준 1년간의 일본 연수 생활
  • 강우방
  • 승인 2019.05.2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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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사유상 상반신의 역동적 움직임

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조형 예술 작품의 채색분석법(彩色分析法)은 한국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어내는 ‘작품해독법’이다. 저 삼국 시대부터, 아니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구석기 시대 이래 인류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다! 문자 언어와 상대하는 ‘조형 언어’를 찾아내는 그 기적의 과정을 자전적 에세이로 쓰고 있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조국의 산하는 삭막해서 산악의 나라이지만 헐벗은 민둥산뿐이어서 눈물이 났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이 나타나자 온 산이 푸른 숲이어서 더욱 비감해졌다. 당시 해외에 나가는 것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의 몫이었다. 1975년 6월 일본행은 내 생애에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비행기도 처음 타보고 외국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전공을 불교 조각으로 정하여 놓았으나 막막했다. 강의를 들은 바도 없었고 작품을 본 바도 그리 없었다. 망망대해에 나침판도 없이 쪽배를 타고 헤매는 격이었다. 먼 훗날 생각해 보면 그런 절박한 상황에 처했던 것이 다행이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오류 위에 세워진 고정된 신기루 같은 상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다행히 일본에는 한국의 삼국 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불이 다수 있었다. 가방에 항상 삼각대와 카메라 두 대와 조명등을 넣고 다니며, 개인 박물관 소장 금동불을 나 혼자 한 손으로 조명을 하고 다른 손으로 카메라 릴리즈를 누르며 촬영했다. 카메라가 두 대인 까닭은 흑백 필름과 컬러 필름 두 가지로 찍었기 때문이다. 한국 불상 조각은 물론 일본에는 훌륭한 중국 불상 조각품들이 많았고 인도 불상도 적지 않게 있었다. 게다가 고대 일본 불상 조각 역시 아주 많아서 고대 동양 불교 조각을 연구하기에는 이상적인 곳이었다. 그리고 동양 불상 조각 연구자도 많았다. 한국 불상만 있는 우리나라 사정과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 불상 조각을 조사하는 방법은 당시 교토국립박물관 자료 실장인 이노우에 타다시(井上正) 선생으로부터 어깨너머 배웠다. 그의 전공이 바로 고대 동양 불상 조각이었다. 굳이 동양 불상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동이 쉬운 작은 금동불이라 영향 관계가 뚜렷해서 동양 여러 나라의 불상을 함께 ‘비교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고실장 스즈끼 과장은 약주를 좋아했는데, 매일 근무 시간이 끝나면 시계 초침을 보고는 곧장 냉장고에서 맥주와 치즈을 들고 와서 간단히 흥겨운 자리를 펼치곤 했다. 그 자리엔 꼭 자료 실장 이노우에 타다시 선생이 참석했다. 그 까닭은 내가 불상을 전공한다고 하니까 이미 나의 초보적 상태를 간파한 터라 도움을 주려는 깊은 배려였다. 박물관은 월요일이면 휴관이어서 진열품을 교환하거나 작품을 조사했다. 이노우에 선생은 불상 조각품을 조사할 때, 소금동불 작품을 손에 들고 여러 면을 돌려보며 직접 조명하면서 각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매우 즐거워했다. 그러고는 본 것을 반드시 기록했다. 그렇게 나는 그가 작품 조사하는 방법을 어깨너머 배운 것이다.

이노우에 선생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나에게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한국 학자들은 작품을 그리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문을 즐기면서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니 얼마나 행운인가. 열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마치 친구처럼 동생처럼 대했으며 항상 존댓말을 썼다. 그는 특히 고구려 벽화에 관심이 많았다. 나도 원래 고구려 벽화에 관심이 많아서 경주에 있을 때 이미 북한 학자 주영헌(朱榮憲) 씨가 쓴 『고구려의 벽화 고분』을 일역(日譯)한 것을 읽으려고 노력했으나 작품을 본 바가 없는지라 몇 페이지 못 읽고 그친 적이 있었다. 이노우에 선생이 쓴 논문에도 고구려 벽화에 관한 것이 많았지만 내용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었다. 먼 훗날 그것이 나의 이론의 바탕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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