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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현실과 비현실을 꿰뚫어 보는 통찰의 힘

|    ‘진짜’처럼 체험할 수 있는 시대
가상 현실이라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가 점점 우리 삶에 가까워지고 있다. 가상 현실이란 현실 세계와 비슷한 공간과 사물이 모두 디지털 정보로 제작된 것으로서, 인공적으로 가짜 감각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기술이다. HMD(Head Mounted Display)와 같은 기기들을 머리에 쓰면, 마치 진짜 세계에 들어간 것처럼 가짜 현실이 펼쳐지는 장소가 가상 공간이다. 일부 미래학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2030년경에는 오감이 모두 구현되며 현실의 모습과 구분되지 않는 완전몰입형 가상 현실 기기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런 추측의 정확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컴퓨터 그래픽과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와 구분할 수 없는 풍경이 가상 현실에서 재현되는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넘어서서 미래의 인류가 대부분의 시간을 가상 현실 속에서 지낼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가상 현실의 기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기대되는 것은 인간이 일생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경험의 폭의 한계를 가볍게 넘어서게 해줄 거라는 점이다. 완전한 가상 현실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우리는 마치 실제 자연 속에 있는 것과 구분되지 않는 동일한 체험을 가상 공간 속에서 이룰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는 장시간 비행을 하지 않고도 며칠의 연휴 동안 실제와 똑같이 가파르고 추운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것과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고된 훈련 기간을 수료하지 않고도 6분의 1의 중력을 지닌 달을 탐사하는 체험을 할 수도 있고, 새와 같이 날개를 달고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을 천천히 비행할 수도 있다. 가상 현실 속에서는 그것을 체험하는 인간의 외모나 신체적 조건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노인들도 엘리트 운동선수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지체가 부자유스러운 사람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진짜 현실과 동일하게’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와 같은 완전몰입형 가상 현실이 가능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할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과학과 예술, 스포츠 및 다양한 학술 분야의 발전이 새로운 양상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과학 분야에서는 실험을 설계하는 데 드는 초기 비용이 훨씬 적게 들 것이고, 경제적인 문제로 폐기되었던 대규모의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생물학자들은 화석 속의 DNA를 추출하여 가상 공간 속에 복원한 멸종 동물을 풀어놓고 생태를 관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부상의 위험 없이 다양한 기술을 연습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아예 새로운 종류의 가상 현실 스포츠가 개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학자들은 완벽하게 재현된 옛 인도의 마을과 사원에서의 생활을 체험하면서 얻은 통찰을 통해서 불교사의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연구를 개진할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지구의 중력하에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디자인의 건축물을 제한 없이 만들어 볼 수 있고, 원작과 동일하게 복원되어 캔버스와 물감 재료의 질감과 두께가 그대로 살아있는 명화(名畵)들을 가위로 오려서 콜라주의 한 조각으로 쓰는 사치를 누려볼 수도 있다. 이런 새로운 현실은 이미 여러 SF 작품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상 현실이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그것을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사용할 때 기대되는 또 다른 효과는, 이런 새로운 기술을 통해 사회의 여러 문제에 관한 새로운 해결 방안을 마련할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가상 현실을 통해 고소공포증 등의 질환을 치료하는 프로그램이 이미 초기 형태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가상 현실 속에서 분쟁 지역의 전투 상황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평화로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실감하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광범위한 계층의 사람들이 정보를 누릴 수 있게 되고 사회적 이슈에 관한 논의를 확산할 수 있게 되었듯이, 가상 현실의 발전을 통해서 이전과 다른 형태로 ‘체험의 대중화’를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    현실을 실감하는 도구로서의 가상 현실
이와 같은 긍정적 희망에 대한 현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상 현실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분명히 존재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1999년 작품인 영화 <엑시스텐즈(eXistenZ)>에서는 인간의 신경계와 직접 연결되어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가상 현실을 체험하게 해주는 신기술을 체험하게 된 두 주인공이 “당신은 현실을 왜곡시킨 죗값을 받아야 합니다.”라는 대사와 함께 프로그램 개발자를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이 영화에서처럼 더 이상 한 사람의 개발자에 의해서 새로운 매체의 발전 여부가 좌우되지는 않는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윤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 장면은 실제로 우리가 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가지게 되는 미지의 불안함과 그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가상 현실이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대중화되었을 때 기존에 우리가 중요시해 왔던 가치들 중 많은 부분이 전복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이미 게임 속 캐릭터와 현실의 자신 사이의 괴리를 겪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 것처럼, 가상 현실이 구현되는 시기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실제보다도 가상 현실 속의 삶에 보다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심리적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우리의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가상 현실에 매몰되는 삶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 실질적인 근거 자료에 입각한 구체적인 대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그런 어려움을 전제로 하고, 불교의 입장에서 몇 가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우선 ‘이 세계는 눈에 보이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은 고정된 모습이 없다.’라고 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실감하는 데 있어서 가상 현실은 좋은 교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상 현실이라는 것은 결국 현실과 동일하게 보이지만 가짜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게임 속의 현실은 가짜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인과 관계가 성립하고, 그동안의 내 행동의 결과가 소위 레벨과 능력치라는 형태로 내 캐릭터에 데이터로 축적된다. 우리는 이를 진짜 모습이라고 착각하지는 않는다. 가상 현실의 기술이 발전하여 디지털을 통해서 구현되는 세계가 실제 세계와 구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더라도 이 점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불교의 초기 경전에서부터 등장하는 ‘이 세계는 마술사의 속임수와 같고, 거품과 같다.’라는 비유보다는 ‘이 세계는 가상 현실과 같다.’라는 비유가 현대인들에게는 보다 알기 쉽고 체감하기 쉬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상 현실 속의 세계가 0과 1의 기호들의 중첩으로 이루어지듯이, 현실 세계 역시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라는 체감을 보다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불교의 교리에 대한 논리적 이해를 넘어서 ‘실감’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감동하고 욕망하고 좌절하는 세계가 내 업에 의해서 재구성된 세계라는 이해를 현실적인 감각으로서 통찰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상 현실에 있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제행무상’이라는 불교의 중요한 교리가 다른 설명 방식을 요구받게 될지도 모른다. ‘무상’의 교리는 불교사를 통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논리적인 무장을 이루었지만, 그 기저에 있는 감성은 나의 삶과 내가 집착하고 있는 대상이 온전하게 나로서, 나의 것인 채로 지속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자각에 있다. 그런데 뇌파에 직접 감응하는 완전몰입형 가상 현실에서 뇌의 인식 속도를 조정할 수 있게 되면, 실제 세계에서 하루가 지나는 시간 동안 가상 현실 속에서는 1년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럴 경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긴 수명을 가상 현실 기기의 도움을 통해서 체감할 수 있다. 만약 그와 같이 수백 년의 시간을 인간이 살 수 있게 된다면, 이전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인생무상의 감정을 같은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을까? 지금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종 시험에서 필요한 만큼의 점수를 얻는 데 실패하는 것은 결국은 주어지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3개월 정도를 현실에서 보내는 동안 가상 현실 속에서는 10년 정도를 소비하면서 여유 있게 준비를 할 수 있게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화살처럼 지나가는 젊은 시절의 소중함’과 같은 표현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사람들이 인생의 짧고 덧없음과 다가올 죽음에 대해 허무함을 느낀다면, 가상 현실이 발전한 세상에서는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들지 않는 상황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은 현재 이미 예견되거나 거론되고 있는 기술의 범위 안에서 상상될 수 있는 상황들로서, 불교인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현세계의 이면을 읽어내는 힘
오늘날 학생들의 두뇌가 암기하기보다는 효율적으로 검색하는 경로를 찾는 쪽으로 능력이 특화되는 것처럼, 또한 그런 특화된 능력으로 인해서 어떤 부분에서는 이전 세대들이 쉽게 처리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어떤 부분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이전 세대들을 뛰어넘는 지적 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가상 현실이 구현되었을 때 인류가 온갖 새로운 종류의 문화를 만들어 내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전 세대에서나 지금 세대에서나 삶을 주도하는 것은 통찰의 힘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통찰을 통해서 과거를 추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다. 통찰이란 눈에 보이는 세계의 이면을 읽어내는 힘으로서, 결국은 온갖 사태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점을 찾아내는 발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가상 현실이 발전하게 되는 미래에는 소통의 경로가 다양화되고 집단지성의 활용도가 높아지게 되면서 오히려 개개인의 통찰이 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린 마음이 자연스레 현실과 비현실을 꿰뚫어 보는 통찰의 기술을 제공하고 시대에 맞는 불교적 가치를 재창조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강형철
동국대 인도철학불교학연구소 연구원, 한국불교학회 총무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강형철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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