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象象붓다] 사비나미술관 <나나랜드: 나답게 산다> 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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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象象붓다] 사비나미술관 <나나랜드: 나답게 산다> 전시 리뷰
  • 마인드 디자인(김해다)
  • 승인 2019.04.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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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찾는 사람들의 땅, 나나랜드
안띠 라이티넨 | C-print, 115x115cm, 2008

‘나나랜드’는 사회가 만든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기준인 세상에 살아가고자 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나나랜더’의 활약은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존감’과 관련된 서적이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이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유행, 불교와 명상에 대한 수요 증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은평구에 위치한 사비나미술관에서는 지금 타인의 시선이나 기존의 사회적 관습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등불 삼아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나나랜더’들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    내 이름은 ‘나나랜더’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화려한 금빛 무대는 구혜영(통쫘) 작가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작품 <작명쇼>이다. ‘정체성’을 논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인 ‘이름’. 그러나 평생 사용하는 이름이 사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보호자의 의지와 뜻에 의해 부여된 것일 뿐이라는 아이디어에 착안하여 작가는 관객에게 로또 기계로 자신의 이름을 뽑아 셀프운명제작자가 되어 보기를 제안한다. 이 유머러스한 퍼포먼스에 참여하며 필자가 얻은 새 이름은 ‘외쬐’, 앞으로 사용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내 삶의 기준은 바로 나’라는 ‘나나랜더’의 구호를 강렬하게 외치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름 못지않게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국적 역시 ‘나나랜더’ 예술가에게 중요한 소재이지 않을 수 없다. 핀란드 작가 안띠 라이티넨(Anttil Laitinen)의 <Voyage>는 1명의 국민을 위한 자신만의 독립적인 작은 국가를 세우려는 의지로 야자수를 심은 자신만의 섬을 만들어 발트해를 건너고 리버풀에서 런던까지 노를 저어 떠나는 긴 여정을 담은 작업이다. 자신만의 1인용 섬에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나나랜더’의 성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    나를 찾는 여행, 나와 당신의 자화상

한편 수 분에서 수 시간 동안 장노출로 촬영한 초상 사진 작업으로 유명한 천경우 작가의 작품은 ‘나다움’을 찾는 여정을 떠나기 위해 그 ‘나’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진실과 대면할 수 있다고 믿는 그에게 ‘찰칵’ 하고 사진을 찍는 순간은 인물의 본질을 포착하는 결정적 순간이 아닌 무수한 변화를 쌓아나가는 출발점에 가깝다. 대상을 완벽하게 담아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사진의 장점을 포기함으로써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그의 태도는 대상을 불생불멸의 본체로 바라보기보다는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흩어지는 변화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불교의 세계관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작가의 <Face of Face>는 장노출 사진으로 담은 흐릿한 인물 사진 위에 해당 사진의 모델이 눈을 감고 제 모습을 상상하며 드로잉하게 한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 속 인물의 미세한 변화를 담고 있는 사진과 그 위에 드로잉으로 표현된 관념적 자아의 간극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품고 있는 ‘나’라는 개념의 재고를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제안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 <Portrait Made by Hand>는 관객이 별도로 마련된 책상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글로 묘사하도록 하고, 벽면에 그 결과물을 서서히 쌓아나가는 작품이다. 별도의 상세한 지시 사항이 없이 빈 종이와 연필 한 자루만 주어진 상태에서 관객은 서술 방식에서부터 내용, 글씨 크기나 서체까지 서로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어 하나씩 읽어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    나는 존재한다, 고로 느낀다

한편 폐쇄된 지하철역 등 대도시의 폐허들부터 정글, 사막까지 수많은 장소에서 누드로 사진과 퍼포먼스 작업을 해온 김미루 작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도올 선생의 딸로도 잘 알려진 그는 2007년 미국 잡지 「에스콰이어」에서 현대 미술 최고의 유망주 36인에 선정될 만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이자 탐험가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그가 이집트, 모로코, 말리, 인도, 몽골의 사막으로 나가 낙타와 함께 찍은 <The Camel’s Way> 시리즈. 사진 속에서 작가는 동물을 찍는 여느 사진가들처럼 낙타를 도구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은 채 사막이라는 대자연의 프레임 안에 ‘그저 존재’하고 있다. 자연 속 수많은 동물 종처럼 그저 그렇게 ‘있을 뿐’인 인간종의 모습. 어쩌면 그는 ‘나나랜더’들에게 비교나 대결을 넘어선 초월적인 자아관을 제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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