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암자의 스님들] 상무주암 현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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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의 스님들] 상무주암 현기 스님
  • 이광이
  • 승인 2019.04.2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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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끼 먹고 만족하니까 여기 사는 거야”
사진: 최배문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因地而倒者 因地而起)’ 당연한 말이고 쉬운 뜻으로 보인다. 그런데 ‘술 마시면 취한다’거나 ‘겨울이 오면 춥다’거나 하는 유의 하나 마나 한 말 같지는 않고, 뭔가 깊은 뜻을 품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얼른 잡히지 않는다. 불교의 말이 대개 그렇듯이, 어려운가 하면 쉽고, 쉬운가 하면 어렵다. 화두처럼, 지눌 스님(知訥, 1158~1210)의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첫 문장이 그렇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이 말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처럼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니, 무슨 문제가 있거든 그 속에서 답을 찾아라, 일차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말하자면 술을 많이 마셔 알코올중독이 되었거든, 다른 탓하지 말고 얼른 술을 끊어라, 그 말이다.

그런데 지눌 스님이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게 아니라, 땅을 짚고 일어날 때 부처님이 일으켜주지 않는다는 사실, 즉 “혼자서 일어나라.”는 것이다. 이 말 역시 쉬운 말 같이 들려도 사실은 세상을 뒤집는 말이다. ‘이곳의 더러운 세계와 저곳의 깨끗한 세계가 따로 있느니, 부처가 있는 세계니 부처가 없는 세계니, 상법이니 말법이니, 그런 것은 모두 헛소리(不了義經)다. 부처는 출현하심도 없고 감춰짐도 없다.’ 얼마나 명쾌한가.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란 마음이다, 마음은 사람 몸속에 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춥고 덥다고 느끼는 것, 성내고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불성이다, 이제껏 네가 믿고 의지했던 것들은 다 허상이니 마음 밖에서 찾지 마라, 너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너 자신뿐, 너를 믿고 네가 너의 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 이런 내용의 정혜결사문은 서방의 니체가 ‘신의 죽음’을 말하기 700여 년 전인 1190년, 그의 나이 33세 때 쓴 것이다. 지금이야 ‘이 땅이 정토’이고 ‘내가 부처(卽心卽佛)’라는 말이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되었지만, 지눌 당대에는 기득권적 기복 신앙을 정면 타격하는 폭탄선언이자 혁명의 언어였다. 때는 바야흐로 고려 무신정권기, 권력과 결탁한 불교의 타락은 극에 달했다. 사찰 소유의 땅은 어마어마하여 소작을 치는 지주 노릇을 했고, 고리대금업과 숙박업을 하고, 심지어 양조장을 만들어 술까지 팔았다. 불교의 정신은 위태롭고, 진리의 등불은 꺼져가던 시대, 지눌은 새벽별처럼 등장하여 우리 불교사에 가장 빛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으니, 바로 정혜결사(定慧結社)다.

함양군 마천면 영원사에 차를 대고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오른다. 1.8km, 1시간 반 거리다. 빗기재까지 30여 분 오르는 길이 급하고 힘들다. 지리산의 북사면(北斜面), 그러니까 주능선을 타고 올 때는 토끼봉, 명선봉, 연하천 지나고 형제봉 못 가 삼각봉 삼거리에서 좌측 별바위등 쪽으로 삼정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다. 그 길이 영원사에서 올라오는 길 하고 빗기재에서 만난다. 지리산 전체를, 동두서미(東頭西尾)하고 앉은 한 마리 거대한 푸른 소(牛)라고 할 경우에 소의 등뼈가 종주 다니는 주능선이다. 하동 산청의 북사면 갈래가 소의 좌측 갈비뼈이고, 구례 하동의 남사면 갈래가 우측 갈비뼈인 셈이다. 북사면 어느 정점에서 보면 굽이굽이 장강처럼 흐르는 100리길 지리산의 주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한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 조망이 장관 중의 장관인데, 뷰 포인트가 3곳 있다. 셋째가 지리산 제1관문이라고 하는 ‘오도재(悟道峙)’로 제일 멀리서 보는 풍경이다. 능선의 곡선들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둘째가 조금 더 안으로 들어와 조망하는 ‘금대암(金臺庵)’ 자리다. 금대는 부처님 앉는 자리라는 뜻이니, 금대에서 바라보는 주능선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첫째가 상무주암 자리다. 금대는 임천(林川)의 물줄기가 산자락을 끊은 뒷산에 자리한 것이고, 상무주는 지리산 본산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상무주암이 지리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제일 가까운 점이다. 공연 좌석으로 치면 R석이고, 금대가 S석, 오도재가 A석쯤 되는 것이다. 

비탈을 차고 올라선 빗기재부터 상무주암까지 가는 길이 좋다. 낙엽은 레드카펫보다 더 푹신하고, 길은 뒷짐 지고 느릿느릿 걸어도 좋을 오솔길이다. 봄 숲을 걸을 때는 조심조심해야 한다더니, 발 디딜 곳에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젖은 흙 사이로 돋아난 그 새 생명을 그냥 뭉개버릴 수 없다. 그것을 밟지 않으려고 걸음을 좀 띄엄띄엄 디디면서 몸을 기우뚱기우뚱하고, 그렇게 걷는 품이 뒤에서 보면 춤을 추는 듯, 술에 취한 듯, 봄 길에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능선의 아름다운 곡선들이 나무들 사이로 나왔다 사라졌다 한다. 응달엔 아직도 잔설(殘雪)이 남아 길이 미끄러운 곳도 있다. 저런 것을 보면 우리가 뭔가를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 선악이 그렇고, 분별이 그렇고, 겨울과 봄도 무 자르듯이 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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