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과 동물이야기] 북한산 중흥사 동명 스님과 진돗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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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과 동물이야기] 북한산 중흥사 동명 스님과 진돗개
  • 조혜영
  • 승인 2019.04.25 14: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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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두 마리와 삶으로 시(詩)를 쓰다
그림: 봉현

양 끝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리니

중도(中道)엔들 어찌 안주하랴.

물이면 물, 산이면 산, 마음대로 쥐고 펴면서

저 물결 위 흰 갈매기의 한가로움 웃는다.

- ‘어디에 머물리요(何住)’, 태고보우(1301~1382) 선사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 물결 위 한가로운 갈매기보다도 더 여유로웠던 선사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용한 산중, 자연 속에서 개 두 마리와 함께 시를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스님이라면 그 모습을 조금은 닮지 않았을까. 절에 사는 진돗개 두 마리와 동명 스님을 만나러 중흥사로 향했다.

오랜만의 산행이다. 북한산 국립공원. 더 이상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지점에서부터 걸어서 3~40분.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조금 가빠지기 시작할 즈음 저만치 중흥사가 보인다. 봄의 초입, 마른 나뭇가지 위로 얼굴을 내민 작은 꽃망울들이 정겹다. 경내로 들어서자 시원한 봄바람이 산행의 땀을 식혀준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오니 동명 스님이 커다란 진돗개 두 마리와 함께 객을 반긴다.

“눈 옆에 점이 있는 블랙탄이 감동이고, 황구가 행운입니다.” 4살 감동이와 3살 행운이는 생긴 건 전혀 다르지만 사이좋은 모녀지간이다. “근처 봉성암에 살고 있는 황구가 행운이 아빠예요. 봉성암 스님이 개를 좋아하셔서 다 같이 한 가족처럼 지냅니다.” 

반가운 마음에 감동이와 행운이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는데, 웬일인지 가까이 오질 않는다.

“서서 부르면 쟤네들이 보기에 자기 눈 위에 있으니까 무서워서 안 오는 거예요. 앉아서 눈높이를 맞춰주어야 낯을 안 가려요.” 동명 스님의 말씀에 따라 허리를 낮추고 앉아 손을 흔드니 감동이가 먼저 다가와 냄새를 맡는다. 제법 큰 진돗개임에도 제 눈에는 절을 찾은 낯선 이가 두려웠던 걸까. 눈높이를 맞추니 이제야 안심인 모양이다. 꼬리를 흔들며 내 손을 핥는다. 미안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을 모두 담아 털을 쓰다듬어준다. 까만 털에서 건강한 윤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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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왕경 2019-06-24 12:35:25
책읽기 템플!
많이들 오세요. 너무 좋아요.
아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것들이 너무 많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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