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작가들의 한 물건] 컵홀더 함부로 구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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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작가들의 한 물건] 컵홀더 함부로 구기지 마라
  • 김덕희
  • 승인 2019.04.25 14: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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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봄볕을 쬐는 게 좋아져서 점심 식사 후 커피를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골목길을 돌고 돌아 걷다가 사무실로 복귀하곤 한다. 갓 나온 커피는 뜨겁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컵 속에서 출렁이다 뚜껑의 흡입구로 넘칠까 봐 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지고 그렇게 느려진 걸음만큼 내 주의를 오감에 더 할애할 수 있다. 지금은 남의 집 담장 위로 꽃봉오리를 부풀리는 목련에 시선이 오래 머무는데 몇 주 뒤에는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스치면 누군가 나를 부르는 기분으로 두리번거리게 될 것이다. 한 동네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읽게 되는 계절의 행간이다.

산책을 하지 않고 곧장 복귀하던 겨울엔 늘 이십 분쯤 휴게시간이 남았는데 요즘은 곧장 오후 업무 시간에 돌입해버리니 어딘가 아쉽다. 얼른 업무 모드로 전환하지 못해 책상 위에 흩어진 것들을 정리하다가 이제는 마시기 알맞게 식은 커피를 들고 상념에 빠진다.

“음료가 뜨겁거나 차가울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컵에 띠처럼 덧댄 종이에 자그맣게 적힌 문구를 읽다가 문득 이 물건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컵홀더’라기도 하고 ‘컵슬리브’라고 부르기도 하는 듯했다. 특정 업체의 이름이긴 한데 ‘잔띠’라는 것도 발견했다. 잔에 두른 띠라는 말이겠고 우리말을 쓰고자 한 정성이 반갑고 고마워서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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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D 2019-05-16 18:00:36
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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