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象象붓다]백정기 개인전 접촉주술 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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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象象붓다]백정기 개인전 접촉주술 전시 리뷰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19.03.2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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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를 향한 몸부림
Is of 서울 #1 / 2013~ / 리트머스종이 위에 강물프린트, 혼합재료 / 29.7×42cm

예술가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고단한 삶 속에서도 붓을 들게 하는 힘 말이다. 모더니즘 이후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이 만들어내는 환영을 걷어내고 실제에 다가가고, 그것을 작품에 옮겨 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테이블 위에 놓인 사과의 실제이든, 사람과 사회의 실제이든, 예술이라는 행위의 실체이든. 쉼 없이 변화하는 현상세계의 배후에 대한 무언가 쓸 만한 대답을 찾아 헤매는 예술가들의 욕망은 한 가지 믿음을 전제하고 있다. 어디엔가 어떤 형태로든 ‘실제’는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쫓던 ‘실제’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면, 어떨까? 여기, 무상함의 저편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 하는 대신 무상함 자체를 관조하는 작가가 있다. OCI미술관에서 열린 백정기 작가의 개인전 <접촉주술>에 다녀왔다.

|               실제가 아닌 ‘실상(實相)’을 담은 사진

우리는 종종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해 간직하곤 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다시 사진을 보면, 그 순간의 감동은 오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저 의미 없는 종이쪼가리만 남아버린 것 같은 경험을 누구나 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진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여 순간의 아주 미묘한 느낌까지 포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순간의 감동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없는 것은 아마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 실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백정기 작가의 풍경 사진은 조금 다르다. 그의 작품 <Is of: Fall> 속 단풍 가득한 가을 산의 풍경은 단풍잎의 잎사귀에서 울긋불긋해졌다가 바래지고 결국 썩어 사라지는 실제 단풍잎처럼 사진은 출력 직후부터 변색을 거듭한다. 한편 서울의 풍경을 담은 <Is of: 서울>은 한강의 물을 잉크처럼 사용해 리트머스지에 출력한 작품이다. 본래 액체의 산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실험 용지인 리트머스는 한강물에 포함된 산성분에 의해 붉은색과 푸른색의 색상 변화를 일으켜 이미지를 시각화시킨다. 리트머스지에 그려진 서울의 풍경은 도시에서 배출된 불순물부터 강물에 서식하는 미생물, 그리고 기후 환경까지 모든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서의 한강물로 그려진 셈이다. 프린터기 개조는 물론 부품까지 개발해가며 끊임없는 실험을 거듭한 결과로 탄생한 그의 사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상을 일순간에 포착하여 견고한 인화지에 가두기보다는 함께 생멸을 호흡하며 만물의 무상함 그 자체를 관조하고 있었다. 또렷한 실제의 재현보다는 그것들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그의 방식은 실제보다는 실상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한 잔의 물에 담긴 모든 존재를 기억하며

백정기 작가의 최신작 중 하나인 <자연사박물관>. ‘필리핀 원숭이’, ‘남부주머니 두더지’ 등 다양한 생물 종의 라벨이 놓인 유리병들이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것은 다름 아닌 ‘물’. 라벨링된 생물 종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무엇인가가 유리병에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살폈으나 보이는 것은 맹물뿐이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물’과 접촉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해 나간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물속에 이들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 작가는 과감하게도 맹물이 담긴 유리병을 한 생명의 표본으로 제시했던 것이었다. <접촉주술>(어딘가에 접촉했던 것은 분리된 이후에도 상호 영향을 끼친다는 원리로, 비슷한 주술 형식이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다. 가령, 연인의 물건을 품고 있으면 그이와 맞닿아 있다는 흔한 믿음이나 어떤 이의 머리카락을 넣은 인형으로 상대방에게 주문을 걸 수 있다는 방식을 일컫는다.)이라는 전시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 작가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지구 만물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동안의 그의 작업에서 ‘치유’를 상징하는 중요한 메타포였던 ‘물’이 이번에는 연기(緣起)를 시각화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 것이다.

|               ‘나’에서 출발해 ‘우주’로 가는 여정

치유의 상징으로서의 ‘물’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변화는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이다. 과거 유수의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거듭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던 백정기 작가. 본 전시를 보기 전 필자의 머릿속에는 10여 년 전 한 미술잡지 표지에 실렸던 노란 투구를 쓰고 있는 남자를 담은 <Vaseline Armor>의 장면이 맴돌고 있었다. 피부에 얇은 기름막을 형성하여 수분의 증발을 막아줌으로써 피부를 세포재생에 최적화된 상태, 즉 ‘물’을 머금은 상태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바셀린. 어릴 적 겪은 화상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바셀린을 발라왔던 작가가 바셀린으로 갑옷이라는 형태의 보호구를 만들었던 작업이었다. 당시 작가에게 치유의 상징으로서의 ‘물’은 자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었던 듯 보인다. 그러나 이후 사하라 사막 등지에서 진행한 <기우제 프로젝트>(2008)나 사카린을 섞은 물이 전시장에 비처럼 내리게 만든 <단비>(2010) 등의 작업을 거치는 동안 작가의 ‘물’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전 존재적 차원으로 승화했다. 2019년 현재 작가의 ‘물’은 만물이 공(空)함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존재의 평화를 염원하는 매개체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두껍고 미끈거리는 바셀린 갑옷을 입은 채 외롭게 치유를 갈망하던 자의 외침은 어느새 모든 존재의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절실했던 상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한 걸음씩 사고를 확장해 결국은 자아의 경계를 넘어 인류애를 이야기하는 한 작가의 착실한 보폭이 참 아름답다.             

<백정기 - 접촉주술>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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