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워크 위드 미 : “당신은 이미 그곳에 이르러 있다”/ 김천
상태바
[영화로 만나는 불교] 워크 위드 미 : “당신은 이미 그곳에 이르러 있다”/ 김천
  • 김천
  • 승인 2019.03.27 12: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은 이미 원하는 그곳에 이르러 있다”

이 영화는 고요하다. 별다른 기복 없이 틱낫한 스님과 그 상가의 모습을 담담히 영상에 담았다. 내용이나 기법이 말 그대로 기록 영화에 충실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영화 ‘워크 위드 미(Walk with Me, 2017)’는 마크 프랜시스와 맥스 퓨가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영화적 재미나 틱낫한 스님의 깊은 가르침을 바라고 이 영화를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만큼 잔잔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이들의 평도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하지만 틱낫한 스님을 깊이 사랑하고 따르는 이들에겐 잊지 못할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만나는 틱낫한 스님의 모습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틱낫한 스님은 작년 10월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하여 당신의 출가 본사인 베트남 후에의 절로 돌아갔다. 2014년 심각한 뇌출혈을 겪은 후 작년부터 외부 활동을 삼가고 있다. 아마도 생애 마지막 여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프랑스 플럼 빌리지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스님의 모습을 이 필름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틱낫한 스님, 한자 이름은 석일행(釋一行). 1916년 베트남 중부 후에에서 태어나 16세에 임제종 승려로 출가했고 1951년 비구계를 받았다. 스님은 베트남전 당시 전쟁 당사국인 미국으로 건너가 반전운동을 펼쳐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반전 평화운동과 인권운동의 기수 킹 목사는 스님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지만, 틱낫한 스님은 남쪽 베트남 정부로부터 귀국 불가 처분을 받았다. 뜻하지 않게 망명자 신분이 되어 프랑스에 정착하여 수행공동체 플럼 빌리지를 만들었다.

통일 이후에도 귀국 불가 방침은 풀리지 않았고, 고국을 떠난 지 38년 만인 2007년이 돼서야 방문이 허락됐다. 50여 권 이상의 책을 펴냈으며 국내에는 『평화로움』, 『화』, 『법화경 이야기』 등의 책으로 잘 알려졌고 수차례 방한하여 대중들과 함께 걷기명상을 한 바 있다. 『화』는 IMF 금융위기 시절 100만 부 이상이 팔려 국내에 스님이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상이 틱낫한 스님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 틱낫한 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플럼 빌리지의 숲길을 걷는다. 느린 발걸음으로 호흡에 집중하여 걷던 스님이 잠시 걸음을 멈춰 나무 둥치를 쓰다듬자 뒤따라 걷던 제자가 빙긋 웃는다. 새소리가 들리자 스님은 눈을 돌려 나무 위를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이어간다. 마치 『금강경』 첫머리에 부처님께서 고요히 슈라바스티 거리로 나가 탁발을 마치고 제 자리로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